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9-04-21   2365

[09/03/31 국민참여재판 방청기] 민감한 사건일수록 민감하게




이 글은 2009년 3월 31일 서울서부지방법원 303호 법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을 함께 방청한 시민의 방청기입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참여연대와 함께 국민참여재판 방청하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배심제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나누고자 합니다.
누구나 언제든지 배심원이 될 수 있는 ‘국민참여재판’을 옆에서 지켜본 방청자들의 경험을 통해 여러분도 함께 배심원단이 되는 간접체험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소중한 방청기를 써준 신혜성 님께 감사드립니다.

‘참여연대와 함께 국민참여재판 방청하기’를 통해 함께 재판을 방청한 사람들


2009년 3월 31일,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하다


작년 6월에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번째 국민참여재판 이후 두 번째 방청이었다. 거의 1년여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참여재판은 과연 얼마나 정착이 됐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재판을 방청했다. 하지만 여전히 재판 과정 중에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점들이 눈에 띄었다. 이번 사건은 특수절도죄로 2년 6개월을 복역하고 현재 가석방 중의 남자가 인터넷 채팅 사이트에서 “건전히 술 한 잔 할 30대남”이라는 방을 개설한 30대 여자와 다른 1인과 만나 술을 먹던 도중, 다른 한 명과 헤어진 후 여자의 집에서 칼을 들고 강간치상 한(하려한) 혐의로 기소된 형사재판이었고, 법정에서 진술한 증인은 피해자 본인과 사건 현장에 갔던 경찰관 한 명으로 총 두 명이었다.


비공개 증인심문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강간치상 사건의 특성상 피해자의 사생활보호 및 인권보호를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검사 측에서 증인심문 전에 요청을 했음에도, 재판부는 피해자 및 피고인과 배심원들이 사는 지역 및 지인들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배심원들에게 간단한 질문을 통해 확인한 내용으로, 그것이 사실인지 확신할 수 없으며, 이들이 피해자나 피고인과 추후에 만나게 될 가능성은 고려되지 않았다. 또한 고등학생을 포함하여, 방청석을 가득 메운 방청객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배심원들은 객관적 판단을 내릴 의무가 있으므로, 이들에게는 공개하는 것이 재판과정 상 불가결하더라도, 방청객을 향한 블라인드 설치와 같은 기본적인 인권보호는 그러지 않았을 때 재판 진행의 수월성과 비교했을 때 더 중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감한 사안에 대한 완전 공개 재판은 결과적으로 (물론 질문의 내용이나 변호인의 질문 태도에 화가 난 이유도 있었겠지만,) 증인심문 시에 피해자가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질문, 당시 상황에 대한 질문에 극도로 예민해져서 변호인의 질문에 더 과격하게 반응하게 하는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찰 측과 변호인 측 심문 및 진술 과정에서 아쉬웠던 점


검사는 피해자가 자신의 집에서 남자와 술을 마신 점을 인정하면서도, 여러 번에 걸쳐 스킨십이나 성관계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고, 경찰에 신고까지 했던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이 칼을 들고 피해자를 위협하고 강간하려 하다가 몸싸움을 하여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힌 점, 이전에도 남의 집에 들어가 젊은 여성 등을 칼로 위협하고 절도를 한 혐의로 징역을 살았으나 가석방 도중에 또 범죄를 저지른 점을 지적했으나, 아직 피고인의 나이가 젊은 점 등을 들어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변호사는 남자의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과 피해자 역시 만취상태로, 스킨십을 유도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위의 내용은 필자가 각 주장의 상대적 강도를 따지지 않고 한 번에 정리한 내용으로, 양 측의 진술 및 증인심문 과정에서, 양 측 배심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자신이 펼치고자 하는 주장과 근거를 신빙성 있고 정확하게 전달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검찰 측은 차분히 피고인이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 부분에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했고, 피해자가 스킨십 등의 의도가 없었음을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정황 부분을 강조하려고 노력했다. 다만, 내가 이전에 방청했던 첫 번째 국민참여재판의 검사와 달리, 피고인의 폭력전과와 사건 당일에 사용된 칼 및 현장 사진 등을 적극적으로 어필하여 피고인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일지라도, 이를 무죄로 판단할 경우 피고인이 사회에서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를지 모른다는 점을 제대로 어필하지 못한 것이 평의 때 배심원 9명 중 4명이나 무죄라고 판단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 같았다.


변호인 측은 피해자 증인심문 시에 증인에게 같은 질문을 조금만 바꿔서 여러 번 하거나 증인이 강하게 부정하는 내용이나 이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적인 질문을 해서 증인을 불편하게 만든 것은 물론, 배심원들과 방청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고, 결국 재판장의 지적을 여러 번 받았다. 참고증인 심문 때에도 비슷한 양상을 보여 역시 재판장의 제재를 받았다. 물론, 증인이 항상 진실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증인의 당시 상황과 의도 등을 공판정에서 다르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다양한 각도에서 재차 질문하여 숨은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 흐름이 증인과의 상호소통 속에서 변화되기도 하고 새로운 질문을 넣기도 하면서 유연하고도 여유 있게 증인의 진술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반해 피고인 심문 시에는 변호인이 거의 모든 질문이 질문 속에 이미 대답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자세하게 마치 잘 짜여진 시나리오와 같이 이어졌다. 모든 내용과 전후관계를 구성하여 피고인은 “예, 아니오” 정도의 답변밖에 하지 않아, 그것이 피고인의 진술인지, 변호인의 진술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변론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그 내용이 가능하면 증인의 입에서 이유와 배경, 설명까지 진솔한 모습으로 흘러나오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변호인 심문 중에는 피고인이 무죄라는 확신이 들기 위한 인간적인 공감대 형성이 힘들었기 때문에, 변호인의 심문 구성 상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성폭행 사건의 배심원단 구성


평의 결과는 놀랍게도 5:4의 근소한 차이로 유죄였다. 그만큼 일반인들도 그 판단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이 날의 배심원단 구성을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 날 배심원은 예비배심원까지 총 10명으로,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던 60대 후반의 할머니, 40대 여성 한 명, 20~30대 여성 한명을 제외하고 7명이 모두 남자였다. 이들 중 한 명은 심지어 공판 중에 졸기까지 했는데 예비배심원은 재판 내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 40대 여성으로 선정되었다. 결국 피해자가 여성인 강간치상 사건의 배심원으로, 7명의 남성과 2명의 여성이 선정된 것이다.

여성 배심원이 여성 피해자에게 더 우호적이다, 그렇지 않다 하는 주장이 모두 존재하지만, 누가 봐도 공평한 재판을 위해서는 적어도 4:5 정도의 비율이 맞춰져야 평의 과정에서도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양성 모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 특히 성과 관련된 사안일수록 일반인들이 가질 수 있는 심리적, 경험적 의견들을 각각의 성별을 지닌 양측이 비슷하게 제시하고 토의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검찰, 변호인 측의 배심원 기피에 의한 불균형일 수는 있으나, 배심원 구성이 평의 과정과 결과 모두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인식해야 한다. 특히 성폭행 등의 사건처럼 민감한 사안은 배심원단의 성별, 연령이나 직업 등의 구성비율을 비슷하게 할 수 있도록 재판부는 최대한 노력하여야 한다.









신혜성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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