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10-10-27   4730

[2010/10/18 국민참여재판 방청기] 배심원이 되어 법과 사법을 신뢰할 수 있다면


이 글은 2010년 10월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17호 법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을 함께 방청한 참가자의 방청기입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함께해요 국민참여재판‘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배심제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나누고자 합니다. 누구나 언제든지 배심원이 될 수 있는 ‘국민참여재판‘을 옆에서 지켜본 방청자들의 겸험을 통해 여러분도 함께 배심원단이 되는 간접체험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소중한 방청기를 써준 김현경 님께 감사드립니다.



김현경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제12기 인턴)



10월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417호 형사대법정에서 국민참여재판(2010고합1154호, 제24형사부 조한창(재판장), 김용희, 이준민)이 진행되었다. 필자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국민참여재판 함께 보기’ 프로그램을 통하여 본 재판을 방청하였다.


2010년 10월 1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 참여연대와 함께 방청한 참가자들(오른쪽 두번째가 필자)


‘멀고도 험한’ 법정 가는 길

공판은 417호 법정에서 오전 11시에 시작하지만, 오리엔테이션을 위하여 오전 9시 40분까지 422호 법정 앞에 모였다. 그러나 필자에게 ‘법정까지 가는 길’은 녹록치 않았다. 먼저, 법정으로 올라가기 위하여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는데 법원 직원 분께서 ‘혹시 카메라를 소지한 것 아니냐’고 물어보면서 가방을 보려고 하여 당황하였다. 당시에는 너무도 당황하여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였지만, 주권 시민으로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의심을 받았다는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뒤늦게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법원 구조가 다소 복잡하다는 것도 또 하나의 아쉬움이었다. 서울지방법원 서관에는 고등법원 법정과 지방법원 형사법정이 함께 있으며, 법정에 들어가는 입구도 여러 개 존재한다. 4층까지 올라갔는데도 422호실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 그제야 길을 잘못 들었음을 알게 되었다. 법원 구조도를 보니, 들어가는 길 자체가 달라서 2층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물론 미리 살피지 못한 필자의 부주의 탓이 크겠지만, 좀 더 잘 ‘안내’하는 시스템상의 개선이 있었으면 한다.

‘그림자 배심원’과 함께 한 오리엔테이션

422호에 도착하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팀장님께서 반겨주셨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도착할 때까지 국민참여재판과 오늘의 재판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국민참여재판은 공판에 앞서 배심원 선정 통보를 받은 약 50명을 출석하도록 하고, 재판에 따라 7~9명 가량의 배심원을 선정하는데, 그 동안에 우리는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갖게 된다. 오늘은 ‘그림자 배심원’을 대상으로, 423호 법정에서 법원 차원의 오리엔테이션을 실시한다고 하여, 우리도 여기에 함께하였다.

먼저 대법원에서 준비한 국민참여재판 안내 동영상을 시청하였고, 그 뒤로 서울중앙지방법원 공보담당 김상호 판사의 오늘의 재판 안내와 법원행정처 사무관 김춘호 판사의 주의사항 전달이 있었다. 그림자 배심원은 국민참여재판제도를 연구하고 국민에 홍보하기 위한 일종의 ‘모의 배심원’이지만, 실제 재판에 영향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대원칙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라는 말씀에서, 필자는 비록 그림자 배심원이 아닌 일반 방청객이기는 하지만 재판 진행 및 배심원단의 재판 참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또한 “배심원끼리 의견 미리 나누거나 메모 보여주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에는 접촉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에 대하여 “배심원들을 물리적 ․ 제도적으로 분리시키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은 시민으로서 지킬 양심이다.”라는 답변을 들으면서는, ‘국민참여재판은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참여와 개인의 양심이 가장 중요하며, 국민참여재판제도의 성공과 정착은 성숙한 시민의식에 달려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양심’

재판 방청을 위하여 417호 형사대법정으로 이동하였다. 필자는, 물론 재판 진행 내내 속기를 하면서 사실관계를 따라가며 집중하였지만, 되도록 재판부 및 검사와 변호사의 역할, 배심원의 태도, 일반 재판과의 차이점 등에 집중하여 모니터하는 자세를 견지하려고 노력하였다.


