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7-02-09   1409

[국민참여재판-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②] “국민을 믿지못하세요?”

이 편지는 국민의 사법참여를 위한 국민참여재판의 이해를 돕고 관련 법안의 도입을 바라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 한상희, 건국대 교수)가, 국회 법사위위원들에게 보내는 ‘국민참여재판-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릴레이 편지 제2호 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최병국 의원님.

대한민국의 국가발전과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시는 의원님께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국민의형사재판참여에관한법률안」과 관련하여 심리학자의 관점에서 몇 가지 진솔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 문제의 해결책, 국민의 사법참여 제도

이미 오랜 동안 법조의 중심에서 많은 족적을 남기신 최병국 의원님께서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겠으나, 삼권분립의 한 축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선거 등의 민주적 절차 없이 구성되는 사법권은 본질적으로 민주적 정당성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국가권력의 강력한 행사에 기초한 사회주의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법 전통에서는 사법권의 이러한 민주적 정당성의 결여가 크게 문제시되지 않지만, 개인의 자유에 기초한 민주주의 가치와 자유시장 경제원리를 중시하는 법 전통에서는 매우 심각한 문제로 인식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러한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식 중의 하나로 서구에서 배심재판제도가 발전해 왔습니다. 1670년 영국 런던에서 퀘이커교도의 집회에 참석하여 연설한 William Penn에 대한 배심재판과 1735년 미국에서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수호한 배심재판으로 평가되는 Zenger사건 등의 수많은 사례가 웅변하듯이 국민이 형사재판의 판결에 참여하는 제도는 막강한 국가권력의 전횡으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로써 발전해왔다는 사실을 존경하는 의원님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민주적 정당성이나 자유민주주의 수호 등의 이념적인 이유를 떠나서, 일반인이 사법판단에 참여하는 제도가 대한민국에 도입되어야 하는 실질적인 이유는 일반인이 법전문가인 판사보다 실체적 진실을 더 잘 규명해서도 아니고, 실체법을 더 잘 적용해서도 아니고, 사회적 형평을 더 잘 구현하기 때문도 아니고, 피고인의 인권을 더 잘 보호해서도 아닙니다. 국민의 사법참여를 실현해야하는 실질적 이유는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 과학적으로 보다 타당하게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과학은 특정한 사실을 추정하게 된 근거 및 주체와 그 추정된 사실을 판단 혹은 인정하는 근거 및 주체가 서로 독립적일 것을 요구합니다. 또한 인과관계를 발견하는 과정 즉, 진실을 추정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난해해도,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추정된 진실은 그것이 참이라면 단순명료하면서도 보편성을 가져야한다는 것이 과학의 기본원칙입니다.

국가가 추정한 실체적 진실을 일반인들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민의 사법참여의 핵심은 국가 (검사, 직권주의 제도에서는 판사도 포함)가 수사와 조사를 통하여 형사사건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추정한 바로 그 다음에 있습니다. “국가가 수사와 조사를 통하여 추정한 것이 실체적 진실이라면,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고, 평균적인 지적 역량을 가진 사람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이 납득할 수 있어야한다” 는 당연한 명제가 바로 국민의 사법참여의 실질적인 핵심입니다.

국민의 사법참여를 실현해야하는 이유는 국가에 의한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 단순하고도 보편적인, 그러면서도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필터 즉, 과학적으로 타당한 필터를 통하여 인정되어야 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국가는 거대한 공권력과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실체적 진실을 추정하고, 그 추정된 실체적 진실이 평균적인 지적 역량을 가진 보편적인 일반인들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이 단순명료하게 납득할 수 있는 것인지를 검증함으로서 보다 양질의 절차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국민의 사법참여의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국가권력 작용의 한 축을 이루는 사법판단이 사법시험에 의해 선택된 소위 법조삼륜에 의해 폐쇄적으로 독점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엘리트주의적 사고 틀이 국민의 형사재판참여제도의 도입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국민의형사재판참여에관한법률안」에 대한 엘리트주의적 반대론은 여러 가지의 형태를 띠고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한국 국민의 시민정신이 성숙하지 못했다”, “한국의 일반인들은 지연, 학연, 혈연에 얽매여 공정한 판단을 하기 어렵다”, “한국의 일반인들은 사법판단을 위해서 필요한 법원칙을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의 일반인들은 매수되기 쉽다”, “한국의 일반인들은 사법판단에 따르는 정의감과 책임감이 부족하다”, “한국에서는 일반인이 재판에 참여하면 판사의 독립성이 저해된다.”, 등이 그러한 엘리트주의적 반대론들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개개인은 참으로 열악한 국가적인 교육환경 속에서도 전 세계의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지적 수준을 거의 스스로 계발해왔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성숙된 판단능력과 토론문화는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와 대법원이 공동으로 주관한 모의배심재판에서도 거듭 확인된 바 있습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시민들 중에서 무작위로 선정되어 모의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여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배심평의에서 사실인정을 위하여 논의하는 모습을 지켜본 판사님들조차 그들의 논리성과 합리성에 놀라움을 표현하였고, 평의과정에서 이루어진 모의배심원들의 구체적 발언에 대한 엄격한 통계적 검증에서도 법적 판단기준 (합리적 의심의 초월 기준, 무죄추정의 원칙, 등)에 대한 이해와 공적 판단을 위한 토론상황에서의 성숙된 민도가 객관적으로 확인된 바 있습니다. 《박광배, 김상준, 이은로 & 서혜선 (2005) “형사배심 평의에서의 사회적 동조와 인지적 전향: 한국 최초의 시민배심 모의재판의 평의에 대한 내용분석”, 한국심리학회지: 사회 및 성격, 19, 3, 1-21.》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적인 대한민국 국민의 판단자질과 진실파악능력에 대한 엘리트주의적 불신을 만약 국회의원이 가지고 있다면 그 국회의원은 자신이 당선된 것도 국민의 그러한 무능함과 미성숙함의 결과인지에 대해서 자성해 보아야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판단자질과 진실파악능력에 대한 그러한 비판론들은 확인해볼 필요도 없이 당연히 맞는 경우도 있고, 틀리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우려들이 설혹 사실인 경우에도, 국민의 사법참여와는 무관한 기우들입니다.

