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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06.07.17
  • 1400

"'사법부 독립', 비판 막기 위한 '카드' 아니다"



5명의 대법관이 지난 10일 퇴임했다. 그동안 격무에 시달렸을 그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사법부를 향해 쓴 소리 하기가 직업인 입장에서, 소리 높여 뭔가를 주장해도 법관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만큼 허탈한 것도 없다. 그런데 퇴임한 대법관께서 우릴 기억하고 있었다.

퇴임하는 5명의 대법관을 대표하여 퇴임사를 읽은 강신욱 전 대법관은 "판결에 대해 진보니 보수니, 걸림돌이니 디딤돌이니 하며 승복하지 않고 원색적이고 과격한 언동으로 비난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전 대법관은 또 "이런 현상은 사법권의 독립을 저해하는 우려스런 현상이다"고 강조했다.

"비판으로 독립이 침해될 만큼 나약한 존재인가"

<조선일보>는 여기서 언급된 '디딤돌, 걸림돌'은 내가 일하고 있는 참여연대가 지난 2005년 초 대법원의 '종교적 병역 거부 유죄' 판결을 인권 보호와 사회 정의 실현에 '걸림돌'이 되는 판결로 선정해 발표한 것을 의미한다고 소개해줬다. 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곳이 별로 없고, 그 선정결과를 제본해 대법관들에게도 1부씩 전달했으니, 우리를 기억해준 것이 맞을 것 같다.

기억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대법관의 '소화' 능력은 안타깝다. 법관은 사회의 온갖 소리를 다 듣고도 자신의 소신과 양심을 지켜 재판을 할 만큼 넉넉한, 배운 것 없는 사람의 이야기부터 동료 법관의 이야기까지 듣고 소화해 낼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이쪽 말에 솔깃하다가, 저쪽 말을 듣고 불쾌해져, 소신과 양심, 아니 정의마저 놓쳐 버릴 것이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기 이전에는 법원의 판결을 비판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법관들이 독립적으로 판결하는 게 아니라 정치권력이 테두리를 정해두었으니 판결이 비판과 토론의 대상이 될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법부가 다른 권력기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지금은 아니다.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시민들 각자가 법원 판결을 나름대로의 이유와 근거를 가지고 토론하고 비판한다. 유식하지 못하고 품위 없는 비난도 끼어 있지만 그게 뭐 그리 대수인가? 그런 품위 없는 비난은 모든 권력기관과 집단이 공통적으로 짊어지고 있는 숙명 아닌가.

시민사회 차원의 법원 판결에 대한 비판이 '법관의 독립적 재판'을 침해할까? 비판과 토론으로 사법권 독립이 침해될 만큼 사법부와 법관들이 나약한 존재인가?

그보다는 법원의 판결은 비판할 수 없는 '성역'이라는 기본 시각이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쓴 소리 듣기 싫고 변화하기 싫다는 속내에서 나오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우리나라 법조 실무계나 법학계에서 하는 법원 판결에 대한 비판은 '비판'이 아니다. 판례를 해설해주는 '판례평석'은 넘쳐나지만, 판례의 논리와 근거의 잘잘못을 따지는 '비판'은 가뭄에 콩 나듯 한다. 이래서야 대한민국의 사법이 발전할 수 있겠는가.

"고매한 법조인들끼리 알아서 잘 할 것이다"?

퇴임 대법관 한 사람의 발언에 과민 반응하는 게 아니다. 비판언론을 지향한다는 보수 신문들은 더 심하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등은 시민단체가 대법관 후보자를 추천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는 것에 대해 비난하고 있다.

<문화일보>는 지난 11일 "재출범 대법원, '외부간섭'부터 극복해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강 전 대법관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사법부 독립은 권력뿐 아니라 사회 제세력으로부터 외압 배제가 그 기본전제"라고 주장했다. 사회 여론으로부터 독립적 재판이 틀린 말이 아니고 사법부 독립이 틀린 말이 전혀 아니지만, 사법권 독립을 핑계로 판결에 대한 시민단체의 비판과 토론을 두고 불편한 심기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한술 더 떠서 <동아일보>는 9월에 있을 헌법재판관 인선과 관련해 지난 6월 13일 "헌재 구성까지 시민단체 권력에 휘둘리려나"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추천할지 말지 결정하지도 않았는데, 두 달 전부터 미리 걱정하고 있는 셈이다.

대법관이 될 만한 사람의 기준을 제시하고 좋은 사람이 있으면 추천하고, 또 그 추천결과를 공개하는 게 왜 비난받아야 할 일인가? 최고법관으로 거론되는 인물을 검증하고 가리는 것은 권력 감시를 본연의 임무로 하는 언론의 역할 아닌가? 언론은 대통령, 대법원장, 시민단체 등이 지명 또는 추천한 인물이 자질이 있는 인물인지 검증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보수언론들은 시민단체가 제시한 기준이나 추천한 인물이 적합한지 따져보지도 않고 그저 시민단체의 추천 자체에 칼을 들이대고 있다.

신문은 감시의 장이기도 하면서 공론의 장이기도 하다. 시민사회에서 어떤 대법관을 희구하는지, 또 어떤 대법관은 기피하고자 하는지를 소개하고, 토론하는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 곳이다.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구성은 고매한 법조인들끼리 알아서 잘 할 테니 시민단체는 입 닫고 있으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공기(公器)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걱정하듯 얼마 후면 9월에 바뀔 헌법재판관 5명을 뽑아야 한다. 현 정부 들어 대통령 탄핵심판, 행정수도 이전 위헌심판 등을 통해 헌법재판관이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 모두들 절감했을 법하다. 후보자가 법관이라면 그 사람의 과거 판결사례를, 변호사라면 어떤 변론을 했는가를 조사하고 토론하고 비판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바람직한 헌법재판관은 어떤 자질을 갖춘 사람인지, 그런 자질을 갖춘 사람이 누구인지를 공론의 장에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검증할 필요도 있다.

비판의 영역에 들어오길 거부하는 법조인들은 오히려 사법부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사법부에 대한 시민사회의 토론과 비판활동마저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보수 언론의 태도는 사법부뿐만 아니라 사회의 발전도 가로막는 것이다. '사법부 독립'은 사법부에 대한 비판과 토론, 변화의 목소리마저 막는 데 쓰이는 카드가 아니다.

<프레시안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박근용(참여연대 사법감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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