417호 법정 앞에 게시된 공판안내문



417호 법정 외부


대법정도 일반 법정과 구조는 동일하지만 규모가 훨씬 컸다. 참여재판 배심원석과 그 맞은편에 자리한 슬라이드, 그리고 공판 검사가 두 명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일반 재판을 방청할 때는 법복을 입지 않은 검사도 간혹 있었는데, 오늘은 재판부와 검사 모두 말끔한 법복 차림이었고 변호사들은 타이를 맨 정장을 하고 있었다. 또한, 일반 재판과는 다르게 장시간 공판이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한 것인지, 재판부 및 검사와 변호사, 배심원 모두에게 물이 제공되고, 심지어 피고인석에도 물과 종이컵이 놓여있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또한, 방청객의 편의를 고려하여 PDP 화면을 별도로 준비된 데에서 ‘참여’하는 재판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화면이 (방청객 입장에서 볼 때) 지나치게 오른쪽 끝으로 치우쳐 있고, 화면 크기도 다소 작고 높이도 낮아서, 왼쪽 분단이나 뒤편에 앉은 방청객은 다소 불편하였을 것이다. 필자는 오전공판 때는 오른쪽 분단 세 번째 줄에 앉았는데 앞 사람에게 화면이 가려서 다소 불편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오후공판 때는 왼쪽 분단에 앉았는데 방청객을 위한 PDP보다는 차라리 재판부와 배심원 등을 위한 슬라이드를 보는 것이 나았다.

‘참여’하는 재판

일반 재판은 한 법정에서 같은 시간대에 여러 개의 사건을 한꺼번에 진행하며, 이유가 있으면 다음 기일로 미루기도 하여 개정한 지 몇 분 되지도 않아서 끝나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국민참여재판은 한 가지 사건에만 집중하여 하루에 끝낸다는 점과 배심원은 물론 방청객들도 사실관계와 쟁점을 충분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달랐다.

검사와 변호사의 태도가 대단히 적극적인 편이었고, 대체로 ‘쉬운 말’을 사용하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일반 재판에서도 적극적으로 재판에 임하는 검사나 변호사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재판이 대부분 서류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인지, 아니면 국민참여재판에 비하여 재판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인지, 적극적으로 ‘입증’을 하고 ‘주장’을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가 않다.

대단히 적극적인 검사와 변호사

재판부도 ‘충분히’ 친절하였다. 일반 재판을 방청하다 보면, 재판부마다 그리고 개별 사건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저 판사에게는 재판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방청석에는 들리지도 않는 작은 목소리로 검사나 변호사와 ‘대화’하듯 재판을 진행하거나, 어려운 법률 용어를 줄줄 늘어놓거나, 피고인에게 언성을 높이거나, 증인에게 짜증스러운 태도를 보이며 진술을 중간에 끊거나, 지각을 하거나, (특히 합의부에서 배석판사들이) 꾸벅꾸벅 조는 모습 들은 실망 그 자체였다. 그런 점에서, 오늘 본 “검사님 죄송한데 사진을 좀 넘겨주실래요?”, “검사, 변호인 측, 더 없으면 오전 절차는 마칠까요?”, “(오전공판을 마치며 배심원들에게) 식사는 아마 저희 직원들이 안내 해드릴 겁니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마칩니다.” 하는 재판장의 말이, 오후 재판 속개는 2시로 예정된 되었는데도 2분이나 일찍 입정한 재판부의 모습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 텐데도) 필자는 대단히 놀랍고도 고마웠다. 4명의 증인들이 모두, “묻는 말에만 대답하라.”거나 “잘 듣고 질문의 취지를 파악해서 답하라.”는 등의 지적을 한 차례도 받지 않고 당당하고 편안하게 이야기했던 것도 ‘시민’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2분 일찍 입정한 재판부, 놀랍고 고마웠다

단 한 번의 방청으로 “국민참여재판에서는 검사와 변호사로부터 ‘적극성과 열정’을 볼 수 있고, 판사에게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하는 결론을 내린다면 그것은 지나친 일반화일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배심원 및 방청객)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제반 상황은 법정의 분위기나 재판 진행 방법 등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국민참여재판의 주목적이 우리나라 사법부와 법조인들의 태도 변화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수적 효과’일망정, 여기에는 분명 ‘법과 사법에서의 주권 행사’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국민참여재판의 특징이자 일반 재판과의 가장 큰 (절차 상의) 차이점은 배심원들의 평의와 평결인데, 검사와 변호사의 진술 태도만으로도 배심원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양측은 PPT 화면을 준비하여 이를 슬라이드로 보여주었는데, 통상적으로 재판 방청을 하면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라 흥미로웠다. 일반 재판에서는 주로 집중심리법정을 중심으로 프로젝터나 PPT 화면을 사용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또한, 검사와 변호사가 진술시 (제자리에 서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운데로 나와서 ‘무선마이크’를 사용하여 재판부와 배심원을 함께 바라보고 ‘설득하듯이’ 말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 과정에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검사의 최후진술 도입부 중)”와 같이 (‘사실’과 ‘논리’아 아닌) ‘감성’을 자극하는 언어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심지어 변호사의 경우에는 최후진술 시에 발언대를 배심원 쪽으로 완전히 돌려놓고 배심원단을 바라보며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였으며 진술 내내 ‘호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검사와 변호사의 달라진 진술 태도