가설적 진실 (검사의 기소)이 평균적인 지적 역량과 보편적인 생활경험을 가진 사람에게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이 납득되는지를 검증하는 것은 풍부한 사법참여경험을 필요로 하거나, 높은 민도를 요구하거나, 냉정하고 이지적인 판단력을 필요로 하거나, 판례와 양형통계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판내용이 복잡하거나 사법의 형평성이 중요하다면 국가는 그것을 사법에 참여하는 국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섬세한 절차와 효과적인 방법으로 제시해야할 것입니다. 만약 국민의 사법참여에 의해 오판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사법판단에 참여하는 일반인이 오판하는 것이 아니고, 국가가 실체적 진실을 잘못 규명하였거나, 혹은 규명한 실체적 진실을 가지고 평균적인 지적 능력을 가진 일반인들을 납득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국민참여재판이 한국문화에 맞지 않는다?

일반인이 사법판단에 참여하는 제도에 대해서 일각에서는 한국문화에 맞지 않는 외국의 제도를 도입한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비판은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과학적 절차정의가 한국문화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과 같습니다. 민주주의와 과학이 국경과 문화를 초월하여 인간과 사회의 복지와 행복을 위한 보편적인 가치를 가지듯이,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과학적 절차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사법참여제도는 어떤 문화에는 맞고 어떤 문화에는 맞지 않는다는 하찮은 논의를 초월하는 보편성과 중요성을 가집니다. 국민이 사법판단에 참여하는 제도가 어떤 문화에 맞는지 여부를 왈가왈부해서는 안 되고, 어떻게 하면 한국사회와 안정적으로 조화되면서 진화해갈 것인가에 중지를 모아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하여 발전시켜 가야할 것입니다.

사법판단 과정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사법과정에서 양질의 절차정의를 과학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지역사회에서 무작위로 선정된 일반국민이 재판에 참여하는 제도를 도입해야하는 매우 중요한 필요성들이지만, 그 외에도 대한민국이 그러한 제도를 도입해야하는 중요한 이유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첫째, 일반국민이 재판에 참여하는 제도에서는 국민들이 판사와 직접 접촉하는 기회가 많아지므로 사법부와 판사의 역할과 권위에 대하여 추상적이 아닌 구체적인 존중심을 가지게 되고, 더불어서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성이 제고됩니다.

둘째 , 배심원들은 사법부 지도층을 비롯한 각종 기관의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신의 경력이나 명성을 염두에 두고 양심에 반하는 판단을 할 이유가 없으므로 매수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고, 따라서 결과적으로 사법판단의 독립성이 보다 확실히 확보됩니다.

셋째, 일반국민이 재판에 참여하는 제도에서는 판사가 일반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용어와 방식으로 법률내용을 설시해야하므로 법률적용과 법률해석에서 사법부의 책임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합니다.

넷째, 일반국민이 참여하는 재판은 보통사람들이 가장 교육수준이 높은 전문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적극적으로 법과 도덕성에 대한 실용적인 배움을 가지는 장이므로 공적제도에의 직접 참여를 통하여 공인으로서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공적문제를 다룰 줄 아는 시민의식의 성장을 촉진하여, 궁극적으로 수준 높은 정치문화가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토대가 될 수 있습니다.

다섯째, 일반국민이 재판에 참여하는 제도는 ‘정의’ 개념과 ‘공정성 (equity)’ 개념에 대한 담론을 시민들 사이에서 활성화함으로서 자신과 타인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인식이 정교화하고, 지연, 혈연, 학연 등의 이기주의가 감소합니다.

여섯째, 법원판결문들을 보면 “일반인의 건전한 법감정”과 “사회통념”에 비추어 판단되는 사건이 매우 많은데, 일반국민이 재판에 참여하는 제도는 “일반인의 건전한 법감정”과 “사회통념”을 판사가 추측토록 하는 대신 직접 법정에 현출시키는 제도입니다.

일곱째, 다양한 계층에서 다양한 경험을 가진 여러 사람들의 토론을 거쳐서 이루어지는 사실판단이 한 명의 전문가에 의한 사실판단보다 우수하다는 것은 수학적으로 증명되는 사실인 바 (Condorcet’s Theorem), 전문법관에 의한 사실인정이 배심원단에 의한 사실인정보다 더 우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전문 법관은 특이한 법적 형식논리나 판례의 일반화에 경도되어 사건의 특수성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한국의 사법제도가 민주적이면서도 또한 “국가가 규명한 것이 실체적 진실이라면, 평균적인 지적 역량을 가진 국민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이 납득할 수 있어야한다.” 는 당연한 과학적 명제를 정정당당하게 구현하는 제도로 정착할 수 있도록 존경하는 최병국 의원님께서 국회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실 것을 간곡히 청원합니다.

2007년 2월 9일

박광배 드림

박광배(충북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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