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8-06-03   2244

[08/05/27 국민참여재판 방청기 1] 배심원들, “검사의 주장은 틀렸다”


이 글은 5월 27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서울지역 첫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한 뒤의 방청기입니다. 참여연대는 ‘참여연대와 국민참여재판 함께 방청하기’ 행사에 참여한 시민 10명과 함께 이 재판을 방청했으며, 함께 방청한 이들의 방청기를 연재합니다.
참여연대는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제도운영상의 개선점을 찾기위해  ‘참여연대와 함께 방청하기’ 행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박근용(참여연대 사법감시팀장)

연극작가들과 함께 본 국민참여재판


오랫만에 국민참여재판 방청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쓴 국민참여재판 방청기가 3월 24일 인천지방법원에서 열린 상해치사 사건 재판을 본 뒤의 글이었습니다. 이번 재판방청기는 5월 27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강도상해 및 상습절도 사건 재판 방청기입니다.


서울서부지법 303호 법정앞그 두 달 사이에 10건의 재판이 더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서울을 벗어난 곳에서 있었던 재판이라 서울에 있는 참여연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저도 매번 다녀오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혼자 여러 시간 방청하는 것도 재미없지요.
그러나 이번에는 저 혼자 가지 않았습니다. 재판이 있기 일주일 전쯤, 참여연대 회원들에게 보내는 이메일 뉴스레터와 오마이뉴스 기사 등을 통해 참여연대와 함께 재판을 방청할 시민들을 모았습니다.

이번에는 10명의 시민들과 함께 방청했습니다. 참여연대 상근자와 회원도 계셨지만 여덟 분은 그날 처음 만난 시민들이었습니다. 직업도 다양했습니다. 법학을 공부하는 학생도 있었고, 취업준비 중이거나 학원강사여서 시간여유 있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었습니다. 연극극단에 속해있거나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작가뿐들도 있었습니다. 아, 한국에서 처음 실시되는 국민참여재판…연극이나 드라마, 영화같은 작품의 소재로 매력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 이 날 오신 세 분은 작품구상과 기획을 위해 방청을 하게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민이 배심원이 되어 피고인의 유무죄를 결정하는 재판을 다룬 영화와 소설은 많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법정소설 작가, ‘존 그리샴’은 이런 류의 소설을 아주 많이 썼죠. 제가 읽은 것 하나만 소개하면 ‘최후의 배심원’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물론 배심재판중에 가장 유명한 작품은 ‘12명의 성난 배심원’으로 소개된 바 있는 미국영화이죠. 고전중의 고전이자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죠. 이 영화는 러시아에서도 최근 개작되어 ‘12명의 배심원’이라는 이름으로 상영되었습니다. 얼마 전 KBS에서 방영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렇게 이번 재판을 여러 경험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과 함께 보았습니다. 이 분들을 모시고 간 이유는 간단합니다.
국민참여재판 제도가 잘 정착되려면, 법률가들의 노력과 협조, 제도 자체의 결함을 없애는 노력 등이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관심과 협력이 관건이라는 생각때문이었습니다. 국민들이 이 제도를 불편해하고, 믿지 못한다면 누가 배심원으로 출석하겠으며, 누가 이 제도를 좋다고 평가하겠습니까. 재판을 직접 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 같아 방청객으로 같이 가보자고 한 것이었습니다.



입고 있던 옷을 뺏은 것인가? 들고 있던 옷을 뺏은 것인가?


이제 재판의 핵심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이번 재판은 만 18세의 박 군이 술에 꽤 많이 취한 채 집으로 가고 있던 60대 중반의 한 노인한테서 지갑이 들어있던 오리털 파카를 빼앗고 그 와중에 노인의 몸에 부상을 입힌 사건이었습니다.
피고인도 자기가 범행을 했다는 점은 모두 인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재판에서 피고인측과 검사가 서로 팽팽히 맞선 부분은 노인의 옷을 빼앗은 것은 맞는데, 당시 상황을 봐서 절도죄로 처벌할 것인가 아니면 그보다 처벌 수위가 아주 높은 강도죄로 처벌할 것인가라는 점과 이를 판단하기 위해 범행 당시 상황에 대해 검사의 주장과 피고인측의 주장이 엇갈린다는 점이었습니다.
변호인과 피고인은 옷을 빼앗은 것은 모두 인정하는데, 당시 노인은 옷을 손에 걸치듯이 들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검사와 피해자는 비록 옷의 지퍼는 풀어둔 상태였지만 정상적으로 입고 있는 상태에서 피고인이 옷의 뒷목덜미 부분을 잡고 벗겼다고 주장했습니다.


결론부터 먼저 말씀드리면, 배심원들은 피고인의 강도 혐의는 유죄라고 판결했습니다. 즉 절도가 아니라 강도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배심원들은 피해자와 검사의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믿지 않고 피고인의 진술이 더 신뢰할 만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즉 유무죄 여부와 처벌할 범죄의 종류에 대해서는 검사의 주장이 받아들여졌지만, 범죄사실과 관련해서는 검사의 주장을 피고인측의 주장대로 수정되었습니다.



