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11-11-30   3505

[2011/11/22 국민참여재판 방청기②] 법정에서 사건은 어떻게 재구성되는가

참여연대는 ‘국민참여재판 함께보기’를 한달 내지 두달에 한번 꼴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직업법관만이 판결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배심원들의 ‘상식적 법감정’을 기반으로 판결을 내리는 국민참여재판. 참여연대는 재판을 방청한 분들의 후기를 받아 게시하고 있습니다. 가보지 못한 분들은 글을 통해 재판의 과정을 글을 통해 함께 해 보시기 바랍니다. 글을 보내주신 분들께는 소정의 선물을 드립니다.(편집자 주)

 

 

2011년 11월 22일 국민참여재판 방청후기 II

 

참여연대 인턴 오주예

 

 

높은 천장의 재판정은 고요했다. 저 멀리 높은 단 위에 판사가, 왼편에 배심원과 검사가, 오른편에 피고인의 변호사가 자리했다. 장내 질서를 정리하는 보안요원의 굳은 표정이 재판정의 분위기를 말해주는 듯 했다.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재판정 왼쪽의 작은 문이 열리고 피고인이 들어섰다. 건장한 체격에 짧은 스포츠 머리, 뿔테 안경을 쓴 윤곽이 뚜렷한 얼굴이었다. 남자 셋, 여자 다섯, 평균연령 50대의 배심원들이 주시하는 가운데 피고인이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1 의문
 

판사와 검사, 변호사의 모두발언에서 이 재판은 상습 절도에 관한 사안이며 피고인은 6차례의 절도 전과가 있는 26세의 청년임이 드러났다. 그런데 피고인은 이미 검찰 진술 도중 범행에 대해 자백한 상황이었다. 범죄 사실에 대한 공방이 오고 갈 것을 기대했던 배심원과 방청객들은 맥이 탁 풀렸다. 그리고 머리 속에 떠오른 의문 하나. ‘왜 그는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을까?’

 

이 재판의 핵심은 형량이었다. 피고인이 절도한 금액은 단 70만원이지만 이전 범죄와의 시간 간격, 범행 내용의 유사성, 개인적 성향 등을 고려하여 ‘상습성’이 인정되면 그는 적어도 3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터였다.

 

#2 사건의 맥락
 

검사가 수사 기록을 화면에 띄웠다. 결정적 증거인 CCTV 화면에는 카운터를 보던 피고인이 보조 키를 꺼내 락카 룸에 들어가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흰색 티에 조끼와 청바지를 입고 안경을 벗은 피고인의 모습은 지금의 모습과는 영 딴판으로 매우 훤칠했다. 청소하는 아주머니와 마주쳤음에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차분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업소 주인은 자체적으로 CCTV를 조사해본 결과 피고인이 그 이전에도 비슷하게 움직인 정황이 있다고 진술했다. ‘서랍 안에는 보조키가 있고 카운터를 보는 것은 피고인 혼자.. 이번 한 번 뿐이겠어?’

 

이어 국선변호인이 상습성을 부인하는 취지의 변론을 했다. 2003년의 빈집 절도 7회, 2005년의 빈집 절도 8회, 2007년의 카드 절취 및 현금서비스 7회, 세 차례의 소년원 수형까지. 변호인은 각 범행의 방법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으나 그보다 모든 범죄가 7-8회의 상습 범행이었다는 점이 더 눈에 띄었다. 게다가 2007년의 범행은 동거녀를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죄질이 나빴다. 전과 기록이 드러나자 피고인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날카로워졌다. 출소 후 이 사건 범행까지의 1년 2개월의 시간 간격은 이전 범행에 비해 긴 편이라는 변호인의 말도 피고인의 상습성을 부정하기 어려워 보였다. 피고인은 자신에게 불리한 변론이 이어짐에도 여전히 고개를 떨구고 가만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가끔 드러나는 턱의 힘줄만이 그가 이 재판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3 삶의 내력
 

오후 재판이 시작되고 양형조사관이 변호인 측 증인으로 나섰다. 그는 재판에 도움이 될 진술을 듣기 위해 피고인의 양부모에게 연락했지만 ‘만나러 올 생각 말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했다. 이에 증언을 듣던 검사가 도리어 ‘아들이 재판 중에 있는 것을 알면서 왜 만나지 않으려 하는가?’하며 의아해했다. 사정을 들어보니 피고인은 양부모와의 관계가 단절된 지 오래였다.

