사법감시센터 칼럼(jw) 2009-07-14   3061

검찰총장 청문회장에서 만난 황 부장검사님께

황철규 부장검사님께.


안녕하세요. 어제 천성관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장에서 잠깐 인사를 드린 저를 기억하고 계실까 모르겠습니다. 참여연대에서 사법감시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근용입니다.

인사청문회장에서의 만남이 첫 만남은 아니지요. 전두환 전 대통령같은 추징금 미납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공청회를 법무부에서 주최할 때 저를 토론자로 섭외하기위해 연락한 인연도 있으시죠? 이런 인연을 빌미삼아 오늘 쓰지 않을 수 없는 편지하나 보냅니다.

지금은 대검찰청에 있는 미래기획단장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어제 청문회에 천성관 후보자의 뒷자리에 대검 간부와 서울중앙지검 간부 10여명이 착석한 자리에 황 부장검사님께서도 함께 앉은 이유도 지금 그 직책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기획단. 정말 긍정적이고 밝은 이미지라서 듣기만해도 뭔가 기대가 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어제 황 부장검사님 이외에도 강우찬 대검 범죄정보기획관님, 김희관 2차장 검사님 등 제가 그동안 텔레비전 등에서 얼굴을 보았던 분들의 뒷모습을 방청석에 맨 뒷자리에 앉아서 바라본 제 심정을 혹시 알고 계시나요?

“참 안됐다.” 이 네 글자가 제 심정이었습니다.

저도 나름 사법감시분야의 일을 한지 이제 만 5년을 넘겼습니다. 그 전부터 간접경험했던 것까지 포함하면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등 이른바 사법관련 기관의 수장 10여명의 인사청문회를 지켜보았습니다. 그 때마다 10명에서 20명 정도의 대검 간부 검사나 법무부 간부들이 청문회장에 앉은 후보자의 뒷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모실 분을 보좌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근데 이번에 황 부장검사님께서는 참 안 되신 것 같습니다. 하필 지금의 검찰총장 후보자가 천성관씨라서 말입니다.

‘얄팍한 계산’을 하는 이를 대장으로 모실게 불쌍했습니다

어제 청문회장을 저와 같이 끝까지 지켰으니, 의원들의 질문과 후보자의 답변 등을 잘 기억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가십거리에 불과하다고 보실지 모르겠지만, 청문회장을 지켜본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박힌 장면은 후보자의 아들 결혼식 이야기아닐까 싶습니다.

검사출신임을 항상 자랑하는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이 후보자를 두둔하기 위해, 점심먹고 난 뒤 오후 보충질의시간에 이렇게 말씀하셨죠. ‘후보자는 지난 5월 아들 결혼식 때 청첩장도 안 돌렸죠?. 결혼식은 어디서 했어요’

박경재라는 ‘기업인 후원자’ 문제로 계속 공격을 받던 후보자의 입장에서 고마운 질문이었는지, 후보자는 짐짓 겸손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네, 아들 녀석도 조용히 하자고 해서, 그냥 교외 조그만 곳에서 했습니다’고 답했습니다. 순간 저도 후보자에게 나름대로 저런 면모도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질의에 나선 박지원 의원의 말에 청문회장에는 웃음이 터져나왔죠. 박지원 의원이 ‘그 교외라는 곳이 (서울 한강변에 위치한) 워커힐W 호텔이죠’라고 말하고 후보자는 순간 당황한 듯 주춤거리다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네’라고 했습니다. 이 장면에서 웃지 않을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마는 황 부장검사님을 비롯해 수행한 대검 간부검사들은 아마 웃음을 참으려 애써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6성급 호텔이라는 워커힐W호텔 야외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이 사치스럽다고 비난하기에 앞서, 그 곳을 ‘교외’의 조그만 곳이라고 말하고 점수를 따려고 했던 후보자의 얄팍한 계산이 그대로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저런 사람을 황 부장검사님같은 자존심 하나로 버텨도 충분할 검사들이 대장으로 모셔야 하다니… 제가 다 억울합니다.

모든게 우연이라고 대답하던데 검사님들은 이해가 되시던가요?

기업인 스폰서(후원자)라고 의혹받는 박경재씨와는 몇 차례에 걸쳐 같은 날 같은 곳으로 비행기를 타고 출국했고, 후보자의 배우자와 박경재씨가 같은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같은 제품을 동시에 구매했다는 것도 새로 드러났습니다.

이 점에 대해 후보자는, ‘명절, 휴가연휴라 우연히 같은 비행기를 탄 것 같습니다’고 말했습니다.

황 부장검사님도 검사생활 나름 15년 넘게 하셨을텐데, 이런 말을 납득하시나요?

천성관 후보자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고, 후보자가 살 집을 소개해주었고, 차용증도 없이 빌려준 7억5천만원을 비롯해 총 15억5천만원을 계좌이체도 아니고 바로 수표로 빌려주던 사람이 박경재씨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과 한 번도 아니고 두 세 번씩이나 같은 날 같은 비행기로 같은 나라로 여행을 갔고 같은 면세점에서 같은 상품을 구입했는데, 이 모든게 우연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이건 로또 1등 당첨에 견줄만한 확률아닌가요?

