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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참여재판
  • 2008.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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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2일(화) 대구지방법원에서는 강도상해죄로 기소된 이 모씨에 대한 재판이 있었습니다. 이 재판은 대한민국 역사상 올해부터 실시되는 일반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에 의한 재판, 즉 '국민참여재판' 제도에 따라 시행되는 첫 번째 재판이었습니다.
이 글은 재판을 직접 방청한 박근용 참여연대 사법감시팀장의 방청기입니다.


박근용(참여연대 사법감시팀장)


처음 본 것은 배심원이 되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들

지난 12일 오전, 내가 사는 경기도 군포에서 마을버스, 지하철, KTX고속열차, 택시를 타고 찾아간 곳은 동대구역에서 가까운 대구지방법원이었다. 첫 국민참여재판이 열리는 대구지방법원 11호 법정 앞에 도착한 것은 이날 10시 30분쯤이었다. 그러나 곧장 법정 안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배심원 후보자로 법정에 나올 것을 통보받고 실제 법정에 나온 시민들 중에서 실제 배심원으로 뽑힐 사람을 고르는 ‘배심원 선정절차’는 내가 도착하기 전인 오전 10시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는 배심원 후보자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정보도 거론될 수 있기 때문에 ‘국민참여재판에 관한 법률’은 배심원 선정절차는 공개하지 않는다고 정했다.

그래서 아쉬움이 적지 않았으나, 배심원 선정절차가 끝난 낮 12시 20분때까지 배심원 후보자중에서 먼저 귀가해도 좋다는 결정이 나온 사람들이 귀가하거나 최종적으로 배심원선정된 12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있었다.

먼저 70대의 할아버지가 10시 40분경에 나오셨다. 나이가 많아서 면제해 줄 것을 요청해고 판사가 이 요청을 받아주어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12시쯤에 30대의 남자가 나왔다. 귀가하게 된 이유를 물어보는 언론사 기자옆에서 그 남자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허리질환이 있어 장시간 배심원 임무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유로 나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20분쯤이 지난 뒤, 재판장을 비롯한 배석판사, 검사가 법정밖으로 나왔다. 배심원 선정절차가 모두 끝났음을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12명의 배심원(예비배심원 3명 포함)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들이 줄줄이 법정밖으로 나왔다.이들은 이제 각자의 집이나 일터로 돌아갈 수 있게 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을 일단 막아선 것은 참석소감, 최종 배심원으로 선정되지 못해 중간에 돌아가는 심정, 앞으로도 나오라고 하면 어찌할 것인가 등을 묻는 수 십 명의 기자들이었다.

혹시 안 좋은 말이 나오면 어떡하나 긴장해

‘국민참여재판’의 도입을 주창해왔던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혹시 이들 시민들의 입에서, ‘에이~ 괜히 왔어’, ‘시간만 아까웠어’, ‘다음에는 오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지’ 하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순간이었다. 시민들의 참여가 없이는 이 제도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취재진의 질문을 받은 10여 명의 시민 중에 어느 누구도 내가 걱정했던 말들은 나오지 않았다. 며느리가 직장에 나가면 애기를 맡아 보고 있다는 60대로 보이는 할머니는, 오늘은 며느리가 휴가를 얻어 지금 집에서 애기 보고 있다면서 출석하는게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솔직하게 말씀했다. 그래도 다시 오라고하면 또 오고싶다고 했다.
보험설계사 일을 하고 있다는 40대로 보이는 여성은 자신은 조금은 자유로운 직업이라 부담은 없었고, 다만 배심원으로 뽑히지 못해 못내 서운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 배심원으로 선정된 사람들이 잘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기자들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하던 시민들 앞에서 나의 걱정은 술술 풀렸다.

오전의 배심원 선정절차가 끝난 이날 재판은 오후 2시에 이어질 예정이었다.
점심을 먹고 1시 30분쯤 법정 출입문 앞으로 갔을 때에는 재판을 방청하러온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자칫하다가는 120여석 정도라는 법정안에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까 은근히 걱정이 들었다. 나 말고도 관심가지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1시 50분이 되니 법정 출입문이 열렸다. 나는 운좋게 앞에서 2번째 줄에 앉았다. 좌석을 차지하지 못해 서서 보아야 할 사람이 있을 정도였으니, 대략 140여명이 방청한 것으로 보였다.
이제 곧 12명의 배심원이 배심원석에 앉을 것이고, 피고인도 법정에 나올 것이고, 검사와 변호인이 배심원을 설득하기 위한 ‘전쟁아닌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역사적 순간이었다. 배심원들보다 먼저 판사석에 앉은 윤종구 판사(재판장)가 방청하러 온 사람들과 취재진에게 오늘이 역사적인 첫 재판이니 배심원들에게 너무 부담주지 않도록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실제 재판이 시작되기 전 잠깐 사진 촬영을 허용할텐데, 배심원들의 얼굴이 노출되지 않도록 해 줄 것을 취재진들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드디어 배심원석에 앉은 12명의 시민들

