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칼럼(jw) 2009-07-15   1255

[헌법이 죽어간다] 우리는 왜 광화문 네거리를 건너지 못했을까

표현의 자유를 잘 몰랐던 한 시민단체 활동가의 이야기

비가 오는 날은 조심해야 한다. 우울해질 수 있으니까. 그래서일까.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먹구름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우리들을 쫓아낸 이유가.

아무래도 잘 모르겠다.

13일 저녁 6시,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다섯 명 남짓의 사람들이 모였다. 한 사람은 통기타를 들고 있었고, 한 사람은 헌법1조 노래를 불렀다. 스티로폼으로 만든 헌법전을 몸에 뒤집어 쓴 사람도 있었다. 나는 종이로 만든 주사기를 들고 머리에는 역시 종이로 만든 간호사 모자를 썼다. 내 생각에도 좀 모양새가 안 났다. 기자들이 사진 찍으러 온다고 했는데 이래서야 창피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런데 왜 경찰들은 우리를 둘러쌌을까?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으면 집회다. 신고하지 않았으니 불법집회다.” 그렇게 말했다.

맞다. 우리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제헌절 예순한돌을 맞아 우리는 ‘헌법이 죽어간다’라는 퍼포먼스를 하기로 했다. 죽어가는 헌법을 살리자는 의미였다. ‘헌/법/이/죽/어/간/다’라는 글씨가 하나씩 적힌 피켓을 일곱 명이 나눠 들고 있었으니 집회인 모양이다. 게다가 신고를 하지 않았으니 ‘불법’ 집회가 되는 거였다.

부끄러운 고백이겠지만 나는 법을 잘 모른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읽어본 적은 있지만 ‘이 정도면 괜찮겠지.’ 안일한 생각을 했다. 헌법에 담긴 정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표현의 자유가 있고,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그 말을 하고 싶었다. 지금은 마치 남의 얘기가 되어버린 듯한 그것들이 원래 나의 권리였다는 얘길 하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요즘은 흔한 ‘MB OUT’이라는 팻말 하나 없었고,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반대한다는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용산에서 사람이 죽어가도 분향소를 치우라는 계고장을 보내는 기막힌 사회, 그 답답함 때문이었다. 마음 놓고 슬퍼할 자유도 없는 이곳이 너무 못마땅해서였다.

광화문 네거리 횡단보도를 노래를 부르며 몇 번 왔다갔다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횡단보도는 밟아보지 못했다. 동화면세점 앞에서 몰려 있는 우리를 둥그렇게 두 겹으로 둘러싼 경찰, 기자들은 사다리를 놓고 찍고 있었다.

부끄럽고 창피했다. 함께 따라 나온 학생들에게 정말 미안했다. 이런 일을 당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사실 일주일 전부터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었다. 피켓을 들 것인지 물었다. 그렇게 되면 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 했다. 그래도 별일이야 있겠나 생각했다.

함께 분노하고 싶었다. 한 사람이 맞서기에 사회의 벽은 너무 높고 단단하다. 누군가 곁에 있어주지 않으면 분노는 좌절이 되고 말 것이다. 내가 언젠가 그 자리에 선다면 어떨까 하는 막막함, 그런 것들이 나를 이끌었다.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 내 잘못도 있다. 내가 당한 작은 막막함은 그보다 더 큰 막막함에 비하면 명함 내밀 거리가 아닐 거란 생각도 든다. 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토록 작을까. 힘으로 누르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되었을까. 어제는 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 어쩌면 내가 우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진영 (사법감시센터 간사)

헌법이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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