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11-11-24   4177

[2011/11/22 국민참여재판 방청기①] 검사의 법복은 규문주의의 뿌리깊은 잔재가 아닐까

참여연대는 ‘국민참여재판 함께보기’를 한달 내지 두달에 한번 꼴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직업법관만이 판결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배심원들의 ‘상식적 법감정’을 기반으로 판결을 내리는 국민참여재판. 참여연대는 재판을 방청한 분들의 후기를 받아 게시하고 있습니다. 가보지 못한 분들은 글을 통해 재판의 과정을 글을 통해 함께 해 보시기 바랍니다. 글을 보내주신 분들께는 소정의 선물을 드립니다.(편집자 주)

 

 

2011년 11월 22일 국민참여재판(서울중앙지방법원)  방청후기

 

참여연대 인턴 백진욱

1. 국민참여재판의 도입 배경
 
2007년 대대적인 개정을 거친 이른바 ‘신형사소송법’은 공판절차에 관한 규정들을 정비함에 있어서 공판중심주의적 법정심리절차의 확립을 주된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공판중심주의란 형사사건의 실체에 대한 유죄·무죄의 심증 형성은 법정에서의 심리에 의하여야 한다는 원칙을 말하는데, 이러한 공판중심주의의 핵심적인 취지는 형사절차에 대한 국민의 감시와 통제를 가능하게 하고 공정한 절차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2007년 개정 전의 형사소송법도 이념적으로는 공판중심주의를 지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형사재판의 현실은 수사기록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유·무죄와 양형에 관한 판단이 공개법정에서의 심리를 통하여 이루어지지 않고 법관의 집무실에서 수사기록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이에 법관이 조서에 의존하게 된 결과 형사재판절차가 지나치게 생략되어 방청객들이 심리의 경과와 재판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조차 힘들었다. 그리하여 사건의 결론은 법정심리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재판부와의 인맥이나 보이지 않는 외부의 힘에 의하여 좌우된다는 억측을 낳게 하였고 그에 따라 형사사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2007년 신형사소송법이 공판중심주의를 법정심리절차의 대원칙으로 설정한 것은 무엇보다도 국민참여재판의 실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이 참여하는 형사재판을 말한다. 배심원은 객관적인 관찰자로서 검사와 피고인·변호인 사이에 벌어지는 공격·방어활동을 통하여 심증을 형성하게 된다. 법률문외한인 배심원은 직업법관과 달리 조서나 그밖의 소송기록을 읽거나 참고할 수 없다. 공판기일의 심리가 구두변론의 형태로 진행되지 않으면 배심원은 정확한 심증형성을 하기 어렵다. 법정심리절차가 공판중심주의를 지향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객관적인 제약조건이 설정된 것이다. 한편, 배심법원의 도입은 종래 절대 권력에 협력하였던 직업법관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사실판단의 주체를 직업법관으로부터 일반시민으로 전환하는 것으로서 치자와 피치자의 자기동일성을 확인하고 형사재판의 민주화를 꾀하는 획기적인 발전이었다.

 

 

2. 국민참여재판제도의 의의에 대한 간략한 고찰
 
위에서 간략히 살펴본 바와 같이, 국민참여재판은 우선 공판중심주의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제도이다. 이는 그간 주로 ‘서류’에 의해서 법관과 검사 그리고 변호사의 법률 전문가들끼리 소위 ‘그들만의 리그’를 통해 주로 법정 밖에서 이루어지던 재판과정이 공개된 법정 안에서, 배심원이라는 국민이자 일반사회구성원인 제3자가 직접 보고 들으며 감시될 수 있는 메커니즘으로의 변화를 뜻한다. 그간 판사가 주로 심증을 형성하게 된 매개로 기능해온 ‘서류’라는 것은, 실제 벌어졌던 혹은 있었던 “있는 그대로의 구체적인 실상” 이라기보다는, 이러한 실제의 현상이 경찰, 검찰의 수사과정을 통해서 ‘재구성’되고 ‘재창조’된 별개의 편집된 매개물이라는 점에서 어디까지나 실체적인 진실을 찾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경주하지 않을 수 없는 형사 재판의 본질에는 부합하기 어려운 매개체라고 생각된다.

