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리포트 논단] “관청이 있는 곳이라면 변호사 사무실이 있어야지”

황승흠(국민대 법과대학 부교수)

법률서비스가 공공재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공공재의 성격을 갖는 서비스의 전달체계를 반드시 공공영역에서 담당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사적 영역에서도 얼마든지 공공재의 성격을 갖는 서비스를 전달할 수 있다. 법률서비스가 그러한 예의 하나이다.

법률서비스는 기본적으로 공무원이 아닌 사적 영역에 속하는 변호사에 의해 공급되고 있다. 변호사를 공무원으로 하지 않고 사업자로 한 것은 여러 가지 역사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변호사를 공무원으로 할 것인가, 사업자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 한 번도 진지한 논의를 해 보지 못했다. 다른 나라에서 그렇게 하니까 외래의 제도인 변호사제도를 받아들이면서 당연히 사업자로 보았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국민들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은 이렇다.

법률서비스는 공공재인데, 그래서 관청이 있는 정도라면,― 면사무소는 너무 작으니 군청 정도라고 해 두자. ― 당연히 변호사사무실이 있어서 필요한 것도 물어보고 억울한 일이 있으면 사건도 맡겨야 하지 않겠어?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변호사는 사업자이다.

사업자는 돈이 벌리는 데에서만 ‘장사’를 한다. 그래서 사업자단체인 변호사협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건도 없는 곳에 변호사보고 개업하라고 하는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이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문제는 변호사가 그냥 보통의 사업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보통의 사업자는 진입장벽이 없는 경쟁시장에서 사업을 한다. 사실 대부분의 사업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자본의 여력만 있으면 마음먹으면 시작 할 수 있다.

그런데 변호사라는 사업자는 그것이 그렇게 되지 않는다. 시험이라는 엄청난 관문을 넘어야 한다. 요즘에 법학전문대학원이라는 것이 생겼다지만 이거 아주 돈이 많이 들어 ‘돈스쿨’이라 불린다. 하지만 이 험한 장벽을 넘으면 장밋빛 인생이 준비된다. 왜냐하면 변호사가 아닌 사람이 댓가를 받고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법에서 금지하고 있으니까.

변호사가 되기는 어렵지만 일단 되고나면 독점적 지위를 법에서 보장받는다. 이렇게 보면 참 법이라는 것이 원래 변호사를 위해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업자라서 자유가 보장되는데, 마치 공무원 같은 대접을 받으니까 말이다.

우리의 생각은 이렇다.

변호사에게 법률서비스의 독점적 공급권을 법적으로 보장했다면 그만한 법적 의무도 함께 가져가야 어느 정도 형평이 맞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너무 이상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논의를 출발해야 답이 보인다.

“사건도 없는 곳에 사업자인 변호사보고 개업하라는 것이 지나치게 가혹한 것”이 현실이다. 이 때 변호사는 보통의 사업자이다. 그래서 어느 아무개가 마음을 먹고 변호사사무실이 없는 어떤 군에 가서 변호사사무실을 열었다. 문제는 이 아무개가 변호사 자격증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아무개는 처벌을 받았다. 이때의 변호사는 공무원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참으로 편리한 이중적인 지위의 변호사에 대한 인식이 문제의 출발점이다.

변호사가 사업자인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편적인 현상의 하나이다. 또한 변호사가 보통의 사업자로 취급되지 않고, 법률서비스의 독점적 공급권이 부여되는 것도 보편적인 현상이다.

또한 변호사가 보통의 사업자와 달리 공공적인 성격을 가지려고 하는 것도 보편적인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앞의 두 가지만 이야기되고 마지막 세 번째는 이야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누가 봐도 변호사는 공무원과 같은 것인데, 사실은 공무원이 아니니까 공무원이 하는 것도 비슷하게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는 세 번째 이야기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관청이 있는 곳이라면 당연히 변호사사무실이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부정할 수는 없다. 사람 사는 곳에 정부가 있고, 법이 있다면, 당연히 관청도 있고 변호사사무실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원의 지원이 있는데 변호사사무실이 없는 곳도 있다. 왜 이러한 논의가 방치되고 있는가?

이는 변호사의 성격에 대한 본질적인 인식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다. 바로 변호사가 공무원은 아니지만 공공재를 공급한다는 것. 그래서 비록 사업자이지만 공무원이 함직한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호사를 이렇게 하는 것은 크게 보아 세 가지의 방안이 있다.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이른바 ‘무변촌’에 개업하는 변호사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이다.

무변촌이 된 것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적어도 사건이 ‘풍성’하지 못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일정한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변호사단체에 실망스러운 것은 변호사의 사업자로서 성격만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일본의 변호사단체는, 이들도 사업자단체임에 분명한데, 무변촌에 개업할 변호사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기 위해서 특별회비를 거두었다.

왜 우리 변호사는 그러하지 못하는가? 우리 변호사는 일본의 변호사보다 더 가난하기 때문인가?

다음으로는 정부가 예산지원을 해야 한다.

법률구조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가동시켜 법률서비스의 공공재적 성격을 드러내야 한다. 무변촌의 변호사 개업에 대한 경제적 지원의 일부를 정부예산으로 하자는 것이다. 아니면 이 변호사를 정부소속의 변호사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무변촌에 개업한 변호사는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참 좋은 모양이지 않는가?

그런데 정부의 법률구조 예산이라는 것이 이른바 선진국의 20분의 1 수준이다. 변호사만을 탓하기도 쉽지도 않다. 변호사단체가 그러한 생각을 한 것은 정부의 방치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제도적 방안을 생각해 보자.

변호사에게 법률서비스의 독점적 공급권을 보장했으니 제도적으로 사회적 댓가를 받자는 것이다. 변호사자격 중에 지역의 제한이 있는 자격을 만들면 어떨까?

옛 시절에 일정한 지역, ―필자가 자란 곳과 같은 100호 정도의 작은 시골―에서만 개업할 수 있는 ‘한지의사’라는 제도가 있었다. 변호사에게 한지변호사라는 별도의 라이센스를 만드는 것을 불가능한가? 형평성이 문제라면 5~10년 정도의 일정기간이 지나면 다른 지역에 개업할 수 있도록 하면 될 것이다.

지난해 법학전문대학원을 개업하면서 균형발전을 이유로 지방에 많은 정원을 배정하였다. 그 때 이 논의가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1차 합격생에 대한 소문을 들으니 지역에서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그 지역에 남아서 변호사개업을 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하는 우려가 들었다. 좋은 기회를 놓친 셈이지만 지금 다시 논의를 시작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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