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7-02-26   1606

[국민참여재판-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⑤] “국민참여재판, 민주주의와 진보정치의 발판입니다”

이 편지는 국민의 사법참여를 위한 국민참여재판의 이해를 돕고 관련 법안의 도입을 바라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 한상희, 건국대 교수)가, 국회 법사위위원들에게 보내는 ‘국민참여재판-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릴레이 편지 제5호 입니다.

존경하는 노회찬 의원님께

먼저 진보정치의 발전을 위하여 의정활동에 여념이 없으신 노 의원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 아래에서 많은 탄압을 받았던 진보운동은 이제 국회에도 교두보를 가진 어엿한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앞으로 노 의원님을 비롯한 많은 훌륭한 분들의 노력이 쌓여나간다면 진보정치는 조만간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제가 노 의원님께 공개편지를 띄우는 것은, 노 의원님을 비롯한 민주노동당 의원님들께서 국민참여재판 법안의 조속한 통과에 앞장 서 주시길 부탁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 아래에서 진보운동은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헌신하였습니다. 현재 우리가 정치적 자유를 누리게 된 데에는 진보운동이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이 사실입니다.

국민참여재판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며 진보정치의 발판입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하여 국민참여재판이 갖는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진보운동 내에서 취약해 보입니다. 오히려 국민참여재판을 시행하게 되면 변호사비용이 증가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 현상이 심화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우려만이 퍼져 있는 듯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입법부는 유권자의 투표에 의해 구성되고,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 역시 유권자의 투표에 의해 선출되지만, 시민의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법부의 구성과 재판에 대해서는 시민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습니다. 장기간 국가 우위의 권위주의 논리가 만연되어 있었던 결과, 민주화 이후에도 우리 사회에는 재판에서 시민의 참여가 배제되는 것이 ‘정상’인 것으로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릴레이 편지’ 시리즈의 다른 편지에서도 강조된 것처럼, 국민참여재판은 민주주의의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재판은 필연적으로 시민의 생명, 자유, 재산의 제한 또는 박탈을 가져옵니다. 이에 민주주의의 원리는 사법부 역시 주권자인 국민의 통제를 받을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주권자의 대표가 법을 만들 것을 요구함은 물론, 단지 법률전문가의 의견만이 아니라 동료 주권자인 배심원의 의견이 반영된 재판이 이루어질 것을 요구합니다.

국회에 제출된 법안에 따르면 배심원단은 법관의 관여 없이 독자적으로 평의하고 유무죄를 만장일치로 평결하는데, 배심원이 만장일치의 의견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 법관과 함께 토의하고 다수결로 평결하게 됩니다(법안 제72조 제2-3항). 이러한 국민참여재판을 통하여 시민은 ‘자기통치’를 실현하게 될 것이며, 이는 사회 다른 영역으로 확산될 것입니다. 그리고 배심원의 평결이 유죄인 경우 법관과 함께 양형에 관하여 토의하고 개별적으로 양형에 관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바(제72조 제4항), 화이트 칼라 범죄 등에서 나타나는 과도하게 가벼운 양형을 시정하는 효과를 낳을 것입니다.

국민참여재판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일정한 부작용도 발생하겠지만, 이는 사법에서의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대원칙 앞에서는 사소한 것입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민주화가 되면 온갖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다”, “우리는 아직 민주주의를 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식의 논리를 퍼뜨리며 민주화를 방해했던 점을 상기하면, 국민참여재판의 도입이 전혀 늦지 않은 사안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참여재판은 엄격한 증거법을 만들며 ‘전관예우’를 없앱니다

한편 국회 논의 과정에서 “국민참여재판이 피고인에게 유리한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러한 질문이 국민참여재판에서는 사실의 판단자인 배심원이 전문증거(hearsay)나 위법수집증거에 바로 노출되는 일은 없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라면 옳은 지적입니다. 현재의 법관만에 의한 재판구조에서도 전문법칙,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이 있지만, 법관은 이러한 증거를 다 보게 되고 난 후에 증거배제 여부를 결정합니다. 국민참여재판이 시행되면 증거법은 보다 엄격하게 적용될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참여재판의 도입 자체가 피고인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것은 아닙니다. 이 제도의 요체는 유무죄를 법률전문가의 판단에 의해서만 아니라 동료 시민의 판단을 중심으로 하여 도출하자는 것으로, 이는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재판을 만들자는 것이지, 피고인에게 유리한 재판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국민참여재판에서 피고인은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동료 시민에게 성공적으로 호소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의 행위는 법률전문가에 의한 경우보다 엄하게 단죄될 수도 있습니다[현행 법안은 ‘피고인 의사확인 절차’(제8조)를 두고 있는 바,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대상사건에서 제외시키고 있는바 피고인은 선택권을 가집니다]. 어떠한 경우든 지금과 같은 ‘전관예우’가 발생한 여지는 사라지며, 판결에 의한 승복도는 높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참여재판을 하면 재판이 길어져 피고인에게 고통이 커지지 않겠는가 하는 걱정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불구속재판의 원칙이 정착되고 있다는 점, 국민참여재판의 경우 ‘집중심리의 원칙’이 관철될 것이라는 점 등을 생각하면 재판의 과도한 지연은 없을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피고인에게 더 중요한 것은 재판의 지연 보다는 자신의 방어권을 충분히 행사하고 동료 시민인 배심원의 충분하고 깊은 토의를 통한 판결을 받는 것입니다.