배심원석에서 일어나, 법률에 따라 공적하게 직무를 수행할 것을 다짐하는 취지의 선서를 하고 있는 12명의 배심원과 예비배심원들
드디어 오후 2시 판사석 뒤에 있던 문을 통해 12명의 배심원들이 법정 안으로 들어왔다. 모의재판이 아닌 실제 재판에서 배심원 역할을 해야 할 12명의 시민들이었다. 남자 6명, 여자 6명이었다.
재판 시작 전에 있었던 재판장의 설명에 따르면, 20대 1명, 30대 8명, 40대 3명이다. 학력분포로 보면, 고졸 1명, 전문대졸 3명, 대졸 8명이고, 주부가 4명, 회사원이 3명, 일용직 1명, 건축업 1명, 자영업 2명, 공사직원 1명의 직업분포를 가진 시민들이었다.
동네 아저씨같은 얼굴의 사람, 평범한 점퍼차림의 사람, 나름대로 깔끔한 넥타이를 매고 나온 사람, 양복을 입고 나온 사람 등 정말 평범하고 다양한 사람들이었다.
6명씩 두 줄로 배치된 배심원석에 앉은 그들의 얼굴은 웃는 모습은 아니었다. 시종일관 긴장되어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피곤해서 힘든다는 표정이거나 좀이 쑤셔 몸을 비트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점심먹은 뒤 오후의 나른함과, 4시간 넘게 진행되는 힘든 재판과정에서 지루해하는 모습이 보이거나 하품소리가 들린 곳은 방청석뿐이었지, 2시부터 시작해서, 검사와 변호인의 공방이 모두 끝나고 법정밖의 평의실로 돌아갈 때까지 그들 12명은 정말 진지한 모습이었다.

중간중간 물을 마시기도 하고, 자세를 책상 앞으로 바짝 당겨 앉으면서 재판장이 나눠준 메모지에 무언가를 적는 모습도 간혹 보였다. 증인으로 출석한 피해자 할머니와 목격자 아저씨, 피고인의 여동생을 상대로 검사와 변호인이 증인신문을 하는 동안에는 그들의 눈은 증인석에만 맞추어졌다.

오후 2시에 재판이 시작되기 전까지 배심원들은 그들이 오늘 다룰 사건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그들은 어떤 편견이나 사전 정보없이 이 법정에서 나오는 검사와 변호인의 주장과 증거로 제출되는 자료와 증인들의 증언만을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은 숨죽이지 않고 재판과정에서 나오는 모든 말, 자료하나하나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나도 그들처럼 최대한 검사와 변호인측의 주장과 재판과정을 통해 배심원처럼 판단해보려고 애썼다.

모의재판이었으면 그저 흥미진지했을 사건이지만

이날 사건은 다음과 같다.

