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8-07-17   2074

[08/07/07 국민참여재판 방청기] 판사,검사,변호사와의 첫 만남 – 좀 더 친해져봅시다.

이 글은 7월 7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한 이선민 씨의 방청기입니다. 이선민 씨는 참여연대에서 인턴쉽 과정을 밟고 있던 중 세 번째 ‘참여연대와 함께 국민참여재판 방청하기’ 행사에 참여하여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했습니다.

이선민(대학생, 연세대 행정학과)


나는 지금 참여연대 인턴쉽 과정 중이다. 참여연대 인턴쉽 과정 중에 월요일과 금요일에는 교육활동을 하고 화,수,목요일에는 업무지원 활동을 한다. ‘국민참여재판 함께 방청하기’ 행사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에서 주관하는 활동으로 원래는 참여연대에서 같이 갈 사람들을 모집하여 방청하게 되는데, 이번엔 새로운 인턴들이 들어오게 되어 인턴들과 함께 방청하게 되었다.


지난 7월 7일,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자연스럽게 버스를 타고 1호선을 타고 신도림에서 교대역으로 가는 방향으로 전철을 갈아탔다. 그리고 10시까지 도착할 수 있으리라 내심 안심해하며 지하철 무가지를 즐겼다. 하지만 이게 웬걸, 서울고등법원 303호에 도착하고 난 후에야 내가 잘못왔다는 걸 깨달았다. 함께 인턴생활을 하고 있는 민경 누나의 문자, ‘우리 애오개역으로 가는 거 맞죠?’ 라는게 머리 속을 스치며, 다시 프린트를 확인해보니 장소가 서울고등법원이 아니라 서울서부지방법원이었다. 부랴부랴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타고 출발해서 도착하게 10시 반이다.


7월 7일 서울서부지법 303호 법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을 함께 방청한 참여연대 인턴들

연주가 10시 정도에 먼저 들어간다고 문자가 왔는데 막상 가보니 다들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 연유를 물어보니 배심원이 아직 정해지지 않아서 오전에 법정에 들어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택시 탄 것을 조금 아까워하며 밖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12시를 얼마 남기지 않고 우리는 재판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사법기관은 나에게 첫 만남이다. 영화에서만 보던 법정은 생각보다 아담하고 깔끔했다. 우리네 말로 ‘법없이도 살사람’ 이라는 말이 있는데, 바꿔 표현하면 우리는 법을 친숙히 여기지 않는 모양이다. 실제로 교통사고가 나도 목소리가 큰사람이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나라니까.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서 준법의식이 마구마구 솟아남을 느꼈다. 일반인들에게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하게 하는 건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여연대뿐 아니라 다른 단체에서도 이런 프로그램이 마련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사건은 강간 치상 사건이었다. 사건의 경위를 여기에 자세히 써놓기엔 그 양이 매우 길고 짧게 써놓기엔 사람들의 어줍잡은 판단의 근거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쓰지 않겠다. 중요한 점은 원고의 주장과 피고의 주장이 엇갈렸으며 피고는 자신의 죄를 억울하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우리들(방청객) 모두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배심원 중 여자의 비율이 많고, 강간 치상 사건은 여성들의 피해자 진술에 의존하기 때문에 우리끼리 2년 정도 형이 나오지 않을까 추측해보았다.


검사와 변호사가 서로의 논리로 유죄, 무죄를 주장하는 가운데서 법조인의 모습에 후광이 보였다. 순간 나도 법조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변호사 제도가 본래의 취지와는 무색하게 악질 범죄자들의 무죄 판결을 받아내는데 일조하는 면이 있지만, 그래도 사람과 사람 간의 일을 판단함에 있어서 어느 일방의 논리만 듣고는 그 사건의 진실을 판단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에 변호사의 존재는 필요하다.
검사는 언급할 필요도 없이 사법제도에 있어서 꼭 필요한 존재다. 피고인의 유죄를 주장하는 검사와, 무죄를 주장하는 변호사의 두 주장은 엇갈렸지만 나름의 논리적 근거를 들면서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가는 모습이 멋졌다. 물론 둘 중 하나의 이야기는 거짓이고, 진실은 저 너머에 있겠지만.


