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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05.10.18
  • 1093
겨우 6개월 된 검찰총장이 결연한 표정으로 사퇴했다.

그가 임기의 4분의 3을 버린 이유는 무엇인가. 말 그대로 검찰의 중립성이나 정치적 독립성을 위한 것이었나. 김종빈 전 검찰총장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검사들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의 전격 사퇴가 앞으로 검찰의 중립성 확보에 도움이 될까. 사퇴를 결심하거나, 사퇴를 결심하도록 사실상 종용한 사람들의 계산은 단순하다.

검찰총장이 자신의 목을 자르듯이 자리를 그만 둠으로써 임명권자와 정부에 강력한 항의 표시를 하고, 아울러 일부 여론과 야당을 자극해 동정심섞인 검찰 응원의 분위기를 돋우고, 나아가 법무부장관의 퇴진 요구까지 유도할 수 있으리라는 셈법이다. 또 이후로는 되도록 검찰에 대해 함부로 참견하지 말라는 시위가 담겨 있다.

따지고 보면 보통 싸움이 아니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사태가 벌어졌단 말인가. 얼마나 대단한 일이 터졌길래, 국기가 흔들릴 정도의 이 지경에 이르게 됐는가. 진정 찬찬히 따져보자고 호소하고 싶다.

사소한 발언에 왜 국가 형벌권으로 맞서야 하나

발단이 된 것은 강정구 교수 사건이다. 그 사건이란 한마디로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강 교수의 글이나 말은 타당성 여부 이전에 아무런 구체적 위험성에 닿아 있지 않다. 발언의 내용이 터무니없으면 없을수록 더 위험성은 없다. 그래서 국가보안법은 필요없다는 것이다. 그런 주장에 왜 국가의 형벌권으로 맞서야 한다는 말인가.

천 장관이 건국 이래 최초로 검찰총장에게 공식 수사지휘를 한 것도 사안이 사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 교수 사건이 단순히 경미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강 교수에게 적용 가능한 국가보안법 제7조의 1항이나 5항은 국보법 위반 행위 중에서도 아주 가벼운 쪽이다. 그리고 근년에 그 조항으로 구속한 사례도 없다. 게다가 국가보안법은 어차피 폐지의 논의 선상에 있고, 개폐하더라도 제7조는 그 첫번째 대상이다. 그러므로 법무부장관으로서는 정책적 고려까지 하여 검찰에 의견을 전할 수 있다.

참여연대는 "법무부장관이 구체적 사건에 관하여 검찰총장을 통해 지휘 감독할 수 있도록 한 검찰청법 조항은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현행 법률에 따라 장관의 수사지휘는 적법한 권한이다. 그 지휘의 내용이 위법하여 심각하게 부당하지 않는 한 누구도 탓할 수 없다.

더군다나 천 장관이 지휘한 내용은 강 교수를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수사의 절차에 관한 인권 보호적 차원의 관심 표명도 포함된 조치다. 따라서 사건의 실체에 대한 간섭이 될 수가 없다. 수사한 결과 기소 여부는 검사가 판단하면 되고, 기소되면 유무죄는 판사가 가리면 그만이다.

기소 여부는 검사가, 유무죄는 판사가 가리면 그만

일반적 지휘가 아니라 구체적 사건에 대한 직접 지시라서 처음 당하는 검찰총장이나 검사들의 입장에서는 불편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법률에 근거한 수사지휘서가 신문 지상에 사진으로 보도된 투명한 절차는 서로 얼마나 당당한가. 혹시라도 검사들이 지난 날 법무부의 전화 한 통화로 진행 중이던 수사에서 손을 멈추던 시절의 굴욕감에 대한 보복을 지금에 와서 하려는 건 아닌지 되새겨 보자.

어쨌든 이번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는 적법하고 정당한 권한 행사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청법 제8조를 둘러싼 극단적인 해석의 차이는 지난번 대통령 탄핵 논란과 흡사하여 씁쓸하다. 양극단의 두 결론 중 하나를 선택하여 법 해석 논리를 꿰맞추는 견강부회의 거대한 청백전이 이 사회를 짓누르는 듯하다.

물론 검찰청법 제8조의 개폐도 얼마든지 토론할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 사건에서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에게만 지휘 감독할 수 있다는 규정을, 사실상 검찰에 대해 지휘 감독해선 안 된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강변에는 아연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김종빈 전 검찰총장이 천 장관의 불구속수사 지휘를 받아 그 취지를 검사들에게 전하고 따랐으면 별 문제가 없었을 수도 있다. 강 교수 사건 자체의 성격이나 불구속수사 지휘 자체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며, 특히 검찰의 독립성을 해하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해 버렸으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검찰총장은 스스로 또는 떠밀려서 그 의미를 확대 해석함으로써 파란을 자초한 면이 있다. 검찰총장이 장관의 지휘 내용을 수사 검사들에게 전하면, 수사 검사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또 그 다음의 문제다.

