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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05.08.22
  • 939
정·경·언·법의 유착관계를 여실히 드러내었던 도청사태는 이제 국정원 개혁론에까지 이어지면서 문어발식 논점 흐리기의 국면이 본격화하고 있다.

실제, 도청의 작폐는 비밀 정보기관을 설치하는 순간부터 예상되는 일이다. 그래서 중앙정보부가 5·16 쿠데타를 위해 만들어진 이래 이 기구가 집권세력들의 권력기반으로 존재했음을 감안한다면, 새삼스럽게 ‘국정원이 도청했다’고 놀랄 것이 아니라 도청이 다반사일 수밖에 없는 ‘비밀정보기관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점에 경악할 일이다. 즉 비밀정보기관의 도청행위가 아니라, 정치권력이 오로지 자신의 통제에만 복종하는 비밀정보기관을 자신의 지휘계통 아래에 보전해 왔다는 사실이 문제인 것이다.



여기서 해외정보처 설치 등의 국정원 조직개편론은 나름으로 타당은 하되 일면 한계를 가지게 된다. 문제는 국정원의 업무와 조직이 아니라 그것이 ‘비밀’로 되어 있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 국정원은 이런저런 명목으로 1조원이 넘는 예산을 통제하고, 국내보안정보의 수집·처리권, 국가안보와 관련한 범죄에 대한 수사권, 통일부 등 9개가 넘는 중앙행정기관에 대한 정보 및 보안업무의 기획조정권, 국민들에 대하여 국가에 대한 충성심·성실성 및 신뢰성을 조사하는 신원조사권 등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예·결산이나 조직, 활동 등은 철저한 비밀주의에 가려져 어느 누구도 감히 근접할 수 없다. 국회의 정보위원회가 통제한다고는 하나 그것은 법조문 상의 수사에 그칠 뿐 자원도 능력도 의지도 갖지 못한 우리 국회의 처지에서는 언감생심이다. 국정원이 ‘비밀’인 것은 대통령과 국정원장을 제외한 모든 국민에 대하여 비밀이라는 말과 통하는 셈이다.

실제 그동안 국정원 개혁론은 적지 않게 제기되었다. 하지만 “국정원은 비밀정보기관”이라는 명제 하나로 이 노력들이 하나같이 와해되어 버리고 만다. 비밀기관이기 위해 국회의 통제도, 감사원의 감사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바로 이런 감시와 견제장치의 누락이 이로 하여금 한결같이 권력에 맹종하게 하고 그 와중에 권한남용, 인권침해, 정치관여, 부정부패의 터전이 되도록 한다.

하여 현 시국이 진정으로 국정원의 개혁을 원한다면, 무엇보다 그 기관의 비밀성 자체를 폐기하여야 할 것이다.

국정원을 비밀정보기관으로 규정하고 그 비밀의 이름으로 오로지 대통령만이 이를 독점하여 통할하는 현재의 시스템 자체를 포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정보환경은 과거 고정된 국경을 두고 서로 염탐하고 간첩하는 비밀정보의 시대와는 전혀 다른 정보활동을 요구한다. 정보과잉의 우려가 넘실대는 이 시대에 대부분의 유용한 정보는 도처에 널려 있는 정보에 대한 분석과 평가의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지 도청 등의 방법으로 비밀리에 수집되는 -더러 그 신뢰성도 위태한- 정보의 양에 달린 것은 아니다. 만보를 양보하더라도 정보활동이 비밀이기 위하여 그 조직 자체가 비밀이 될 필요도 없다. 더구나 국정원과 같은 거대한 기구 전체를 비밀로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범죄수사권과 국내보안정보수집권을 폐지하고 그 권한을 해외정보와 대북·대테러정보에 한정하자는 개혁논의와 더불어, 국정원 자체에 대한 통제권 역시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 모두에 되돌려 놓는 작업이 필요하게 된다. 비밀은 더 이상 필요악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악일 따름이다. 국정원은 이제 그 ‘비밀성’을 탈피하고 순수한 정보기관으로 국민들의 부릅뜬 시선 앞으로 과감히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 이 칼럼은 한겨레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 사법감시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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