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7-02-07   1578

[국민참여재판-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①] “국민참여재판,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한나라당 안상수 법사위원장에게 보내는 첫번째 편지

이 편지는 국민의 사법참여를 위한 국민참여재판의 이해를 돕고 관련 법안의 도입을 바라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 한상희, 건국대 교수)가, 국회 법사위위원들에게 보내는 ‘국민참여재판-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릴레이 편지 제1호 입니다.

안상수 법사위원장께 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대선을 맞는 해이기에 정치인으로서는 가장 바쁜 한 해가 되리라 짐작합니다. 그 때문에 올해는 민생현안을 주의 깊게 들여다볼 여유가 부족하고, 법사위에 산적해있는 개혁법안들을 검토할 마음의 여유가 적을 것 같아 걱정되기도 합니다. 한걸음 비껴서 보면, 이제 대통령의 존재가 우리의 삶 전체를 압도적으로 규정했던 시대는 넘어섰습니다. 대통령을 비판하면 곧 실형을 살아야 했던 긴급조치의 시기도 먼 옛날 일입니다. 대통령 비판이 직장 상사 비판보다 쉬운 일이 되었으니, 대통령을 보통사람보다 만만한 상머슴으로 여길 수 있을 정도로까지 우리 민주화가 진척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편으로 듭니다.

민주화는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결과입니다

올해로 1987년 6월 항쟁 20주년을 맞게 됩니다. 1987년은 그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분기점입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까웠던 시대”로부터 이제는 “법이 말하는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1987년은 박종철의 고문사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박종철 사건도 권위주의 통치하에 발생한 여느 사건들처럼 억지로 덮고 갈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박종철을 고문한 치안본부에서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궤변은 최종길 교수사건처럼 투신자살했다고 발표한 것이나, 부천성고문사건처럼 ‘성을 혁명의 도구로 사용한다’고 적반하장의 공격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 수준의 억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권력자들의 궤변과 억지를 막는데 많은 분들이 기여했음을 기억합니다. 그 가운데 당시 안상수 검사의 올곧은 부검지휘가 큰 역할을 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민주화와 인간화는 각자가 자기의 직업활동 속에서 직분과 양심에 진정으로 충실할 때 쌓여 이루어지는 과실이라는 간명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의 검사가 지금은 이전보다 훨씬 막강해진 국회에서 법사위원장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 안 위원장님께, 현재의 사법개혁 과제에 대해, 그 중에서도 국민참여재판의 당위성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2004년 사법개혁위원회는 국민이 참여하는 형사재판을 중죄사건 중심으로 도입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 제안의 구체화를 위해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각계의 공청회를 거쳐 국민의사법참여에 관한 법률안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국회에 제출하여 법안심의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사개위와 사개추위는 각 법조집단과 학계, 시민사회의 인사들로 구성되었으며, 독립적으로 수 십 차례의 논의를 한 끝에 주요한 사법개혁안을 도출했습니다. 대부분의 의제는 합의를 이룰 수 있는 공약수를 도출하여 개혁안을 마련한 것입니다. 종래 사법개혁안은 늘 법조와 비법조, 사법부와 행정부 사이의 갈등으로 말미암아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만, 이번에는 합의를 단계적으로 이루어낸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때문에 더욱 국회가 성의있게 이 개혁안들을 최우선의 과제로 심사하여 법률로 성안시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입법부는 행정부, 사법부보다 국민과 가장 가까이 있어야 할 기관입니다. 사법부는 아무래도 장기 근무하는 법조인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여 국민 참여에 소극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법원 및 검찰조차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할 수 있다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국민참여재판을 당연히 적극적이어야 할 국회가 그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로 임하고 있음은 어색합니다.

국민참여재판을 하지 않는 나라가 예외적입니다

“국민이 재판에 참여하다니?” 하는 분들이 아직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미국영화에나 나오는 것 아니냐, 혹은 포퓰리즘에 영합한 재판이 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국민참여재판의 원형은 배심제입니다. 영국과 미국에서 출발했지만, 현재 세계의 60개국 가까이가 배심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유럽 국가들은 배심제를 채택하고 있거나, 배심과 참심을 혼용한 제도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배심제를 연구한 한 학자는, 국민참여재판이 전세계적 추세라고 말합니다. 국민이 배제된 직업법관만이 재판을 하는 나라는 네덜란드, 일본, 한국, 사우디, 바레인 등을 열거할 수 있을 뿐 입니다. 그 중 일본은 2009년부터 일본형 참심제를 도입하기로 입법하였습니다. 이같이 국민참여재판을 하는 나라가 예외적인 게 아니라, 국민 참여를 배제한 나라가 극히 예외적인 것입니다.

