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8-02-14   1584

[국민참여재판 방청기2]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그들은 배심원이었다”

지난 2월 12일(화) 대구지방법원에서는 강도상해죄로 기소된 이 모씨에 대한 재판이 있었습니다. 이 재판은 대한민국 역사상 올해부터 실시되는 일반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에 의한 재판, 즉 ‘국민참여재판’ 제도에 따라 시행되는 첫 번째 재판이었습니다.
이 글은 재판을 직접 방청한 박광배 충북대 법심리학 교수의 방청기입니다.



박광배(충북대 교수, 법심리학)


대한민국 최초의 국민참여재판은 새로 도입되는 새로운 재판제도에 대한 그간의 많은 우려를 불식하는 명백한 표식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경험해본 바가 없는 형태의 재판에 임하여 재판부는 배심재판을 오랜 세월동안 많이 해온 미국의 판사들 못지 않은, 어쩌면 그보다 더 나은 능숙함과 순발력을 가지고 단 한차례의 혼란이나 어색함도 없이 세련된 공판진행을 하였다.
특히 재판장이 수시로 배심원들의 피로감이나 이해력을 배려하여 휴식이 필요한지, 질문이 있는지, 좀 더 쉬운 설명이 필요한지를 점검하는 섬세함을 가지고 절차를 진행하는 모습은 배심재판제도가 활성화된 미국의 법정에서도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검사와 변호인도 배심원들의 이해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시각적인 자료 뿐만 아니라 가능한 평이한 용어와 어법을 구사하고, 법률용어가 불가피하게 사용될 때는 반드시 다시 쉽게 풀어 설명하였으며, 말을 할 때는 항상 정중한 태도로 배심원을 향하여 서서 재판부보다는 배심원을 우선적으로 배려하였다. 


전체적으로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배심재판에서 재판부와 검사, 그리고 변호인이 보여준 것은 ‘품위있고 고결한 재판’의 모습이었는데, 그러한 탈권위적인 품위와 고결함은 배심원이 법정에 가지고 들어온 것이었다.


재판이 끝난 후 재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시간 40여분에 걸친 배심원 평결 과정에는 재판부가 전혀 개입하지 않았고 배심원단에서 제시한 형량을 재판부가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배심원단의 결정이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지 않았고 양형의 허용 폭 내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배심원의 판단이 증거에서 일탈했거나, 편파적이거나, 불공정하다는 증거가 없다는 뜻이다.

혹자는 한국의 배심원들이 온정주의에 휩쓸려 공정한 판단을 못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최초의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피고인에게 유리한 판단을 한 것은 그들이 온정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연로한 강도상해 피해자가 증인으로 출석한 공판 중에 증거조사를 통해 변호인이 주장하는 바가 ‘사실’이라는 것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국민들이 피해자에게는 온정적이지 않고, 피고인에게만 온정적일 것이라는 생각은 아무 근거도 없는 아주 이상한 편견이다. 대한민국의 배심원들은 온정적이므로 공평하고 객관적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동료국민을 폄하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성숙하다.


2008년 2월 12일은 한국 현대사에 하나의 혁명이 기록되는 날이었다. 한국의 언론들은 물론이고 일본의 NHK와 미국의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외국언론들, 그리고 일본의 법무성 검사까지 나와서 지켜보는 가운데, 12명 (예비 3명 포함) 의 여자와 남자들은 조용하고, 이성적이며, 냉철하고, 침착한 사법혁명을 깊은 이해와 지극한 겸손함, 그리고 무거운 사명감을 가지고 완수하였다.
그리고 그 영웅들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밤거리 속으로 다시 사라져 갔다. 


단 하루 동안 자신에게 부과된 국가적 책무를 시종일관 과오를 범하지 않으려는 엄숙한 표정과 몸짓으로 혼신을 다하여 진지하게 수행하고, 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낸 후 본래의 가식없는 모습 그대로 초연히 사라지는 사람을 필자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그들은 배심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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