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칼럼(jw) 2009-02-26   2678

[통인동窓] ‘재판도 상급법관 뜻대로’? 적은 내부에 있다

재판도 상급법관 뜻대로? 적은 내부에 있다

법관의 헌법·법률·양심 무시한 ‘촛불재판 몰아주기 사건’

 

임지봉 서강대 교수(헌법학),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대통령에 충성심 강한 사람이 판사?

군사정권시절에 서울지방법원은 형사지법과 민사지법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정권이나 대법원장은 형사지법원장이나 형사지법 부장판사 등에 소위 코드가 잘 맞아 믿을 만한 인사들을 대거 포진시켰다. 형사지법에서는 소위 시국사건들의 재판이 많이 열린 탓에 이 법원 고위판사들의 인사에 법원 내외부의 입김이 많이 작용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군사정권이 물러난 1993년에 서울민사지법 단독판사들에 이어 대한변협이 사법부의 근본적인 개혁을 촉구하고 나서는 제3차 사법파동이 일어났다. 이 때에 사법 개혁방안의 하나로 주장되던 것 중에 과거 군사정권에서 정치권력에 영합해 법과 양심을 저버린 판결을 한 ‘정치판사’들의 퇴진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정치판사’에는 대법원장 등 사법부 수뇌부뿐만 아니라  군사정권에서 사건배당권 행사 등을 통해 시국사건 재판을 조정하고 통제하려 했던 서울형사지법 수석부장출신의 일부 고위판사들도 우회적으로 지목되어 있었다.

원래 근무평정권과 사건배당권은 법원장의 권한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 단독판사들에 대한 근무평정권이나 사건배당권은 사실상 수석부장판사에게 곧잘 위임된다. 군사정권은 과거에 서울형사지법원장과 수석부장판사를 코드가 맞는 믿을 만한 인사로 앉혀놓은 후 이들을 통해 시국사건의 판결을 마음대로 조정하고 주물렀다. 소명이 부족한 시국사범의 영장도 수석부장판사에 의해 비밀리에 발부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유신시절에 판사를 지냈고 나중에 제1기 헌법재판소 재판관까지 지낸 변정수 전 재판관은 회고록에서 “서울형사지법 수석부장은 중앙정보부나 검찰에서 보기에 유신관이 투철하거나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사람, 적어도 검찰이나 중정에 협조를 잘해줄 것으로 인정받은 사람들이었다”고 꼬집기까지 했다. 


적용 법조항이 다른 사건을 비슷한 사건이라니…

요즘 법원이 이래저래 시끄럽다. 작년에 서울중앙지법에서 촛불집회 참가자에 대한 여러 건의 사건들이 다소 보수적이라 알려진 특정재판부에 몰아주기식으로 배당되자, 이에 대해 다른 13명의 단독판사들이 반발하였고 법원장이 나서서 이를 무마한 뒤 다시 사건들을 관행대로 무작위 시스템에 의해 배당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일이 최근 언론에 의해 파헤쳐지고 보도되면서 법원 안팎에서 몰아주기 사건배당의 배경과 이유에 많은 의혹의 시선들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사건배당권을 행사했던 형사수석부장판사나 대법원은 그 사건들이 쟁점이 비슷한 중요사건들이라 결론이나 양형에 큰 차이가 날 것을 우려해 배당예규에 따라 사건을 그렇게 한 판사에게 몰아준 것이라 해명하고 있다.

궁색한 변명이다. 몰아주기식으로 배당된 사건들은 촛불집회 참가자가 기소된 사건들이라는 점에서만 공통적일 뿐, 사건의 구체적 내용이나 쟁점, 적용 법조항들이 다르다. 어떤 사건은 경찰 기물 파손 사건이고, 어떤 사건은 전의경 폭행사건이며, 또 어떤 사건은 촛불집회행사 사회자가 허가되지 않은 행진을 유도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따라서 비슷한 사건들이어서 결론이나 형량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한 명의 판사에게 사건을 몰아주려 했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또한 결론이나 형량 차이는 이후 상소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다. 오히려 이 사건들이 왜 하필이면 언론에 의해 보수적 성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판사에게 몰아주기가 되었느냐에 많은 의혹의 시선들이 쏠린다.

그리고 이 판사가 있던 13단독은 원래 피고인이 외국인인 사건을 다루는 재판부였다. 외국인 사건  전담 재판부에 무작위 시스템이 아니라 인위적인 몰아주기식 배당으로 촛불집회 관련 시국사건 재판을 맡긴 이유는 정녕 무엇인가?

