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8-02-14   2234

[국민참여재판 방청기3] “평결문 봉투 개봉, 떨리고 긴장되었다”




김정현(이화여대 법과대학 1학년)



12일 대구에서 대한민국 사법 사상 첫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나는 이 사실을 안 즉시 바로 방청을 결심하였다. 이 역사적인 재판을 방청한다는 것이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경험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처음으로 방청해보는 재판이기도 해서 법을 공부함에 있어서 여러 부족한 점도 채울 수 있겠다는 기대도 있었다.

법학과로 진학을 했지만 아직 1학년이라 진로가 막연하게만 다가오기도 했고, 법 공부는 교과서 틀에 국한돼서 다소 추상적이었던 것이다. 직접 재판을 방청한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국민참여재판이라고 하니, 그 기대감으로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배심원 선정은 오전 10시부터 비공개로 진행되었고 오후 2시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된 가운데 재판이 시작되었다. 재판부의 오른편에 배심원단이 앉아있었는데, 처음이라서 그런지 재판부도, 검찰, 변호인, 배심원단 모두 많이 긴장한 듯한 분위기였다.

이날 재판의 대상이 된 사건은 피고인 이아무개씨(27)가 지난해 12월 26일 대구시 남구 대명동 정아무개(70)씨 집에 들어가 돈을 빼앗으려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사건이었다. 이씨는 돈을 빼앗기 위해 정씨를 주먹으로 때렸으나 정씨가 피를 많이 흘리자 그를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비법률가들이 이해하기 쉽게 천천히 진행된 공판

공판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변호인과 검찰 측은 배심원들이 비법률가인 점을 충분히 고려하여 이해하기 쉽게, 천천히 변론하려고 많이 노력하는 것 같았다. 재판장도 배심원들이 잘 따라올 수 있도록 진행 절차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검찰, 변호인 측의 변론을 그 때 그 때 간략하게 정리를 해서 알려주기도 했다.

또한 증인 조사 단계에서 검사와 변호인이 질문하지는 않았지만 더 보충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되는 사항에 대해서는 증인들에게 추가적인 질문을 하기도 했다. 덕분에 방청하는 사람들도 보다 쉽게 재판의 진행을 이해할 수 있었고, 따라서 비록 배심원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라도 사법 과정에 참여해볼 수 있어서 내심 정말 뿌듯했다.


법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으로서, 앞으로의 법률가들이 지녀야 할 자질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검사와 변호사가 전문적인 법 지식만을 가지고 재판부를 설득하기만하면 되었던 것에 비해서, 이제 국민참여재판이 시행되어 정착하게 되면 재판부뿐만이 아니라 법률전문가가 아닌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재판부도 일반 국민들이 재판의 진행을 잘 따라올 수 있도록 친절하게 재판을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법률가들에게는 법적 전문 지식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법 감정에 호소할 수 있는 설득력과 탄탄한 논리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마음이 부담감으로 다소 무거워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더 열심히 해보겠다는 의지가 불끈 생기기도 했다.


이렇게 공판을 지켜보면서 정말 뜻깊은 경험을 하는 것이라고 속으로 기뻐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힘들기도 했다. 변론의 논리적 흐름과 사실관계 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검찰 측, 피고인 측의 변론과 증인 심문 등의 모든 절차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긴장도 많이 되었고 육체적으로도 상당히 피로했다.

