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칼럼(jw) 2012-03-06   5138

국민 모두가 검사가 되는 세상, 검사장 직선제의 꿈

한상희 교수(참여연대 운영위원장)

 

매주 한 번씩 인근 초등학교에 가 결석이나 담벼락 낙서가 왜 나쁜 일인지 5학년학생들에게 교육하고, 학교 내의 자치법정을 지도하며 왕따나 흉기소지와 같은 행위를 학생들이 스스로 평가하게끔 도와주는 검사, 그러면서 주민들을 향해 민생치안과 마을평화가 법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라고 선언하는 검사 – 지금 미국 LA에서 진행중인 지방검사장(District Attorney: D.A) 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가 내세우는 자기소개의 한 부분이다.

 

매주 한번씩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의 자치법정을 지도하는 검사

@atopy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런 검사를 꿈꾸면 안 될까? 서슬 시퍼런 위엄에다 조자룡 헌 칼 쓰듯 법전을 휘둘리며 자기들만 똘똘 뭉쳐서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검사가 아니라, 틈만 있으면 주민 곁으로 다가가 그들의 의견에 따라 자신의 판단을 맞추고자 애쓰는 검사를 우리 무지렁이들이 희망해 볼 수는 없을까? 여의도 주민들을 향해 정치인의 부정부패는 내가 뿌리 뽑겠다고 외치는 서울서부지검장이나, 다른 것은 몰라도 재벌의 횡포만큼은 발본색원하겠노라 장담하는 서울중앙지검장은 그냥 망상으로만 남아 있어야 할까?

 

 최근 총선을 앞두고 은연중에 세간의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는 검사장 직선제는 이렇게 당찬 갈구로부터 시작한다. 주민들 옆에서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요구와 바람을 법의 이름으로 집행하는 검사, 그래서 그랜저검사, 스폰서검사가 아니라 우리의 검사를 가질 수 있게 해보자는 욕망과 제안이 선거라는 정치흐름을 타고 이제 공적 담론의 장으로까지 편입되고 있는 것이다.

 

여의도 주민들에게 정치부패를 뿌리뽑겠다 약속하는 서울서부지검장

검사장직선제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현재는 검찰청법에 따라 대통령이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제청한 사람을 검사장으로 임명한다. 그것을 조금 개정하여 지역주민이 선거로 선출한 사람을 대통령이 그 지역의 검사장으로 임명하게 만들자는 것이 검사장 직선제의 골자이다. 종래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이 하던 몫을 지역주민들의 선거로 대체하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이슈로 등장하는 검사장직선제의 핵심이다.

물론 검사장직선제의 원류인 미국처럼 대통령의 임명권 자체도 없애버리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검찰제도 전반에 대한 혁신적인 변화가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검찰개혁의 정도가 상당히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식의 검사장직선제가 아니라 대통령의 임명권을 그대로 살려 놓은 절충형의 검사장직선제를 제안함은 이 때문이다. 검사장직선제를 검찰개혁의 결과로 가져오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검사장직선제의 도입을 통해 보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검찰개혁을 이루어내겠다는 전략적 고려가 작용하는 것이다.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의 몫을 지역주민 선거로 대체

justiceforall_2.jpg 검사장직선제는 검찰의 구성과 운영에 주민들이 직접 참여한다는 점에서 검찰제도를 민주적 체제로 전환시키는 가장 중요한 입구를 형성한다. 검찰의 권력성을 제거하고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법치가 아니라 국민들의 요구에 조응하는 법치를 실현하는 고리를 이루는 것이 바로 검사장직선제이다.

 

수사도 마음대로 기소도 마음대로 구속도 마음대로 하면서 법을 전횡하는 검찰,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 앞에서는 한 없이 나약하면서도 정작 주권자인 국민 앞에서는 ‘영감님’행세를 하는 검찰, 재직때는 ‘구악 척결’을 외치다가 퇴직하자마자 재벌회장의 가방을 들고 검찰청에 출석하는 검찰 – 이들은 검사장 직선제로 털어버릴 수 있는 지금 현재 검찰의 폐습들이다. 선거과정을 통해 주민들의 법수요를 체득하고 재선을 꿈꾸며 주민들과 소통하고 선거를 통해 자신의 업무에 책임을 지는 검찰, 그래서 주민들과 같이 호흡하며 같이 생활하는 검찰,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과 맞서며 법적 정의를 외치는 검찰 – 이들은 검사장 직선제로 획득할 수 있는 가까운 미래 검찰의 모습들이다.

 

권력 앞에선 한없이 나약하고 국민 앞에선 ‘영감님’ 행세하는 검찰

여기에 우리 법제가 미국식이 아니라 독일식이라는 주장은 조금 엉뚱하다. 검사를 선거하는 나라는 미국뿐이라는 반론 아닌 반론 또한 억지스럽다. 중요한 것은 총론적 결단이지 각론적 조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독일식 검찰제도는 엄격한 지방분권을 자랑한다. 검사장직선제는 그런 지방분권의 검찰체계를 가능하게 한다. 미국의 검찰제도는 엄격한 사법체제를 전제로 형사사법행정을 주민자치에 맡기고자 하는 발상에서 시작된다.

 

대통령이 임명권을 가지는 검사장직선제는 이 양자의 조화로운 결합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관할권문제나 일반검사의 임명·보직권같은 미세한 각론사항들은 검사장직선제의 기본이념에 맞추어 적절히 조정하면 충분하다. 정작 고민하여야 할 것은, 어설픈 비교법제나 억지춘향식의 미세조정문제가 아니라 검찰권력을 지금처럼 정치권력에 이양해 둘 것인가 아니면 주민자치의 민주적 통제하에 둘 것인가의 결단이다. 그리고 그 답은 이제 양대 선거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검찰을 정치권력에 맡길 것인가, 주민의 민주적 통제하에 둘 것인가

 

민주화를 모토로 하는 87년체제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지체되어 있는 개혁과제가 바로 검찰개혁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니, 보기 나름으로는 적나라한 국가폭력이 법치의 이름으로 포장되는 과정에서 검찰권력은 더욱 강대해지고 더욱 전횡적인 모습으로 악화되었다. 우리 사회의 민주적 발전 자체가 검찰권력에 의해 정체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검사장직선제는 이런 질곡을 떨쳐버리는 중요한 고리를 이룬다. 법과 정의는 그들의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것임을 확정하는 것 – 검사장직선제가 지향하는 민주적 법치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글은 참여사회 4월호에 실렸습니다.

* 일러스트레이션 제공 : 아토피(@ato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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