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9-06-28   2453

[09/06/17 국민참여재판 방청기]“일반재판이었으면 1~2시간에 끝날 사건”



 


이 글은 2009년 6월 17일 서울중앙지법 대법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의 방청기입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참여연대와 함께 국민참여재판 방청하기’ 프로그램은 운영하며, 배심제를 배우고 (간접)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나누고 있습니다.
6월 17일 서울중앙지법 국민참여재판 함께 방청하기에는 15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하였습니다.


 


박근용(참여연대 사법감시팀장)


“왜 비슷한 질문 하고 또 하고 그러는지 대체 모르겠어요.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네, 참여재판이 아니라 보통 재판이었으면, 1~2시간이면 끝났을 겁니다”


6월 17일, 서울중앙지법 대법정에서는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이날 재판에서 다룬 사건은 피고인이 평소 친분이 있던 사이였던 피해자의 머리와 가슴부분을 공사장에서 신는 단단한 안전화를 실은 발로 심하게 폭행하여 매우 심각한 상해를 입혔다는 혐의로 살인미수죄로 기소된 사건이다.


앞의 말들은 배심원들의 평의결과를 기다리던 중, 방청객으로 왔던 한 시민과 재판에 참여한 검사 중 한 명이 나눈 대화내용이다.
오후 6시를 조금 넘겨 배심원들만의 평의가 시작되어, 나를 비롯해 참여연대의 ‘국민참여재판 함께 방청하기’(시민방청)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과 저녁식사를 한 뒤, 법정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배심원 평결이 대략 8시 즈음에는 나오겠지 하면 기다리던 중, 우리처럼 배심원들의 평결을 기다리던 검사가 방청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인지 법정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증인석에서 바라본 배심원석그 검사는 나를 포함한 10여명의 방청객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그 중 한 40대 여성 방청객이 그날 증인이었던 피고인과 피해자에게 검사와 변호인이 비슷한 질문을 여러 차례 한 점에 대해 조금 불만스럽다고 했다. 검사는 마치 기다리던 의견이 나온 것처럼 얼굴이 환해지면서, 자기도 그게 좀 그렇다면서, 만약 배심원 재판이 아니라면 1~2시간이면 이번 사건같은 재판은 끝났을 것이라고 했다.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재판이라면서 불만스럽다는 내색을 드러내보였다.


증인신문에서 했던 말을 묻고, 또 묻는구나 하는 것은 나와 함께 법정을 찾았던 시민방청프로그램 참여자들 사이에서도 나왔던 이야기다. 내가 보기에도 피해자도 그렇고, 피고인도 그렇고 모두 약간은 횡설수설하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나름 확고하게 답변하는 부분도 있지만, 물었던 것을 또 물어보면, 증인들의 답변이 조금씩 달라졌다. 앞에서 했던 답변과 조금씩 모순되는 답변을 하는 경우도 있고 좀 더 구체적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검사나 변호인이 전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검사나 변호인도 조금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재판장인 판사가 추가질문을 하기도 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앞서 했던 질문, 왜 또 하냐며 괴롭다는 투로 답변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반복적인 질문, 그리고 매번 조금씩 강조점이 달라지거나 미세한 내용이 달라지는 답변. 이것은 대체 범행당시라고 하는 그 날 그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머릿속에 그려보는데 혼란함도 주지만 무엇이 진실일지 조금씩 가르쳐주었다.


나는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진짜 중요하다고 느꼈다.
이런 과정이야말로 ‘살아있는 재판’, ‘생생한 재판’을 가능하게 한다. 똑같은 상황에 대해 이런 식, 저런 식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질문해보고, 또 시간간격을 두고 질문을 해보면, 사건 당시의 상황을 최대한 자세하고 객관적으로 재구성해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재판이라는 것이 우선 문제가 된 과거 그 시점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지금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억과 증거물로 재구성하는 것 아닌가. 그러려면 사람들의 기억을 최대한 많이 꺼내게 하는 일은 필수다.


일반 재판의 경우에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주장은 서류에 대부분 적혀서 법정에 제출된다. 하지만 서류에 적히는 순간, 즉 생각과 주장이 말이 아닌 글자로 적히는 순간, 그 생생함은 다 사라져버린다. 피고인과 피해자의 성격에 따른 증언의 생생함은 표준어같은 또는 밋밋한 잉크자국을 통해 알 수 없다. 난 그런 식으로 말한게 아니다, 내 말의 뜻은 그게 아니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증인이 나오는 경우에도 일반 재판은 별반 다르지 않다. 과거보다 서류중심의 재판을 벗어나 재판정에서의 공방이 중요하다는 공판중심주의, 구술변론주의가 강화된다고 하지만,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날 재판은 검사도 변호인도, 판사도 쟁점이 별로 많지 않은 사건이라 보았다. 피고인도 피해자를 때렸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다만 폭행당시의 상황을 잘 기억하지 않을 뿐이고, 자신이 죽일 마음을 가진 적은 없기 때문에 살인미수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검사는 이 사건같은 재판은 보통이면 1~2시간이면 끝난다고 말했다(사실 난 이런 사건의 경우에도 1시간씩 열리는 짧은 공판이 2~3번은 열린 후에야 판결이 선고되지 않을까 상상했는데, 수많은 사건을 다뤄본 그 검사는 1~2시간에 끝이라고 해서 매우 놀랬다).


그러나 이 날 재판에서 피해자, 피고인에 대한 검사와 변호인의 질문(신문) 시간만해도 약 2시간 가량 되었다. 다른 증인들도 2명 있었기 때문에 다른 것 다 빼고 증인신문만하더라도 3시간은 더 걸렸다. 그런데 똑같은 사건을 두고 일반 재판이었으면, 증인신문을 포함해서 재판이 1~2시간이면 다 끝났다면 그게 제대로 된 재판일까. 대체 증인들로부터 무엇을 말하게 하고 무엇을 들을 수 있었을까.


검사는 시간이 많이 걸린 이유중의 하나로, 웬만큼 아는 검사와 변호인, 판사뿐만 아니라 아무 것도 모르는 시민들이 배심원으로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걸릴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한편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정말 배심원들만이 그 긴 시간의 증인신문을 들을 필요가 있었을까? 검사와 변호인, 판사는 생생한 그 증언, 다소 모순되기까지는 그 증언들을 듣지 않아도 될까? 1명의 증인이 신문 시작단계에 했던 말과 중간 단계에 했던 말, 그리고 마무리 단계의 비슷한 질문에 대한 말이,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른 그것을 모르고 그냥 넘어가도 될까?


일반 재판에서도 그런 것들은 알아야겠지만, 웬만큼 서류에 다 적혀있다고 생각하고, 또 전문가들끼리 다 아는데 하면서 대충 넘어가는 모양이다. 배심원이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만큼 증인신문에 공을 들이지 않는다. 배심원들에게 나쁜 이미지를 줄 것 같아 증인들을 윽박지르지 못하고 최대한 친절하게 물어보고 답변을 기다리는 것과는 달리, 일반 재판에서는 증인들의 말을 가로막고 그만 말하라고 하는 경우조차 있다(나도 그런 증인신문을 당한 경험이 한 차례 있었다. 정말 그 변호인의 신문태도는 최악이었다). 그러다보니 예상치 못한 증인들의 답변이나 좀 더 생생한 증언이 나올 가능성은 줄어든다.


바로 이 점에서 배심원이 참여하는 재판이 빛을 발한다고 본다. 6월 17일 국민참여재판 방청은 재판다운 재판을 본 것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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