후보자는 위장전입했습니다. 그냥 했다고 말만 할뿐 잘못했다거나 유감이라는 형식적 인사도 없었습니다.

법도 질서도 없던 아주 옛날일도 아닙니다. 1998년입니다.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공직부패에 대한 고강도 사정이 있었음을 아실 것입니다. 공직자재산등록 및 공개제도도 실시되었습니다. 대체 준법질서가 이렇게도 없는 분이 어떻게 인사청문회 첫 순서인 모두발언에서 그렇게도 법질서, 법과 원칙을 강조할 수 있는지 황 부장검사님은 이해가 되시던가요?

애초 서초구 잠원동에 살던 후보자는 아들을 압구정동에 있는 학교에 보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압구정동으로 주소지를 바로 옮기지 않고 여의도쪽으로 옮겼다가 한 달도 안되어 원하던 압구정동으로 주민등록지를 바꿉니다.

두 번 옮기는 주도면밀함을 보였습니다. 자금세탁하는 것처럼 주소지를 세탁한 것인데, 범죄수사하면서 배운 노하우인가요?

불법증거자료를 걸러내지 못하는 검사가 검사입니까?

사실 저는 도덕성 문제가 이렇게 많이 나올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천성관 후보자 인사의견서 준비작업을 하면서 후보자가 과거 다루었던 수사에서 문제점은 없었는지 살피는데 주력했습니다.

도덕성 문제가 주로 이야기되는 바람에 별로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만, 제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결격사유가 있습니다. 천 후보자가 1998년 ‘영남위원회 사건’을 다루면서 경칠이 가져온 불법도청 자료를 증거자료로 버젓이 제출한 일입니다. 

이들 피고인들에게 반국가단체 법리를 잘못 적용해서 이적단체 부분만 인정받았다하는 점은 저는 별로 개의치 않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천 후보자가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아온 피의자에 대한 감청허가 영장의 범위를 벗어난 불법도청 자료를 적법한 증거자료라고 법원에 제출한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법률전문가인 검사로서 기본소양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기본소양을 못갖추다보니 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날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공안검사 경력 좋습니다. 인정합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했을 일입니다. 그러나 적법한 방법에 따라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적법한 방법, 적법절차 준수.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사법연수원을 다니면서, 수십번 수백번도 더 들었던 말들 아닙니까. 적법성 확보를 위해 검사라는 법률전문가집단을 구성하고, 검찰을 대접해주는 것 아닙니까.

이 사건이 재심 판결을 통해 무죄로 고쳐지는 1970년대, 1980년대의 고문조작이 횡행하던 시절의 일도 아닙니다. 1987년 민주화가 된지 11년이 지난 1998년의 일입니다.

수사기관의 불법행위를 막고 적법하게 수사하도록 지휘하는게 검사를 경찰과 달리 대접하는 이유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제대로 지휘도 하지 못하더니, 경찰이 가져온 불법자료를 걸러내지도 못했으니 검사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않은 것 아니겠습니까?

검사들이 스스로 위신을 찾기 바랍니다.

그리 잘 알지도 못하는 황 부장검사님께 이런 편지를 보내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정말 전국의 검사들이 ‘야, 이건 아니다’라고 말해야 할 상황이라고 봐서 결례를 무릅쓰고 편지를 써보았습니다.

인사청문회에서 조순형 의원의 매서운 추궁에 천 후보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그러자 조순형 의원이 뭐라고 말씀했는지 기억하시나요? 앞으로 잘 하겠다는 말 누가 못하냐, 지금 과거 당신의 잘못을 확인하기 위해 청문회하는거 아니냐고 질타했습니다.

천 후보자가 24년 검사생활동안 수사하고 기소했던 수많은 피고인들의 대다수도 검사실에서 반성합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머리를 조아렸을 것입니다. 황 부장검사님께 수사받은 사람들의 대부분도 그러했겠지요. 그렇다고 그들의 과거 범죄를 모른채 하시나요?

검찰총장 후보자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잘못했으면 더 이상 후배 검사들의 얼굴을 생각해서라도 후보자가 물러나는게 도리아니겠습니까? 어쩌다 황 부장검사님같은 엘리트중의 엘리트, 상식을 가진 법률전문가들이 천 후보자 같은 이를 조직의 대장으로 모시게 되었을까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전국 1,500명 검사들이 측은해지까지 합니다.

이런 사람을 조직의 대장으로 모실 수 없다면서 사표쓰고 나오는 검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래도 오늘밤 행복하게 잘 수 있겠습니다. 신영철 대법관 재판간섭 사태때 30대 중후반의 젊은 단독판사들이 보여준 절제되었지만 소신있는 행동을 검사들에게서 보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황 부장검사님께 그런 결단을 곧바로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민의 한 사람에 불과할 수 있는 한 시민의 마음을 모든 검사들이 알아주고 처신해주길 기대하는 것입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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