공무원은 법률에 의해 위법하지 않는 상급자의 지시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 의견을 강하게 표시하거나 다른 방식을 제시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이견의 표출과 항명의 한계는 엄격히 구분돼야 마땅하다.

스스로 공안사건 주인공 된 검사들

그런데 이번 사태에서 검찰총장이 대표한 검찰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장관의 지휘를 수용한다면서 사상 초유의 반발을 시도했다. 대검 공보관을 통해 발표한 성명의 전문을 보면, 법무부장관에 대한 항명이자 선전포고나 다름없지 않는가.

이런 행태야말로 국가의 기강을 흔드는 공안위협 행위라 할 수 있다. 사소한 공안사건 하나를 계기로 스스로 진정 공안사건의 주인공이 되고 있음을 검사들이 모르고 있다.

검찰총장의 사퇴는 한편으로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최선이 아니었을 뿐더러 적절하지도 못했다. 아울러 대검 차장 이하 검찰 간부들의 이중적 태도도 눈에 보이는 듯 하다.

검찰 간부들로서는 기실 꽃놀이패놓듯 하는 심경이 있었을 터이다. 비검찰 출신 장관과 그 위의 임명권자에까지 맞서 싸움을 시켜두고, 이기면 검찰 모두의 이익이고 지면 총장 하나 밀어내는 셈 치면 되는 것이었다. '법 준수' 운운하며 거센 항명을 하고, 검찰의 동요 방지를 구실로 사표는 내지 않겠다며 검찰총장 등만 슬쩍 떠민 꼴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들 중 다음 검찰총장이 되는 사람이 있다면 장관에 대해 어떻게 처신하겠다는 뜻일까. 논리적으로 행동한다면 줄줄이 대항하고 차례로 사표를 써야 할 것이다.

만약 또 비검찰 출신을 검찰총장에 임명하면 어떻게 할까. 검찰 간부를 법무부장관에 임명하고, 비검찰 출신을 검찰총장으로 발탁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것일까.

이제 다음 순서는 법무부장관의 퇴진을 묻는 일일 테고, 마땅히 한나라당이 그 일에 나설 태세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제1야당은 그 형식에 맞게 사리를 잘 따져보고 신중하게 대처할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다음 대선까지 줄곧 정치 공세만 퍼부어서는 결과에 도움이 될 것이 크게 없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지 않는가.

사건을 이 지경으로 만든 주역은 언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면, 아직 진행형인 이번 사태는 그 근원에서 따지면 허망하기조차 하다.

마땅히 사소한 일로 평가하고 넘겨야 할 강 교수 사건을 이렇게 만든 주역은 누구인가. 바로 언론이다. 내 친구들이 근무하는 <동아일보>, 후배들이 포진한 <조선일보>, 선배들이 아직 남아 있는 <중앙일보> 등의 신문들이다. 시시콜콜 지엽적인 한 마디를 제목으로 뽑고, 꺼져가는 반공의 불씨를 찾아내고, 여론을 부추기는 일을 기대 이상으로 수행하여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번 사건은 단순히 '반 강정구' 감정, 국가보안법 폐지,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검찰의 중립성이나 독립성의 범위 등에 대한 찬반론의 싸움이 아니다. 근본은 역시 지금 정부 또는 노 대통령에 대한 찬반에 있다. 그리하여 노무현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의 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비거리만 생기면 달려들어 일종의 대리전을 펼치는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면 심각한 문제다. 말하자면 이런 경향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사회 통합의 가능성 정도는 오히려 다음 문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검사들도 성향에 따라 두 배로 뽑아 정권에 따라 대기시키거나 배치해야 할 지경이다.



그러므로 다 함께 비이성, 광기, 과잉의 감정 상태에서 벗어나 차분하게 생각할 기회를 가져야 하겠다.

우선 검찰은 반성해야 한다. 언론은, 역설적으로 말하면, 차라리 당분간 침묵하는 편이 국가와 사회의 안정을 위해 낫겠다. 야당은 공부를 더 해야 하고 여당은 자숙해야 한다. 나도 그 신문사들에 근무하는 친구, 후배 그리고 선배들에게 전화해서 만나자고 할 생각이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나와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조심스럽게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차병직 (집행위원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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