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칼럼(jw) 2010-04-12   2510

무덤에서 부활한 강압수사


박주민 변호사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

박주민 변호사4월 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서 인사청탁 대가로 5만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 결과를 놓고 평소 검찰을 지지했던 보수언론조차 ‘검찰이 허술한 수사로 망신을 자초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한마디로 검찰의 완패다.

 
한 전 총리 사건의 전체적인 외형을 보면 ‘피디수첩’,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등 이명박 정부 이후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했으나 결과적으로 무죄판결이 나온 사건들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사건이 다른 사건과 달리 하나 더 가지는 의미가 있다. 바로 ‘강압수사가 피의자가 생명의 위기를 느낄 정도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법원이 직접 인정하였다는 점이다.
강압수사는 국가권력인 수사기관이 정당한 범위를 넘어서 수사 대상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이미 수사가 아니라 범죄라 할 수 있고, 대개 수사기관이 사건에 대한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행하기에 실체적 진실 발견보다는 수사기관이 원하는 진술을 얻는 경우가 많아 목적적 정당성도 없는 패악이다.

사실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수시로 있었던 강압수사로 인해 수사기관은 국민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민주화 이후 수사기관은 국민의 지속적인 감시와 비판으로 강압수사라는 오래된 관행을 버렸고, 이후 강압수사가 직접적으로 법원에 의해 인정된 사안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무덤으로 들어간 줄 알았던 강압수사가 2000 하고도 10년에, 그것도 모든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사건을 통해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도대체 그동안 사라졌던 강압수사가 이 사건에서 다시 나타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 생각이지만 아마 정치적으로 주목받는 사건을 통해 뭔가 이루고픈 검찰의 욕심과 철저히 민주화되지 않은 검찰과 권력의 관계, 그리고 국민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 검찰제도 때문일 것이다. 국민에 의해 통제되지 않고 오직 권력에 의해서만 통제되고, 자신 이외에는 자신을 수사·처벌할 수 없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에서 나온 폐단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은 검찰 개혁이 왜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중요한 과제일 수밖에 없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법정에서 검찰에 불리한 증언을 했다는 이유로 증인을 소환하여 위증죄로 압박하고, 법원의 적법한 소송지휘에도 불복하는 등 공판 과정에서도 반복되었던 강압적이고 위법한 태도와, 선고를 불과 하루 앞두고 새 혐의를 공개적으로 흘리면서 압수수색 등 별건수사를 개시하는 검찰의 태도를 보면 더욱 그렇다.

이번 재판 결과에 반대하거나, 더 나아가 한 전 총리에게 도덕적 비난을 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재판 결과를 떠나 강압수사가 행해졌다고 인정된 부분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분하여야 할 것이다. 결과와 상관없이 인권을 유린하는 강압수사는 절대 이루어져서는 안 되며, 수사기관이 공포의 대상이 되는 상황을 용인하고서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없어지도록 검찰 개혁에 찬성하고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검찰 역시 이번 사건을 비롯하여 잇따른 무죄선고에 성찰과 자숙을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무런 제어 없이 온 국민이 금기시하는 강압수사에 나섰던 스스로를 개혁할 수 있는 진정한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어떤 영화에서 ‘우리 인간은 못 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는 대사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포스런 괴물이 되지 않으려는 검찰의 노력을 기대해 본다.

(이 글은 2010년 4월 11일 < 한겨레 >에 실렸습니다.)

첨부파일: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