배심원들 “유죄이지만 검사의 주장은 틀렸다”


배심원 평의를 끝낸 뒤, 재판부가 판결을 선고하러 들어오기 전에 법정에서 기다리고 있는 배심원 6명(왼쪽)과 변호인(오른쪽 끝)의 모습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배심재판의 의미가 잘 살아난 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으로 배심원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즉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범죄 당시 상황에 대한 검사와 피고인측의 주장중에 어느 쪽의 주장이 상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믿을 만한 주장인지를 판단합니다. 지금까지는 직업법관 1명 또는 3명이 했던 일을 이제 최소 5명에서 9명으로 구성된 시민들이 먼저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범죄 당시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를 정한 뒤에 그것이 범죄인지, 만약 범죄라면 어떤 범죄인지를 정하는 것이 배심원들의 역할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처벌한다면 어떤 수준으로 처벌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고 하지 않기도 하는 것이 배심원에 의한 재판입니다.


이런 면에서, 27일 서울서부지법의 재판은 배심원들이 해야 할 첫 번째 역할에서, 검사(또는 피해자)와 피고인(과 변호인)측이 범죄 당시의 사실관계에 대해 팽팽히 맞서서 주장하는 상황에서 피고인측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물론 배심원들은 피고인측이 주장하는 사실관계를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그 행위는 범죄이고 그것도 강도죄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점에서도 배심원들은 검사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검사는 강도인 동시에 피해자의 물건을 빼앗기 위해 피해자에게 의도적인 폭력을 행사해 부상을 입혔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에 피고인은 피해자의 무릎에 난 상처와 틀니가 깨진 것은 고의로 폭력을 행사해서가 아니라 옷을 빼앗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다 피해자가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져 생긴 상처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검사도 이 점에 특별히 자신은 없었던지 고의적으로 부상을 입혔다고 해서 ‘강도상해’죄로 기소하면서도 예비적으로 ‘강도치상’죄도 포함시켰습니다(전문적 용어로 하자면, 앞의 것은 주의적 공소사실로, 뒤의 것은 예비적 공소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 배심원들은 범행당시의 상황에 대한 양측을 설명을 들어보았을 때 고의적으로 입힌 상처라고 보기 어렵고 실랑이중에 우연히 일어난 상처였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검찰이 주의적 공소사실로 지적한 강도상해는 무죄이고, 예비적으로 포함시킨 강도치상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결론맺었던 것입니다.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내린 이같은 평결내용을 재판부도 100% 수용했습니다. 배심원들은 자신들에게 기대되었던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에 흔들릴 것이라는 걱정은 얼마나 진실일까?


이 날 재판을 함께 방청한 시민들은 대부분 피고인에게 내려진 처벌수준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높다는 의견이 다수였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단기 2년에서 장기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에게 형량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 배심원들의 의견은 단기 11개월에서 장기 2년 6개월 징역형까지 다양했다고 합니다.


사실 이 재판의 피고인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고, 비록 다른 전과가 있기는 하지만 한 번도 교화, 선도를 받을 기회를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변호인은 이번에 유죄로 처벌하더라도 일반 성인 범죄인과 같이 보통의 교도소보다는 2년을 잡혀있더라도 소년원에 들어가 교도소보다는 좀 더 제대로 된 교육, 선도의 기회를 얻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도 재판을 함께 지켜본 시민들도, 소년원에 보내거나 징역형을 하더라도 1년 미만이었으면 좋겠다, 또는 배심원들이 그런 의견을 낼 것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피고인의 어머니가 증언 도중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또 어머니의 증언을 듣고 있던 피고인도 눈물을 훔치는 장면을 배심원들도 보았을 것이라 생각했고, 마지막에는 피고인이 가정형편이 어려워지기 전 그 가족들과 단란하게 지내던 사진까지 큰 화면으로 제시되는 바람에 배심원들의 마음이 조금 흔들리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사실 이런 사진은 법정에서 배심원에게 보여지면 안되는 자료라고 생각하는데, 검사도 판사도 허용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11개월형이 적당하다고 의견을 낸 배심원도 있었지만, 2년 6개월형까지 요구한 배심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민배심원에 의한 재판에 대해 걱정하는 이들이 하는 이야기 중에는 ‘감성재판’이 될 것이라는 말이 많습니다. 물론 그런 경우가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사실 국민참여재판이 아닌 직업법관이 주도하는 통상의 재판에서도 사회여론이나 분위기에 따라 재판결과가 조금씩 다르게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국민참여재판만이 감성재판의 우려를 뒤집어 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이번 재판은 여론과 분위기에 좌우될 것이라는 우려와는 반대되는 결과였습니다.


이번 재판은 서울에서 열린 첫 번째 국민참여재판이었습니다. 서울의 두 번째 참여재판은 6월 17일에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고 합니다. 이 재판에도 시민들과 함께 갈까 합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참여연대로 연락주세요.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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