 
이에 적어도 실체적 진실을 가장 중시하지 않을 수 없는 형사재판은, 최종적인 판결의 주체인 판사가 피고인의 목소리, 자세, 분위기 등을 가까이에서 직접 눈과 귀로 보고 들으며 오랜 판결 경험을 바탕으로 그 진실성을 판단하고, 반대로 피고인 또한 경찰과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재구성되고 재창조된 수사서류의 형태가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판사와 배심원단을 향해 직접 자신의 진실성 내지 주장을 호소할 최소한의 기회를 갖게 된다는 점에서 공판중심주의는 형사재판의 필요불가결한 수단이라고 생각된다. 한편, 재판의 양 당사자로서 검사 측과 변호인 측 역시, 공판정에서 직접 구두로 서로 상대의 증거와 주장에 상응하는 자신의 반박 증거와 반박 주장을 번갈아 거치면서, 판사와 배심원으로 하여금 점진적이고 변증법적으로 실체적 진실에 수렴하며 이로 귀결될 수 있는 판단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면 역시 형사재판에서 공판중심주의와 구두변론주의의 핵심적인 취지가 아닌가 싶다.
 
국민참여재판제도의 의의를 보자면 우선, 무엇보다 이러한 형사재판에서의 공판중심주의와 구두변론주의가 보다 원활하고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핵심적인 매개체 내지 촉매제의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이라고 생각된다. 즉, 전문적인 법률용어를 알기 쉽지 않은 일반인이 없이 법률 전문가인 법관과 검사 그리고 변호인만이 있는 상황이라면, 간략하게 서류의 형태로 주고받고 이를 통해 주된 증거조사와 심증의 형성이 이루어질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5~9인의 배심원단이 공판정 내에서 함께 재판을 구성하는 주체로 참여할 경우에는, 이들을 구체적인 말로 설득하는 것이 증거를 설명하고 심증을 형성하며 재판을 진행해가는 주된 과정이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공판중심주의와 구두변론주의의 기조가 유지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둘째, 국민참여재판은 사회일반의 정의 관념에 보다 부합하는 판결을 유도하는 측면을 갖는다고 생각된다. 법학은 흔히, ‘상식의 학문’이라고, 법은 보통, ‘상식’이라고 불린다. 이러한 상식(常識)이란 무엇인가. 사전적으로 상식이란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 따위”을 말한다. 본인은 법학을 통해 법률전문가집단을 양성하는 이유는, 근대산업사회의 출현 이후 사회가 복잡다단해짐에 따라 국가전반에 획일적인 판단기준을 마련하고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하나이고, 민주주의의 발전에 따라 재판과정을 공개하고 ‘판결의 내역’인 판결문을 만천하에 공개함으로써, “나는 이러이러한 보편적인 이유에 근거해서 이러한 결론을 내렸다”라고 재판의 당사자와 일반 국민을 “설득”하기 위한 능력을 키우기 위함이 그 두 번째라고 생각하고 있다.

 

