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8-06-03   2355

[08/05/27 국민참여재판 방청기 2] “내가 잠바 탈취 사건의 배심원이었다면?”

이 글은 5월 27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서울지역 첫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한 뒤의 방청기입니다. 참여연대는 ‘참여연대와 국민참여재판 함께 방청하기’ 행사에 참여한 시민 10명과 함께 이 재판을 방청했으며, 함께 방청한 이들의 방청기를 연재합니다.
방청기를 보내주신 문성일 님은, 영화관련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문성일


검사, 이 사건을 ‘잠바탈취사건’이라 부르다


5월 27일 화요일. 서부지법이 위치한 공덕동에 도착해서 부리나케 점심을 먹고 법원으로 향했다. 1층 로비에서 참여연대 박근용 팀장님과 ‘참여연대와 함께 방청하기’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2층 형사법정으로 이동했는데 서울에서 처음 열리는 국민참여재판이라 그런지 언론에서도 많은 기자들이 나와있었다.


서울서부지법 303호의 재판안내판한 10년 전인가 지인의 형사재판을 한번 참관했던 덕에 흔히 재판이라는게 우리가 영화에서보는 것처럼 검사와 변호사간의 치열한 공방으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던터라 그런 극적 재미(?)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처음 도입되는 배심원 재판에 깊은 관심이 가는 것은 사실이었다. ‘공방’보다 더 중요한 게 ‘판결’아니던가?


이번 재판은 강도상해사건에 대한 것으로써 외면적으로 보면 대수롭지 않은 재판으로 여겨졌지만 막상 법정 방청석에 앉아 사건의 개요, 피해자의 진술, 가해자의 인적사항과 가정환경 그리고 진실의 여부 등을 접하게 되니 나도 모르게 긴장감있게 재판을 지켜보게 되었다.


재판의 대상은 검찰측이 ‘잠바탈취사건’이라고 명명한, 마치 코믹영화 제목같이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었는데 변호사는 심각한 폭력이나 위협이 개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을 절도라고 주장했고 검찰은 잠바를 탈취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무릎에 멍이 들고 의치가 일부 부러졌다는 것을 내세워 강도라고 규정지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좀 더 복잡한 건, 피의자가 집행유예기간 중에 또다시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 피의자가 아직 만19세의 미성년자라는 점, 그리고 이 전에 이미 11건의 절도사건범죄를 실토하여 추가 기소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건 내 추측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떻게 보면 사소한 재판임에도 불구하고 검찰측이 기소를 해서 처벌을 하려는 건, 전반적인 피의자의 범행에 대한 ‘단죄’의 성격이 짙다고 본다.
그 근거로 검찰측은 배심원들에게 피의자가 2살 연상의 여자와 모텔에서 동거하고 있었던 점, 대학교에 합격했다고 허위로 진술했다는 점, 이전 범죄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지 보름이 안되서 다시 범행에 나선 점등을 들어 도덕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강변하였기 때문이다.



1시간 정도면 끝날거라 예상했던 배심원 평의


재판이 끝난 뒤 함께 방청한 사람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마치고 2시간이 지날 때까지 배심원들의 판결은 나오지 않았다. 처음 내 생각으로는 그렇게 큰 사건이 아니니까 한 시간 정도면 배심원들의 회의가 끝나겠거니 생각했는데 다소 의외였다. 함께 방청한 사람들과 이런저런 애기들을 하면서 기다리면서 나는 문득 내가 만일 저 5명의 배심원들 중 한명이었으면 지금 어떤 판결을 내리자고 주장하고 있었을까 라고 생각을 해보았다.


유죄를 내릴 것인가? 그럼 저 열아홉살 청년은 인생의 첫 시작을 교도소에서 출발한다는 점, 일반 젊은이들처럼 군대에도 가지 못하고 인생의 첫 단추를 잘못끼게 된다는 점, 그렇게 되면 사회를 더욱 더 원망하고 처음부터 자포자기해서 더 나쁜 길로 빠져버리지 않을까 라는 걱정이 앞섰다.


그럼 무죄를 내리면…? 물론 저 젊은이의 불우한 환경을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망, 어머니의 재가와 새아버지의 학대, 그리고 신체의 병 등) 듣고 나 조차도 동정의 마음이 깊게 쏠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불우한 환경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청년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11번의 절도범죄와 연상녀와 모텔에서의 동거,(이것이 다소 쾌락성 도피라고 느껴지는 건 나만의 망상일까?) 이전 절도범죄에서 집행유예를 받고도 뉘우치지 않고 곧바로 또다시 범죄를 저지른 점은 피의자를 계속 동정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했다.


재판 과정에서도 느낀거지만 검찰측 주장을 듣다보면 유죄를 선고해야 할 것 같고 변호사 얘기를 듣다보면 ‘그래 이번 한번만 더 용서해주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의 고민처럼 5명의 배심원들도 그렇게 오랫동안 한 청년의 운명을 앞에 두고 심사숙고하는 모습이, 기다리는 사람 입장에선 힘들었지만 솔직히 아주 보기 좋았다.
나는 절대로 재판장이 우리 일반 시민 배심원들보다 더 명석하고 정의로운 판결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 국민들은 또 얼마나 교육수준이 높은가?


재판이 끝나고 3시간이 지난 후 마침내 배심원들이 회의를 끝내고 법정으로 들어왔다.
배심원들은 검찰측이 주장하는 상해 부분에서는 무죄를 선고했고 기타 강도부분 등에서는
유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단기 11개월에서 장기 2년6개월의 형량을 내렸다. 그런데 재판부는 이를 참고로만 하고 자신들의 회의 결과라며  단기 2년 장기 2년6개월 징역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의 판결이 의외로 세게 나와서 나와 함께 방청한 사람 모두 놀랐다. 나는 내심 속으로 1년 6개월 정도가 나오지 않을까 예상했었으니까. 불만이었던건 재판장이 배심원들의 형량을 별로 참작하지 않고 자신들의 입맛대로 형량을 내렸다는 점이다. 항소라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배심원들의 형량을 고려하지 않을거면 이 국민참여배심원 재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항소재판에선 좀 더 유연한 판결이 나와서 이제 인생을 시작하는 젊은 청년이 그래도 이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희망을 갖고 살아나가기를 바래본다.


이번 재판을 방청하면서 아쉬운 점이 없진 않았지만 법과 정의라는 개념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제도라는 점, 또한 이전 보다 훨씬 성숙한 민주주의를 구현한다는 차원에서 아주 의미있는 정책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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