사법의 민주화, 선진사법 구현을 위한 길

국민참여재판은 그 나라의 민주화와 긴밀한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시민혁명 후 첫 단계로 배심제가 도입되었습니다. 그러나 2차대전 중 독일점령 하에서 배심제는 폐기되었다가, 전후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독일은 19세기에 배심제를 도입했지만, 히틀러 치하에서는 어떤 형태의 국민참여재판의 형태도 배제했습니다. 일본도 1928년부터 배심제를 시행했지만, 일본 파시즘이 절정에 달한 1943년에 배심제를 ‘정지’시켜버렸습니다. 이렇듯 전체주의와 파시즘 체제는 국민참여재판을 제거해버립니다. 배심제가 ‘자유의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기에, 독재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민참여재판을 먼저 없애야 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재자 프랑코가 사망한 뒤 스페인이 배심제를 부활시켰고, 소비에트 전제정이 종식된 뒤, 러시아가 취한 첫 사법적 조치도 배심제 부활입니다. 이렇듯 그 나라가 민주화를 이루어가면 배심제를 비롯한 국민참여재판이 제도화됨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와 같이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어내면서 국민재판참여를 실현할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학계와 법조, 국회가 이 문제를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제 국민재판참여를 도입함으로써 우리는 정치와 사법 모두에서 민주화의 제도적 틀을 온전하게 실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사법부는 권위주의 하에서 독재정권의 ‘주구’라고 비난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긴급조치 같은 것은 국회의 입법권 자체를 봉쇄하고 대통령 마음대로 국민의 자유를 유린하면서, 그에 대한 사법적 심사조차 배제했습니다. 그 시절 사법부는 법을 그대로 적용해도, 그 법률이나 비상조치가 ‘악법’이었기에 악법의 실현자로서의 오명을 벗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다릅니다. 사법부는 법관들의 부끄러움의 고백과 정치적 중립성을 향한 자기쇄신을 함으로써 제도의 독립을 이루어냈습니다. 그럼에도 사법부는 아직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국민에게 친근한 기관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재판을 ‘판사들, 그들의 것’으로 치부하지, ‘우리의 것’으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국민이 재판에 참여할 때, 법적 기준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기준으로 다듬어지고, 재판과정도 투명해집니다. 법이 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시민의 것으로 될 때 법의 생활화, 법의 시민화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선진사법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선진사법 없이 선진국가가 될 수 없습니다.

디딤돌이 되어주십시오

국회 법사위는 지난 해 9월에 국민재판참여에 대하여 한차례 공청회를 개최한 바 있습니다. 저도 진술인으로 참석하여 진술하고, 의원님들과 질의응답을 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많은 의원들께서 사법부의 판결에 대해 충분히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국민이 재판에 참여할 경우 온갖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개위에서도 그런 우려를 안 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배심원의 평결에 대해 ‘권고적 효력’을 부여하였고, 직업법관들이 이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했습니다. 법조인들이 두루 참여하여 모의재판을 여러 차례 열었고, 그 효과를 검증하고 있는 중입니다. 국민참여재판이 시행되면, 사법을 둘러싼 연고주의의 의혹을 일거에 불식시킬 수 있습니다. 국회의 입법화가 이루어지면, 법조 각 직역들이 새로운 재판을 정착시켜 나가기 위한 준비를 본격적으로 해나갈 것입니다. 시민들의 관심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질 것입니다.

이제 국회가 국민의 사법참여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국민을 위한 사법’의 단계보다 더 나아간 ‘국민에 의한 사법,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의 단계로 우리의 사법수준을 끌어올리는 디딤돌을 놓아 주시기 바랍니다.

2007년 2월 7일

한인섭 드림

한인섭(서울대 법대교수, 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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