즉, 법률에 관한 전문지식과 논리구성능력은 어디까지나 실체적인 진실을 밝히고, 법적 안정성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정의에 보다 부합하는 판단을 하며, 타인에게 재판의 판단 과정을 공개하여 설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지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법률과 법 논리의 가상의 설계구조물 그 자체를 목적으로 착각하여, 일반 상식에 크게 어긋나는 법적 판단이 내려지더라도, 도리어 “그건 당신들이 법을 몰라서 그래”라는 답변이 돌아오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무엇이 본(本)이고 무엇이 말(末)이며, 무엇이 목적이고 무엇이 수단인지를 착각하고 있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된다. 이에 국민참여재판은, 일도양단식의 편의적인 법적판단과정을 통해 때로 사회 일반의 상식에 심히 어긋나는 재판의 결과를 일반의 상식과 정의 관념에 기초한 판단에 조금이나마 부합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과정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제도적 의의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러한 국민참여재판은 이른바 재판의 신속성, 효율성이라는 가치와는 상반되는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피고인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으며, 신체와 생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때로는 실제로 무죄인 사람이 유죄로 오판되는 용인되기 어려운 사례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형사재판에서 이러한 효율성의 가치가 민사재판 등의 여타재판에서와 같은 비중으로 다루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정된 검사와 판사의 인력과 시간을 고정된 요소로 가정할 경우에는, 이러한 국민참여재판을 통한 시간과 노력의 과다한 투입이 오히려 다른 일반의 형사재판에 대한 시간과 노력의 투입의 감소로 귀결될 수 있다는 점은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검사와 판사의 업무량이 과중하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사정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러한 점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에, 본인은 결론적으로 검사와 판사를 점진적으로 장기적으로는 대폭 증원하는 제도적 노력이 필요불가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 판사가 증원되는 속도 내지 정도에 비하여 사건이 증가하는 속도 내지 정도가 크고, 판사 1인당 담당사건의 수는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본안사건의 평균 처리기간 역시 점차 길어지고 있다. 또한 판사 1인당 업무 부담이 과중한 법원일수록, 해당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는 비율 역시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2006년 판사 현원인 1976명에서 2015년 판사 예정 현원인 3326명으로 증원하는 데에는 117억 원의 재정이 소요된다고 한다. 비록 117억 원의 금액이 결코 적은 금액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여기서 1350명가량 증원된 판사가 1년에 추가적으로 처리하는 수만 건의 사건의 수와, 이를 통하여 각 1개 사건에 추가적으로 투입되는 시간과 노력의 증가를 감안한다면 공적 관점은 말할 것도 없고 법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판사와 검사의 증원은 적어도 재정적으로는 ‘헐값’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판사와 검사 인력의 충분한 충원은 형사재판에서 국민참여재판이 보다 안정적이고 보편적인 제도로 정착되는 데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3. 구체적인 방청 후기 (간략한 소감)

 

결론적인 소감을 언급하자면, 책과 강의를 통해서만 배우고, 미국 드라마에서나 배우던 배심원 재판을 처음 직접 보게 된 감흥이 더해져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무척 인상 깊게 다가왔다. 상습절도범에 관한 재판으로서, 이미 수차례 절도범으로 복역한 전력이 있는 피고인이었고, 본 사건에서도 CCTV 등 여러 증거가 있고, 피고인 자신도 범행을 시인하고 있는 관계로 본 사건의 쟁점은 절도 그 자체라기보다는, 형량을 인정함에 있어 중요한 요소인 ‘상습성’의 여부였다. 약 1년 6개월 전에 이미 형 집행을 마치고 출소한 상태에서 다시 본 범행을 범한 것이라서, 이미 누범은 성립되어 있는 상태인데, 적어도 본 사건은 단 1회 70만원의 절도 범죄로 기소된 것이었고, 이전의 사건과는 범행의 시간의 간격, 범행의 방법이 상이하다는 점에서 본인은 상습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생각되었으나, 검사 측은 누범에 상습성까지 인정하여 6년을 구형하였다. 지나치게 편의적인 법적 판단에 기초한 구형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를테면 4억 5천만 원 어치 사기, 횡령, 배임 등의 여타 재산 범죄를 범했을 경우에는 최고형이 3년임에 반하여, 천 원짜리를 너 댓 번 훔쳐 상습절도로 인정되면 이 경우 6년까지 구형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일반의 건전한 정의관념 내지 상식에 부합하기 어려운 결론이기 때문이다.

  
한편 재판의 진행 과정에 있어서는, 비록, 증거에 관한 설명에 있어서 설명 과정이 지나치게 간략하고 분명하지 못하며, 매끄럽지 않게 설명되는 측면이 아쉽게 느껴졌으나, 대체적으로 소위 구두변론주의에 기초하여 법률문외한인 배심원을 고려하여 성의껏 변론이 이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배심원단이 있는 덕분인지, 검사가 피고인에게 재판받느라 수고하셨다는 발언을 하고, 판사가 피고인이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고 충분히 발언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느낌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형사소송법 강의 시간에도 들은 것이었지만, 피고인과 변호인 측과 대등한 당사자로서 탄핵의 과정을 이루어가는 검사 측이 판사와 동일한 법복을 입고 있다는 것은 이른바 규문주의의 뿌리 깊은 잔재의 상징으로 생각되었고 상당히 넌센스로 여겨졌다. 더욱이 선입견이나 예단 없이 백지 상태에서 검사와 변호인 측의 증거제시와 주장만을 바탕으로 심증을 형성하고 결론을 내려야 하는 배심원단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적어도 국민참여재판에 있어서는 검사가 변호인과 동일한 일반복장을 착용하도록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것이 타당하고 합리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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