판사는 검사와 변호사의 이야기를 듣고, 피고인이 무죄인지, 유죄인지, 유죄라면 형은 얼마나 줄 것인지 결정하는 최종 주체다. 물론 항소를 통해 2심, 3심까지 갈 수 있지만 그 곳에서도 판사의 판단이 피고인의 죄를 결정한다.
위와 같이 두 주장이 극명하게 대립되는 경우라도, 판사의 판단은 절대적이다. 재판을 통해 그 사람의 유무죄를 선고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어정쩡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판사가 재판의 판결을 내림에 있어 여러 가지 판단기준이 적용된다. 일반법을 적용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판례, 일반법 원칙, 사회적 통념 등 여러 가지 판단기준이 판사의 재판을 구속한다.
하지만 판결은 기계적일 수 없고 법을 해석하는데 있어 판사의 재량이 들어가기 때문에 동일한 사건이라도 판결은 판사에 따라 다양하게 날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최소화 하기 위해 나오고 있는 논의가 여럿 있지만, 역시 하이라이트는 국민참여재판이다.


검사와 변호사, 피고인의 최후변론까지 마무리 되고 나서, 배심원들은 평결에 들어가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평결이란 배심원들끼리 피고인의 유무죄를 정하고 유죄일 경우 형량까지 정하는 결정으로써 법정에서 따로 나와 평결실에 들어가서 배심원들끼리 토론을 통해 결정한다.
배심원들은 평결 전까지 사건에 대해 토의하는건 금지되어 있고 모든 재판이 끝난 후 사건에 대해 토의가 가능하다. 전원합의가 기본원칙이며 전원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판사를 불러 판사의 의견을 구한다. 미국의 경우 배심원의 평결이 판사의 판결에 기속력을 갖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배심원의 평결이 기속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판사는 배심원들의 평결을 최대한 참고하되 재량을 가진다.


배심원들이 평결에 들어간 후 우리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 밖으로 나왔다. 흥미 있는 재판이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재판을 관람한 터라 모두 배가 출출한 상태였다. 밥을 먹으면서 우리끼리 토론도 해보았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대부분 가벼운 형이 지워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법원에 다시 돌아갔다.
다시 돌아가보니 우리의 예상보다 빨리 평결이 끝나서 배심원들이 다시 법정에 돌아온 상태였다. 우리는 자리에 허겁지겁 앉아서 어떤 판결이 나올지 기다리고 있었다.


판사의 첫 말문은 배심원들이 전원합의로 무죄평결을 냈다는 것부터 시작했다. 우린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충격을 먹었다. 그 충격이 가시기 전에 판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는데 검사의 논리를 인용하면서 판사는 ‘강간의 고의를 인정하고 상해를 인정하여 징역 3년에 처한다’라고 선고했다.
배심원들의 평결을 번복한 것이다. 장내는 또 한번 술렁였다. 배심원들은 약간 실망하는 눈치였고 피고인은 너무 억울해하며 법원을 나갔다. 우리들도 배심원들의 결정, 판사의 결정에 놀라며 법원을 빠져나왔다.
사회적 통념과 판사의 인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었을까. 왜 배심원들이 그런 평결을 내렸는지, 또 왜 판사가 그런 판결을 내렸는지 너무 궁금했다. 역시 진실은 저 너머에.


어쨌든 이번 방청을 통해 느낀 것이 있는데 첫째는 사법기구가 친숙하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물론 피고인의 신분으로 법원에 선다는 것은 끔찍할 것 같다. 준법의식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법원 투어를 ‘강추’한다. 여러분도 법을 지키고 싶은 생각이 마구마구 솟아날 것이다.
두 번째로 느낀 점은 사법기구에 대한 견제기능이 필수적이며 이번 배심원제도가 그 역할을 하는데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고 믿는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입법부, 행정부에 대한 감시 기능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왔고, 사회 각 영역에서 그런 활동들을 다양히 벌여오고 있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는 사법부에 대해서는 그 동안 감시가 소홀했다고 생각한다.
배심원 제도를 통해 법원을 사회에 개방함으로써 재판의 질, 공정성 등이 높아지길 기대한다.

첨부파일: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