27살의 남자 피고인은 아버지의 사업이 망한 뒤 가정형편이 극히 어렵게 되었다. 오토바이 배달업(퀵서비스)을 하다 일으킨 교통사고의 합의금 마련을 위해 사채업자의 돈을 빌렸지만 제때 갚지 못했다. 사채업자는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를 혼자 키우고 있는 여동생까지 위협하고, 피고인은 실업상태였다.
궁지에 몰린 피고인은 전셋집을 구하는 척하면서 강도를 하기로 마음먹고, 전세광고를 내놓은 70대 할머니를 범행대상으로 정했다. 피고인은 칼과 목장갑, 청테이프를 호주머니에 넣고, 얼굴에는 하얀 마스크를 한 상태로 피해자 할머니 집에 오후 4시경에 갔다. 마침 피해자 할머니는 혼자 집에 있는 상태였다.
피고인은 집안 이곳 저곳을 한 시간동안 돌아다니며 할머니와 전셋집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다 5시경 세놓은 방으로 피해자 할머니와 함께 돌아온 피고인은 칼을 꺼내들며 할머니를 위협하고 넘어뜨린 후, 저항하는 할머니의 얼굴을 심하게 때려 얼굴에 큰 상처를 내고 많은 피를 흘렸다. 검찰이 보여준 증거자료를 보면 방바닥에는 피가 흥건했고, 사건직후 병원에서 찍은 할머니 얼굴은 처참한 모습이었다.
짧았지만 거칠게 할머니의 얼굴부분을 폭행한 피고인은 갑자기 폭행을 멈추었다. 정신을 잃지 않은 할머니가 눈앞이 보이지 않는다며 얼굴을 닦아 줄 것을 피고인에게 부탁하자 피고인은 할머니의 얼굴에 묻은 피를 방에 있던 낡은 수건으로 닦아 준다. 그리고 피해자 할머니의 요청대로 피해자를 병원으로 데려다주기위해 피해자를 부축하며 문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집 앞에서 우연히 이 장면을 50대의 옆집 아저씨가 목격하였다. 무슨 일이냐고 묻은 옆집 남자에게 할머니는 계단에서 넘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히려 피고인이 자기가 강도짓을 하다가 그랬고, 지금 병원으로 데려가는 중이라고 했다. 이 피고인과 옆집 남자는 함께 할머니를 부축해서 피해자 집에서 150미터 떨어진 병원까지 피해자 할머니를 모셔갔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피고인은 함께 온 옆집 남자에게 자기가 강도짓을 했으니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목격자는 피해자 할머니를 입원시킨 지 50여분이 지난 뒤 경찰에 신고하였고, 경찰은 병원에서 피고인을 붙잡았다
그리고 올 초, 검사는 이 피고인을 강도상해죄로 기소하여 재판에 이르게 된 것이다.

피고인도 자신의 강도상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다만 검사와 피고인(변호인)사이에 다르게 주장하는 것은 우선 범행과정에 대한 설명이었다.
검사는 애초 계획대로 저지른 치밀한 범행이라했다. 반면 피고인과 변호인은 범행계획을 가지고 피해자 집에 간 것은 맞지만, 1시간 가량 이야기를 하다가 마음이 약해져 범행을 포기했는데, 마침 걸려온 사채업자의 협박전화를 받고 마음이 흔들려 저질런 범행이라 주장했다.
범죄 이후에 한 행동에 대해서도 검사는 자수라고 보기 어렵다고 한 반면, 피고인측은 제3자를 통해 경찰에 신고한 것이기는 하지만 명백히 자수에 해당하는 만큼 형량을 정할 때 참고해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재판은 범죄 자체를 부인하는 사건은 아니었다. 검찰이 주장하는 범죄과정이 정확한가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배심원들이 판결하기에 부담이 그나마 줄어든 사건이라고 볼 수도 있다.


재판장이 피고인을 출석시키고, 검사와 변호인의 출석을 확인하는 것으로 재판은 시작되었다. 배심원 선서가 이어졌고, 재판장이 배심원들에게 사전에 알고 있어야 할 점들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무죄추정원칙도 설명해주었고, 범죄의 유무에 대한 입증은 검사측의 책임이지 피고인과 변호인의 책임이 아니라는 점 등도 설명해주었다.
곧이어 검사와 변호인측이 배심원들을 상대로 이번 재판에서 제시할 자신들의 주장의 핵심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를 말하는 시간이었다. 배심원들에게 사건의 쟁점과 재판진행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그 다음으로는 증인을 포함한 증거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검사와 변호인이 요청한 피해자 할머니, 목격자, 피고인의 여동생을 순서대로 증인석에 불러내었다. 이들을 상대로 검사와 변호인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이끌어내려고 무척 애를 썼다. 그리고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으려고 배심원들의 몸은 한껏 긴장되어 보였다.
간혹 몸이 여전히 불편하고 큰 상처를 입은 피해자 할머니가 너무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면, 재판장이 큰 목소리로 증인이 한 말을 그대로 배심원들에게 다시 말해주었다. 덕분에 방청석에 있던 나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피고인으로부터 압수한 칼이나 병원의 진단서, 피해자와 범행이 일어난 방의 범행당시와 직후의 사진같은 증거자료에 대한 검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특히 범행직후 수많은 핏자국이 분명한 범행현장 사진과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구타당하고 피부가 찢어진게 분명히 보이는 피해자 할머니의 얼굴사진이 나왔다. 법정은 잠깐이지만 술렁거렸다. 피고인의 딱한 처지와 범행이후 병원에 데려간 정황 등으로 피해자의 딱한 사정이 강조되어 온 재판의 분위기가 멈추어지는 느낌이었다. 배심원들의 심정에 어떤 변화가 있지 않을까 온갖 생각이 밀려들었다.

