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칼럼(jw) 2005-08-03   1739

<안국동窓> 대법원장은 법관 승진코스가 아니다

미국 사법사(司法史)에서 가장 위대했던 대법원장을 들라면 많은 미국 사람들은 서슴없이 워렌 대법원장을 꼽는다. 그런 워렌도 1950년대 초 아이젠하워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장에 임명될 당시만 해도 법관 경력이 전혀 없는 정치인에 불과했다. 물론 로스쿨은 졸업했지만, 졸업 후 줄곧 공화당원으로 정치 일선에 뛰어들어 캘리포니아 주지사까지 지냈던 그였다. 이 워렌 대법원장이 이끈 진보적이고 사법적극주의적인 미국 대법원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미국국민들에게 법원이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느냐를 보여준 모범적인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며칠 전 14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새 대법원장의 바람직한 인선기준에 대해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토론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제시된 바람직한 새 대법원장의 모습으로는, 과감한 법원개혁을 통해 우리 사법부의 고질병인 사법관료주의를 혁파하고 입법부나 행정부 견제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며 ‘소수자와 약자 보호’라는 사법부 본연의 사명에 충실할 수 있는 새로운 사법부를 이끌어 낼 참신한 인사여야 한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그 다음날 ‘시민단체 사법 간섭 이렇게 막가나’라는 선정적인 제목하에 시민단체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에 대해 악의적인 폄하로 일관하는 사설을 실었다. 전체적인 주장의 맥락을 소개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부분 부분을 짜집고 과장하고 확대한 언론 폭력이었다.

우선, “이런 주장을 내놓은 인사 가운데 스스로 법원이나 검찰에 몸담아 사법사를 왜곡했던 공범은 없는지 궁금하다”는 구절은 이번 시민단체의 의견개진이 법조인이 아니라 일반 시민을 대표하는 단체들의 토론마당이었다는 점을 모르고 한 말이다. 아니, 알면서 일부러 호도했다는 느낌이 든다.

“대법관 경력을 가진 사람은 무조건 안 된다는 논리는 우리 사법사의 정통성을 통째로 부인하는 행위”라는 부분도 그렇다. 시민단체들이 대법관 경력자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수십년간의 법관생활 끝에 우리 관료사법의 진원지라 할 수 있는 대법원에서 대법관을 지냈으면, 사법관료주의의 타성에 젖을대로 젖어 과감한 법원개혁을 수행하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판사들은 바쁜 업무 중에서 법률 연구에 시간을 쪼개고 몸가짐을 비춰보면서 올바른 판결을 내리기 위해 밤새워 고민한다. 그런 그들이 지향하는 최종 목표가 대법관이다”이라는 주장도 대법관이나 대법원장을 판사로서의 당연한 최종적인 승진코스 정도로 여기는 일부 관료귀족법관들의 삐뚤어진 텃세의식에 편승한 주장에 다름 아니다.

최근 익명의 방패 뒤에 숨어, 대법관 출신이 아닌 인사가 대법원장이 되면 사표를 내겠다고 국민에 대한 협박을 서슴치 않는 현직 귀족법관들의 주장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사법관료주의적 타성과 왜곡된 특권의식에 사로 잡혀 텃세나 부리려는 그런 법관들은 누가 새 대법원장이 되느냐에 관계없이 이번 기회에 법원을 떠나주는 것이 법원개혁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워렌 대법원장의 경우가 이야기 해 주는 것처럼, 한 나라의 대법원장 자리는 엘리트 귀족법관들의 최종 승진코스가 아니다. 냉철한 법률적 지식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꿰뚫어 보는 혜안과 약자 보호의 따뜻한 가슴을 지닌 인사가 앉아야 할 자리이다. 특히 이번 대법원장에는, 법원개혁에 대한 의지가 투철하고 새로운 대한민국 사법사를 열어가기 위해 자신의 한 몸을 던져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참신한 인사가 임명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분명 국민적 바램이며 역사적 요구라 믿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워렌 같은 새 대법원장을 가질 수 있는 축복을 받지 못했다는 말인가.

*이 칼럼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임지봉 (건국대 교수,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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