증인 심문까지 하고나니 벌써 재판이 시작된 지 3시간 가량이나 지나 있었다. 재판을 방청하는 사람에게도 이렇게 많은 집중력과 열의를 요하는데, 하물며 배심원들은 평결을 내려야 하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있어 더더욱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심원이라는 직책이 분명 부담감이 있고 또 그만큼의 중요성이 있는 만큼, 국민참여재판제도가 앞으로 잘 정착해서 사법의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배심원들, 즉 국민들의 적극적이고 열의 있는 참여가 정말 중요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국민참여재판제도는 국민을 위하여 만들어졌지만, 단지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 국민들이 주권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참여할 때 비로소 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4시간 정도의 긴장감이 팽팽했던 공판은 피고인의 최후 변론으로 끝이 났고, 배심원들은 피고인의 유․무죄의 판단과 함께, 유죄로 판단할 경우 형량까지도 평의를 하여 평결을 내야 했다. 피고인 측이 강도상해를 저질렀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하였기 때문에, 배심원들이 중점적으로 논의할 것은 검찰 측의 범행 절차에 대한 입장과 피고인 측의 입장 중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판사님이 평의가 진행되는 동안에 잠시 법정에 나오셔서 말씀하셨다.

검찰 측은 범인이 처음부터 강도의 의사를 가지고 있었고, 피해자를 폭행할 당시에도 그랬다고 한 반면, 피고인 측은 처음에는 강도의 의사를 가지고 피해자의 집에 들어갔지만, 나중에 강도를 포기하였고, 폭행은 그 당시의 정황상 우발적으로 행해진 것이라고 하였다.

작은 차이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결과에 있어서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이는 철저히 증거에 기해서 판단되어야 했다. 또한 이 사안에서 ‘자수’가 인정되는가도 관건이 되는 문제였다. ‘자수’의 법적인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여 이 사안에 적용할 것인가가 평의과정에서 논의되었다. 정말 단어 하나, 개념 하나도 법적으로 명확하게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닫고 놀라기도 했다.


1시간 30분 성심껏 토의한 뒤 평결을 내놓은 배심원단

과연 배심원단이 어느 입장을 선택할 것인지 평결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함께 간 타 법대 친구와 예측해보기도 하고, 방청 소감도 나누고 하다 보니 어느새 1시간 반이 훌쩍 지나있었고. 드디어 평결 발표 및 선고가 진행되었다. 꽤 오랜 재판 과정에서 분명 많이 지쳤을 텐데도 1시간 반 동안이나 성심껏 토의를 하고 평결을 내 놓은 배심원단이 정말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사님이 평결문이 들어있는 봉투를 개봉하시는데, 기대되고 떨리는 마음에 온몸이 긴장감으로 경직됐다. 배심원단의 결정은 피고인 측의 입장을 따라 피고인에게 집행유예를 내리기로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재판부도 배심원단의 평결이 헌법과 법률에 어긋나지 않으므로 최대한 존중하겠다며 이에 따랐다.

다시 한번 배심원단의 진지하고 열의 있는 참여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한편, 제시된 증거와 사안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으면, 자칫하면 재판 결과만 놓고 배심원단이 단순히 감정에 휩쓸려서 선처를 내린 것이라고 판단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평결은 반드시 양측이 제시한 증거들의 합리성을 철저히 따져서 내려야하는 것이고, 배심원단이 성심성의껏 재판의 전 과정에 참여하였다고 재판부도 판단하였기 때문에, 이번 배심원단의 평결은 충분히 ‘법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생생한 법정 경험, 법대생에겐 살아있는 공부

5시간 반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서 첫 국민참여재판은 막을 내렸다. 하루종일 나의 모든 관심이 집중되었던 이 재판의 방청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뿌듯함과 기쁨으로 오전에 집을 나설 때만큼이나 흥분되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이전에 재판을 방청해본 경험이 없어서 국민참여재판과 이전의 형사재판의 명확한 차이점을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생하게 살아있는 공부를 했다는 것, 국내 사법 사상 첫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했다는 것 등 이 경험 자체는 개인적으로 정말 유익하고 뜻깊은 것이었다.

국민참여재판의 이번 첫 출발은 우리나라 사법 사상에서도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쌓는 첫 시도이자, 앞으로 보완해야할 과제들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5년동안 국민참여재판제도를 시행해본 뒤 미비한 점을 보완하여 제도를 수정할 것이라고 한다.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사법부의 노력이 함께 모여 국민참여재판제도가 보다 나은 제도로 잘 정착해나갈 수 있도록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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