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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06.06.02
  • 1391
“혹독한 관리들은 법조문만을 행사하여 그 위엄을 나타내고자 하는데 이들은 대개 그 끝이 좋지 못하다.”

〈목민심서〉 형조에 실린 정약용의 경고다. 대저 관료들이 권력을 휘두름에 있어 법조문만한 것이 없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모양이다. “법이 용서할 수 없으면 의로써 결단을 내려 용서하라”는 그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관료의 전유물이 된 법은 오로지 그들의 기준에 따라 해석되고 적용되는 권력의 수단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그리고 우리는 그 예를 사법관료들에게서 경험한다. 실제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권위주의 시절의 정치권력이 빠져나간 공간을 법과 합리의 규율들이 채워나가게 됨은 당연한 수순이다. 권력자들이 마음대로 처단하던 일들이 이제는 법의 이름으로 혹은 법적 절차를 통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처리되도록 바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법관료들은 이 법을 독점함으로써 그대로 자신의 권력으로 치환해 버린다.

우리 사법부는 권위주의적 통치가 시작되면서부터 국가가 관리하는 하나의 시험으로 선발되고 하나의 교재와 하나의 교육과정에 의해 훈육받으며, 하나의 계층구조에 복종하며 하나의 법 도그마만을 전수받아 온 관료 법관들로 구성되어 왔다. 더구나 이 조직의 꼭대기에서 모든 법관에 대한 생살 여탈권을 장악하고 있는 대법원장은 일반 법관들이 하는 재판에 대하여까지 실질적인 지휘·감독권을 행사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우리 사법부는 철저한 관료 조직으로 구성되면서 일종의 ‘법원 동일체’라 할 상명하복의 체제를 통해 규율되는 파행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사법부는 과거 ‘회한과 오욕의 시대’를 강요당하거나 권력의 시녀임을 ‘자초’했을 뿐 아니라, 민주화와 개혁의 시대에조차도 국민으로부터 유리되게 된다. 법률 만능의 형식 논리와 개발 독재에 오염된 법 도그마를 깨쳐버리지 못한 채 새만금사업의 재개를 용인한 대법원의 예에서 보듯, 우리 법원은 시민사회가 제기하는 법적 요구들을 유효한 법 판단으로 수용함으로써 실질적이고 민주적인 법치를 이루어낼 수 있는 능력은 물론 그 의지조차도 부실하다. 사회는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그에 따라 여성·환경·노동·소수자·인권 등 사회적 정의에 대한 요구는 무수히 분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의 리그’에 차폐된 우리 법원은 이런 현실 사회와 유효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민사회는 5명의 대법관을 새로 임명하게 되는 현재의 상황을 주시한다. 여기서 기수와 서열에 따른 법원장급 법관들의 승진임명 운운함은 사안의 본질을 왜곡한다. 그것은 대법원을 법관들의 승진욕구 충족을 위한 사적 기관으로 전락시킬 뿐이다. 중요한 것은, 13명의 대법관이 한목소리로 관료적인 법 도그마를 반복 재생산하는 법 기계로서의 대법원이 아니라 사회와 유기적이고 능동적으로 의사소통하면서 제대로 된 법 판단을 이룰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갖춘 대법원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념적으로 균형 잡힌 대법원’을 향한 시민사회의 요청은 바로 이 점을 말한다. 그 판결이 보수냐 진보냐를 따지기 이전에, 대법원의 재판과정이 보수와 진보를 아울러 다양하게 형성되는 법적 요구들을 폭넓게 수용하고 이를 올곧은 법 규율로 가공할 수 있는 대법원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법원이 이번 대법관 인사를 계기로 이런 요구를 충분히 실천할 수 있을 때 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정책 법원’으로서의 대법원은 제값을 발하게 될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한상희(사법감시센터 소장, 건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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