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칼럼(jw) 2011-07-15   4944

최고법관 인선, 다양성 확보가 관건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내년 말까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는 실로 대대적인 물갈이가 예정되어 있다. 올해 9월에 퇴임하는 이용훈 대법원장의 후임 인선을 비롯해 내년까지 14명 전원의 대법관들이 현 정부에 의해 임명되게 되어 있고,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3분의 2에 이르는 6명의 재판관들이 현 정부에 의해 임명될 예정이다.
대법관이 누가 되고, 헌법재판관에 어떤 사람이 임명되느냐가 당장 내 생활에 무슨 영향을 주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 최고법원들은 국민 일상생활의 구석구석에 큰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기관들이다. 


우선 대법원은 최종적인 법해석과 법적용의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물론 법을 만드는 것은 입법부이지만, 그 법의 의미를 구체적 사건에서 최종적으로 밝혀, 비로소 법이 국민생활에 살아 적용되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대법원을 통해서다. 예를 들어, 법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종래 여성에게 인정되지 않던 종중원 지위를 인정함으로써 여성도 종중 재산에 대해 권리를 가지게 된 것은 대법 판결을 통해서였다.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다. 헌법의 해석을 통해 국회가 만든 법률 등 일체의 공권력 행사나 불행사에 대해 위헌무효를 선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랜 세월 우리사회를 지배해오던 호주제를 사실상 무효화시키는 일을 한 기관은 헌법재판소였다. 

바로 여기에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인적 구성이 다양화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갈수록 다원화되는 우리 사회에서 국민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사와 이익을 이들 최고법원의 판결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대법관과 헌법재판관들 사이에 직업적 배경, 성별, 정치적 성향 등에 있어 다양성이 최대한 확보되어야 한다. 

실제로 2004년에서 2006년에 걸쳐 우리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재판관 인선에는 이런 측면에서 적지않은 진전이 있었다. 

현정부 들어 기수·서열 중심으로 후퇴

헌법재판관으로서 여성 최초로 전효숙 재판관이 임명되었고, 대법원에도 김영란 박시환 이홍훈 전수안, 김지형 대법관 등 기존의 기수와 서열 중심의 인선방식을 뛰어넘는 새로운 인선이 이루어졌다. 대체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 헌법재판관이나 대법관들이 최고법원에 들어감으로써 우리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에 적지않은 변화가 찾아왔다. 

최고법원의 재판에서는 사회적으로 찬반의 논란이 많은 사항이나 소수자 및 약자의 권리에 대한 사항들에 관해 재판을 통한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것이 판결에 반영되어야 한다. 그것이 최고법원이 감당해야 하는 역할이다. 그런데 이러한 역할 수행은 미국 연방대법원처럼 최고법원의 재판관들 중에 진보성향의 인사와 보수성향의 인사가 골고루 포진해서 재판부가 ‘성향상의 균형’을 이룰 때 가장 잘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 대법원의 경우 진보적인 성향의 대법관들이 전원합의체를 구성하는 14인 중 과반수에는 이르지 못하는 5인에 그쳐, 견해가 갈린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이들의 입장이 소수의견에 머문 경우가 많기는 했지만, 과거보다는 훨씬 더 치열한 논쟁과 토론이 대법원 내에서 벌어졌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단행된 최고법관 인사는 이러한 ‘대법원 및 헌법재판소 구성의 다양화’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며 다시 종래의 기수 및 서열 중심의 경직된 인선기준으로 후퇴하고 있다. 하나같이 ‘남성, 서울대, 현직 판사’의 과거 틀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자리는 판사 승진경쟁의 최종종착점이 아니다. 하급심에서 민·형사법의 법리에 근거한 법률재판이 이루어졌다면, 이들 최고법원의 재판관들은 하급심 판결과는 좀 다른 관점에서, 헌법정신이나 우리 사회의 보편적 정의 관념에 입각해 사안을 바라보고 재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헌법이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을 일반 법관과 구분해 따로 규정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다양한 정의’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미국에서는 최고법관인 연방대법관을 부를 때 ‘Justice’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대법관 한명 한명이 ‘최고법관으로서 정의를 말하는 자’라는 의미다. 우리도 국민 각계각층의 의사와 이익을 대표하면서 다양한 ‘정의’를 말할 수 있는 이들을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으로 뽑아야 한다. 앞으로 있을 대대적인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인사에서 국민들이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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