원래 사건배당은 컴퓨터 추첨 등에 의한 무작위 배당이 원칙이다. 사건 배당에 어떤 의도가 개입되었다는 의혹을 사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데 우리 법원의 배당예규는 특별한 경우에는 임의배당을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집회 및 시위사건들은 보통 무작위 배당을 하는 일반사건들로 다루어지는데, 이를 임의배당했다는 자체가 이 사건을 다른 집회 및 시위사건들과 달리 차별적으로 취급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사건배당에서 촛불시위사건들만 이렇게 달리 취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사건 피고인들의 범죄사실이 다른 집회 및 시위사건의 피고인들과 비교해 특별히 중대하지도 않다. 백번 양보해서 이 사건들이 임의배당을 통해 한 명의 판사에게 몰아줘야 할 사건들이라 하더라도, 하필 그  한 명의 판사가 언론에 의해 보수적 성향을 지녔다고 평가될 판사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른 판사들보다 그 판사가 재판능력이 뛰어남을 입증할 만한 자료는 없는 것 같다. 그 이유가 혹시 법원장이나 형사수석부장이 보기에 ‘믿을 만하다’는 것이라면 어떤 의미에서 ‘믿을 만하다’는 것인가? 누가 보더라도 몰아주기식 사건배당의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 뻔히 들여다 보이는 경우다. 


선고와 영장 심리까지 간섭, 법관 독립 뒤흔드는 일

그런데 여기까지도 어떻게 보면 덜 심각하다. 몰아주기식 사건배당을 했던 그 형사수석부장판사가 단독판사들에게 촛불집회에 참가한 혐의로 즉심에 회부된 피고인들에게는 통상적인 벌금형이 아니라 더 무거운 구류형을 선고하라고 요구했다는 언론보도는 가히 충격적이다.

또한 촛불집회 참가자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할 때에는 ‘증거인멸과 도주우려 없음’의 사유보다 ‘혐의 소명 부족’의 사유를 제시하라는 요구도 했다고 보도되고 있다. ‘소명 부족’으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검찰의 보강수사를 통해 영장 재청구와 영장 발부가 가능하지만,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 없음’을 이유로 한 영장기각은 검찰의 영장 재청구가 있어도 그 후 영장이 발부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즉, 재청구를 통해서라도 영장이 잘 발부될 수 있는 결정을 하라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법관의 독립’을 뿌리채 뒤흔드는 일로,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어떤 형으로 처벌할지, 영장사건에서 무엇을 기각사유로 할지는 재판의 중요한 핵심사항이다. 이 판단에 근무평정권이라는 인사권을 갖고 있는 상급법관이 개입하여 노골적인 요구를 했다면, 법관은 헌법, 법률, 양심이 아니라 상급법관의 ‘주문’에 따라, ‘독립하여’가 아니라 상급법관에게 ‘예속되어’ 재판을 한 것이 된다. 아주 심각한 위헌적 상황이다.

이러한 언론보도가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왜 그랬는지, 당시 법원장이나 형사수석부장 등 당사자들이 국민들에게 정확하게 설명을 해야 한다. 나아가 대법원장은 즉각 진상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잡을 일이 있으면 바로 잡고,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문민정부에 들어와서부터는 특히 전국 모든 법관들의 인사권을 틀어쥐고 있는 대법원장이나, 인사권을 사실상 나눠가지는 법원장, 부장판사들로부터 개별법관의 독립이 침해되고 있다는 지적들이 많았다. 고위법관들이 인사권을 무기로 하급법관들을 줄세우고 길들이려 한다는 불만들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사법부의 제일차적 당위목표이자 존재이유인 ‘사법권 독립’이 사법부 밖으로부터가 아니라 이제 사법부 안으로부터 위협당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또 다른 모습의 ‘사법권 독립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법관이 재판에서 헌법, 법률, 양심이 아닌 다른 그 무엇을 더 중요하게 고려하기 시작한다면 국민들은 이런 법원을 불신할 수밖에 없다.

법원이 신뢰를 얻는 데에는 부단한 노력과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군사정권하의 법원에서 목도했듯이 국민의 신뢰를 잃는 것은 잠깐임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들이 더 이상 법관과 법원의 ‘정치적 독립성’을 걱정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그동안 많은 신뢰와 지지를 보내준 국민들에게 법원이 해야 할 도리다.

(이 글은 2월 26일 오마이뉴스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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