증인신문에 있어, 피고인에 대한 신문(이 또한 법적으로는 증인신문이다)이 진행되었다. 법정에 들어선 순간부터 변호인 옆에 앉아 시종일관 고개숙이고 배심원들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있던 피고인이 조용히 일어나 증인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배심원들이 피해자 할머니의 모습에 이어, 피고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5시. 검사의 최후 변론이 시작되었다. 피고인의 딱한 사정이 있지만, 배심원은 선처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범행당시의 그 참혹한 상황을 기억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강도상해죄의 법정형은 징역 7년 이상이지만, 피해자가 선처하기를 바라는 만큼 징역 5년에 처해줄 것을 요청(구형)하는 것으로 검사는 최후변론과 구형을 끝냈다.
5시 17분 변호인이 이제 최후변론에 났섰다. 다시 한 번 검사와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을 강조하였다. 범행 직전 피고인은 범행을 포기했지만, 사채업자의 위협전화를 받고 마음이 급격히 흔들렸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범행후의 정황을 꼭 잊지 말아달라고 했다.
검사도 변호인도 모두 이번에는 배심원 좌석에서 1미터 또는 2미터 정도 앞에 서서 배심원들을 보면서 열심히 이야기했다. 어떤 대목에서는 목소리가 높아졌다가, 어떤 대목에서는 정말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약간의 손짓과 몸짓도 더해졌다. 필요하면 피고인의 모습을 가리키기도 했다.
판사석에 앉아 있는 판사들을 보고, 그들만이 아는 전문법률용어가 아니라 일상적인 말로 배심원들만을 바라보며 말했다. 배심원들도 그들의 몸짓 하나하나를 주시하면서 그들의 말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있었다.

마침내 2분 정도 피고인이 최후진술을 했고, 재판장이 배심원들에게 도움되는 추가설명을 간단히 하고 5시35분에 변론종결이 선언되었다.
그리고 5시 40분부터 재판장은 배심원들이 앞으로 할 일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배심원 대표자를 뽑아야 하고 판사는 없이 배심원들끼리 합리적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평의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제 배심원들이 결론을 내릴 차례

끝으로 재판장은 배심원석에 앉았던 12명중에 배심원 평의에 참여할 9명의 진짜 배심원과 3명의 예비배심원이 누구인지 알려주었다. 예비배심원 3명은 재판과정에서는 다른 9명과 똑같이 참여하지만 평의는 9명이 한다. 만약 그 9명중에 중도에 배심원 역할을 그만 두어야 할 경우가 발생하면 그들을 대신해서 배심원 역할을 할 사람이 예비배심원이다.

검사나 변호인은 물론이거니와 배심원석에 하루종일 앉아있었던 그 12명 모두 이 순간까지 누가 예비배심원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었다. 마침내 재판장이 3번, 5번, 9번 배심원은 예비배심원이라고 판사가 발표했다. 하루종일 긴장감을 놓치 않았던 이들의 얼굴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아쉽다는 것일까? 아니면 긴장감으로 팽팽했던 얼굴근육이 약간 풀어진 것일까? 그러나 그들도 모든 배심원 평의가 끝나고 최종 판결이 선고되어 재판장이 재판을 종결짓기까지는 계속 대기해야만 했다.

5시 45분 배심원들은 법정안으로 들어올 때 사용했던 판사석 뒤쪽 문으로 모두 퇴장했다. 이제 9명의 배심원은 배심원 평의실에서 그들만 참석하는 평의 시간을 가질 테다. 배심원들이 어떻게 토론할까? 나도 안 해봤지만 그들도 생전 처음일텐데...  투시경이 있다면 평의실에 들어간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텐데. 평의 모습을 보고 싶은 심정은 나만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평의가 언제 끌날 지 알 수 없는 방청객들은 잠깐만 휴식을 취한 후, 대부분 법정 안에서 판사가 다시 들어오기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7시 25분, 재판장을 비롯한 3명의 판사가 모두 판사석에 들어왔다. 배심원들의 평의가 방금 전 모두 끝났다고 하면서, 검사와 변호인뿐만 아니라 피고인을 법정에 들어오게 하라고 했다. 잠깐 후 이번에는 배심원들이 법정 안으로 들어왔다. 예비배심원 3명은 빠지고, 평의에 참여한 9명의 배심원만 배심원석에 앉았다. 예비배심원도 앉아도 되지만, 그들 스스로 자리를 피한 모양이었다.