저는 철저한 민주주의자이신 노 의원께서 바로 이상과 같은 국민참여재판의 의미를 잘 알고 계시리라 확신하며, 현재 계류 중인 법안통과를 선도해주시기를 희망합니다.

국민참여재판의 성공을 위하여 국선변호제도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한편 이 편지를 빌어 국민참여재판을 시행할 경우 변호사비용이 증가할 것이고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는 사람만이 이득을 보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현상이 심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방지할 대책에 대하여 소견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이러한 우려는 근거가 있는 것이며, 제도적 보완을 통하여 이러한 우려가 불식되어야 국민참여재판의 정당성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되더라도 경제적 빈곤 등에 의하여 유능한 변호인을 선정할 수 없는 자가 제대로 자기방어를 할 수 없게 된다면, 이는 국가가 피의자ㆍ피고인의 변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도 반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민참여재판은 모든 경우에 국선변호가 이루어지도록 예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현행 국선변호제도의 개선이 바로 국민참여재판에서 유죄무죄, 무전유죄 현상을 불식할 수 있는 핵심 사안입니다. 아래 <표 1>을 보면, 1996년 이후 2005년까지 10년간 국선변호인이 선정된 피고인 중 빈곤 기타사유로 국선변호인이 선정된 피고인의 수 및 비율의 증가에 대한 통계를 보면, 그 수와 비율이 매년 폭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표1> 빈곤사유로 국선변호를 받는 피고인의 수 및 비율 추세(1995-2005)

1996199719981999200020012002200320042005
피고인 수(명)5,4646,80418,95928,44730,57733,80441,16366,48295,55447,493
비율(%)16.919.732.543.547.853.560.271.57969.3

한편 최근 5년간 국선변호료의 예산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선변호인 선정건수가 급증함에 따라 그 예산 역시 급증하고 있습니다.

<표 2> 최근 5년간 국선변호료 예산 (단위 : 원)

20022003200420052006
128억7,045148억55,963162억1,895173억7,470350억

그런데 이러한 거액의 예산을 투여하고도 국선변호의 질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향후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될 경우 경제적 약자를 위한 국선변호가 제대로 운영될지 우려가 됩니다.

바로 이 점을 민주노동당이 포착하고 새로운 정책대안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차적으로는 2004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국선변호 전담변호사 제도’를 확대ㆍ개편하고 이 변호사들이 국민참여재판에서의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공공변호인’ 조직의 창설을 고민해야 합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검찰청에 대응하는 ‘공공변호인’(public defender) 조직을 새로이 창설하여 피의자와 피고인을 위한 국선변호를 전담하게 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새로운 공공변호인 기구를 만드는데 상당한 예산이 소요될 것이지만, 앞에서 본 엄청난 국선변호예산을 흡수하여 사용한다면 결과는 달라집니다.

매년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국선변호의 수요를 생각할 때 선정 사건 수에 비례하여 국선변호인에게 보수를 지급하는 제도 보다는, 정부가 고정급을 지급하고 국선변호를 전담하게 하는 제도가 훨씬 경제적일 것입니다. 그리고 사법연수원수료자 중에서 병역미필자를 군법무관이나 공익법무관이 아니라 공공변호인으로 3년 정도 대체 복무하도록 한다면 오히려 예산은 절감될 것입니다. 그리고 능력 있고 소신 있는 인권변호사들이 이 조직에 투신한다면 경제적 약자를 위한 국선변호의 질은 매우 높아질 것입니다. 이 제도의 창설방안에 대해서는 과거 필자 등이 제안한 법안이 있으니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

[사법제도개혁추진회 http://www.pcjr.go.kr/ 내에 있는 위원회 자료실 중 ‘법률구조제도 개선방안 참조 요망].

노 의원님과 민주노동당은 사회ㆍ경제적 약자의 편에 서서 우리 사회의 진보를 위한 길을 개척하고 계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일이 많으시겠지만 국민참여재판이 민주주의와 진보정치 발전을 위하여 갖는 의미를 생각하시면서, 이 제도의 도입과 성공을 위하여 힘써 주실 것을 한 번 더 부탁드립니다.

의원님의 건승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07년 2월 26일

조 국 드림

조국(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서울대 법과대학 부교수)



JWe2007022610.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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