 

검사의 피고인 심문에서 피고인의 사정이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대학 졸업 후 경호업체에 취업하려 했지만 전과가 문제였다. 좌절하던 피고인을 받아준 곳은 성인 오락실과 불법 안마 시술소 뿐. 하루 14시간씩 일해 받는 150만원은 턱없이 부족해 여인숙이나 고시원, 동거녀의 자취방을 전전하며 살아왔다. 그간의 삶의 내력을 말하는 피고인은 시종 담담한 태도였지만 전과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말하는 부분에서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아까와 달리 그를 보는 사람들의 눈빛에 안타까움이 흘렀다.

 

변호인은 피고인의 범행이 불행한 가정환경에서 기인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자신이 입양된 자식이라는 것을 처음 안 99년을 시작으로, 그의 절도 범행은 부모의 보호 바깥에 있던 때 저질러진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피고인은 한 살 어린 동생과 차별 없이 자랐다고 본인의 입으로 말했고, 모든 입양아가 범죄자가 되지는 않는다는 판사에 지적에도 수긍했다. 수감생활 중에 쇼핑백 접기로 70만원을 모을 만큼 끈기도 있고, 소년원에서 독학하여 6개월 만에 검정고시를 합격할 만큼 머리도 뛰어난 피고인이 얼마든지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 최후발언

 

검사는 절취액이 70만원으로 경미하여 원래는 기소유예될 사안이나, 범행욕구를 억제하지 못하는 피고인의 절도 습벽 때문에 징역 6년을 구형하였다고 말했다. 변호인은 같은 경제범죄라도 사기, 횡령, 배임은 5억 이상이라는 금액의 하한선이 있고 형도 최소 3년인데 비해 절도의 경우는 단 천원이라도 훨씬 무거운 형이 선고되는 형평성의 문제를 지적했다. 피고인은 죄값은 달게 받겠지만, 전과자라는 편견과 오해 없이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 언니, 오빠의 입장에서, 또 자신의 입장에서, 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신을 판단해주기를 부탁했다. 마지막 발언을 들은 배심원들이 자리를 떠나 평의실로 떠났다.

 

최종적으로 재판정은 상습 절도의 죄를 인정하고 작량감경을 하여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배심원단의 평의 결과도 3년형 5명, 4년형 2명이었다. 단 70만원의 절도로 징역 6년이 선고되는 것이 불합리하게 느껴졌지만, 정황상 절도의 상습성을 부인하기는 힘들었기 때문에 예상 가능했던 결과였다.

 

#5 재판이 끝나고

 

모든 재판 과정이 말로써 진행되는 공판 중심의 재판의 묘미는 시시각각 변하는 재판정의 분위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사건의 맥락이 한 꺼풀씩 베일을 벗고 피고인의 삶의 내력이 풀어헤쳐지는 순간 재판정의 분위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소수 판사의 결정을 구하는 꼴이었던 기존의 재판과 달리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은 물론 방청객까지 스스로 심증을 형성해 나가기 때문인지 재판정은 오히려 더 숙연한 모습이었다. 법률 지식이 없는 일반 시민이 배심원의 기능을 다하지 못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가 있었지만 배심원들은 내내 진지한 모습으로 재판에 임했다. 피고인 또한 일반 국민을 상대로 자신의 죄에 대한 판단을 받을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므로 판결 결과에 승복하기가 더 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이 사법 권력의 주체라는 점을 다시 확인하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참여재판임을 알 수 있었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