9명의 배심원단을 대표해서 1명의 배심원 대표자가 평의결과를 적은 평결서를 봉투에 담아 재판장에게 전달했다. 모두들 긴장한 순간이었다. 판사가 배심원 평결서를 읽었다. 강도상해죄에 대해서는 만장일치 의견이지만, 검찰의 주장과 달리 피고인은 범행을 중도에 포기했다가 다시 사채업자의 전화를 받은 후 마음이 돌변하여 범행했다는 것으로 공소(범죄)사실을 변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검찰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주지 않은 것이다.
판사는 형량에 대한 배심원들의 의견도 전했다. 실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진 배심원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배심원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해서, 피고인이 사회로 복귀해 돈을 벌어 어려운 처지의 여동생도 돕고 피해자 할머니가 입은 피해도 갚아야 한다고 한 것이다. 징역기간과 집행유예 기간을 얼마로 할지 의견이 좀 갈렸는데, 다수 의견은 2년 6개월 징역에 집행유예 4년이 적당하고 사회봉사명령도 내리는 것이 적당하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배심원들의 평의결과대로 재판장 최종 선고할 지 다르게 선고할지 결정하고 발표할 순간이다. 국민참여재판 제도가 시행되는 초기인만큼 배심원의 평결은 권고적 효력이 있을 뿐이지 미국처럼 판사가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다.
재판장은 배심원단의 평결내용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점이 전혀 없으므로 존중한다고 하였다. 재판장을 포함한 판사 3명은 배심원 평결내용대로 검사가 주장한 공소(범죄)사실중 틀린 부분을 바로잡고, 피고인에게 징역2년6월, 집행유예4년, 사회봉사명령 80시간을 선고하였다. 그리고 재판종결을 선언하였다.

이제 배심원도 피고인도, 검사도 변호인도, 방청객도 모두 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음같아서는 역사적인 첫 재판을 순조롭게 이끈 판사들과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애썼던 검사와 변호인에게 박수를 치고 싶었다.
‘국민참여재판’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재판절차대로 했다면 이 정도 수준의 사건은 길어야 1시간 내에 끝났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보다 다섯 여섯 배 이상 법정에서 배심원들을 설득하려고 수고하고 이를 위해 많은 준비를 했을 그들에게는 수고했다는 말도 부족하지 않을까
물론 가장 고생했던 사람들은 배심원들이다. 대한민국 어느 국민들도 해보지 않은 심적 부담이 큰 일을 당당히 감당하고, 진지하고 성실하게 해낸 그들 12명의 이름은 비록 공개되지는 않겠지만 역사가 기록해주어야 할 이름들이다. 오전 일찍 법원에 나왔지만 배심원으로 선정되지 못하고 도중에 귀가했던 사람들도 이 역사적인 재판이 진행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사람들인만큼 기억해주어야 한다.

법원 바깥은 벌써 어두운 밤이었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 다시 동대구역으로 가서 8시 51분 출발 KTX를 이용해 집에 도착한 시각은 밤 11시. 잠자리에 들기까지 역사적 재판을 보았다는 흥분이 남긴 여운이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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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이해가 너무 잘 되긴 하는데요. 글이 너무 길어요. 사건 내용을 좀 더 간략하게 줄여서 다르게 편집했으면 길다는 느낌이 덜할 수도 있을 거 같고요. 참관기라고는 하지만, 요즘 이렇게 길게 올리면 읽다 말거나 본래 글을 통해 전하려는 취지 전달이 덜하기도 합니다. 한 번에 많은 것을 전달하려고 하니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주제를 2개 정도로 나누어 썼어도 좋았다는 생각. ^^ '간략, 신속, 정확' 만 좀 신경써주면 참여연대 글은 정말 도움 되는 글이라는 생각, 예전부터 했습니다. 힘 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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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 댓글을 남겨주신 '시민'필명을 쓰신 분께.
    못쓴 글임에도 잘 읽어주셨다고 하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좀더 간략히 또는 보기 편하게 했으면 어떨까 하는 조언도 감사드립니다. 지적하신대로 하고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근데 앞으로 방청기가 계속 그렇게 될 것 같애서 걱정입니다... 보시지 않은 분들께 당시 상황도, 그리고 소감도 전달해야 하고,,또 생소한 제도에 대한 설명도 들어가려다보니, 힘들었습니다... 널리 이해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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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지지자의 편지④] "획일적인 사법연수원 교육, 이제 수명을 다했습니다" (1)   2006.11.22
민노당 최순영 의원에게 ‘로스쿨 지지자의 편지’3 보내   2006.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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