법정 안에서의 ‘역할 분담’도 돋보였는데, 법정경위는 모두절차시 피고인 옆에 다가가서 그가 일어설 때 마이크를 세워주고 자리에 앉는 것을 돕고, 검사나 변호사가 증거(서류나 사진)를 실물화상기로 보여줄 때 화면 확대를 도맡았다. 참여사무관은 검사가 증거를 제시하는 과정에서 증인 진술에 대한 부분을 그냥 넘기려고 하자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참여사무관이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재판 도중에 말을 하는 모습은 이제까지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또한, 합의부 재판에서 배석판사들은 일반적으로 가만히 앉아있거나 필기를 할 뿐 ‘눈에 띄는’ 역할이 없는 편인데, 오늘 재판에서는 검사나 변호사가 진술할 때 PPT 화면을 넘겨주거나(좌배석) 증인에게 한 차례 질문(우배석)하였다. 특히, 우배석 판사가 질문하기 전까지는 재판부 3인 가운데 재판장의 마이크만 켜져(빨갛게 불이 들어와) 있었던 데다가 그가 (재판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질문을 했다는 점에서 더 놀랐다. 이를 일반 재판과 구별되는 국민참여재판의 고유한 특징으로 꼽기는 어렵겠지만, 국민참여재판 방청과 더불어 이런 ‘흔하지 않은’ 모습까지 보게 되어 괜스레 뿌듯했다.

그러나 실물화상기의 해상도(선명도)가 좋지 않아서 배율을 조절하더라도 슬라이드 화면 상에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는 앞서 언급하였던 방청석 PDP 화면과 더불어 개선되어야 할 ‘기계적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검사나 변호사가 무선마이크나 실물화상기 사용에 서툴러서 재판 진행에 (잠시나마) 방해가 되는 면이 있었고, PPT 화면을 만들거나 활용하는 능력에도 부족함이 적지 않아 보였다. 변호사의 PPT를 보면서는 (검사의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잡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검사의 PPT는 탬플릿이나 전체적인 구성은 좋았으나 한 슬라이드에 너무 많은 정보를 담은 탓에 가독성이 떨어지고 글씨 크기도 너무 작아서 알아보기 힘든 면이 있었다. 필자는 교정시력이 0.7정도 되는데, 앞에서 셋째 줄 이후에서는 방청석 PDP로 구현된 검사측 PPT 화면을 분명히 알아볼 수가 없었다. (국민참여재판이나 집중심리재판에 대비한) 국가 차원의 법조인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질문하는 우배석 판사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그러나 사법만은 민주주의의 사각지대로서, 우리는 판사나 검사를 선거하지 않을뿐더러 탄핵(소환)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국민참여재판을 통하여 국민이 재판과정에 관여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뜻 깊은 일이다. 물론, 아직까지 ‘일반시민이 얼마나 잘 할 수 있을까?’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오늘도 만약에 배심원이 없었다면, 재판장이 “첫째, 이 법정에 나와 있는 증거만으로 판단해야 한다. 둘째, 피고인은 무죄로 추정되며 죄의 입증은 검사가 한다. 셋째, 증거를 보고 통상적인 경험칙에 따라 판단하면 되므로 부담을 가질 필요 없다.”는 세 가지 원칙을 수시로 언급한다거나 법률 용어를 설명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며, 재판 시간도 더 짧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제도를 정착시키고 학교에서 법과 사법에 대한 (실질적인) 교육을 실시하는 등 모든 국민이 배심원으로서의 기본 소양을 가질 수 있도록 하여 개선할 문제일 뿐이다. 오히려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으로서 단 하루만 참여하면 ‘대한민국의 그 어느 학교에서도 하지 않는(어쩌면 할 수 없는) 법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법에 대한 불신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법과 사법을 ‘신뢰’할 수 있다면, 재판의 당사자로서 비록 패소하더라도 ‘승복의 정도’ 면에서 (법과 사법을 신뢰할 수 없는 때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배심원으로서 단 하루가 법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는 계기가 된다면

다만, ‘하루에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는’ 것은 ‘집중적으로’ 심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기일을 연기하여 추가로 증거를 제시하거나 주장을 강화하는 등의 ‘다른 가능성’이 적지 않게 차단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러 날에 걸쳐서 공판을 진행할 경우에는 기일과 기일 사이에 심증이 끼어들기 때문에 결국 ‘서류 중심’의 재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고민과 연구를 거듭한다면 적절한 해결책이 있지 않겠는가? 여기에, 하루 종일 앉아있어야 하는 데서 오는 집중력 부담의 문제, 그리고 오후시간의 중요성(증인신문 등 중요한 절차가 들어있는 탓에 오후공판이 오전공판에 비해 더 중요하며, 배심원들은 평의 및 평결에도 참여해야 한다)은 ‘덤’이다.



국민참여재판을 함께 방청한 공감 인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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