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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21.03.09
  • 605

'헌법과 법치' 검찰 전유물이 아니다

 

하태훈 참여연대 공동대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수사권을 지키려고 정치적 수사(修辭)만 내뱉은 검찰총장의 사직서였다. 반성은 없고 반발만 드러낸 사퇴의 변이었다. 과연 검찰이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을 파괴해 온 숱한 과오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 피해로 고통받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어렵게 쌓아올린 정의와 상식을 무너뜨린 건 오·남용한 검찰권 아니었던가. 검찰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해왔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낯뜨거운 퇴임사다. 군부독재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국정농단 사태를 기억해 보자. 권력의 사유화로 파괴된 민주주의와 법치를 살려낼 기회를 걷어찬 검찰이었다. 미적대다 마지못해 수사하는 시늉만 내다가, 결국 언론과 특별검사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보수정권에서 그러했다. 비굴하다 싶을 정도로 엎드렸다. 그들의 무소불위를 알아주는 정권이었다. 그러나 그들 눈에 만만하게 보이는 정권, 자신들을 인정하지 않는 정권에서만 정의의 사도인 양 투사형으로 돌변했다. 여전히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런 검찰의 수장이었으므로 사과와 반성을 앞세워야 했다. 하지만 그도 막강한 검찰 기득권이 축소될 위기 때마다 직을 던졌던 전직 검찰총장과 다르지 않았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에 현혹되어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켰지만, 검찰개혁에 저항하고 검찰조직을 수호하려는 또 한 명의 중도 사퇴 검찰총장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다른 전직 검찰총장 이상일 가능성이 있어서 문제다. 어느 순간부터 검찰총장의 직을 후일 도모를 위한 자리로 여겼다. 포스트 총장을 염두에 둔 것이다. 물론 그가 어떻게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정치입문이라면 그동안의 언행은 기획되고 계산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길로 들어서게 된다면 그 자체가 헌법정신을 파괴하는 것이고 법치를 말살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오래전부터 야권의 대권후보로 분류되어 조사대상이 되었지만,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빼라거나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단호히 말한 적이 없다. 현직 검찰총장인데도 말이다. 오히려 정권에 맞서는 투사 이미지를 만들어갔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현 정부 인사에 대한 표적 수사는 보수정권의 정치검사와 다를 바 없었다. 다르다면 정권의 입맛이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로 포장하는 것이었다. 권력형 비리도 아니었지만, 거악 척결로 둔갑시킨 정치적 수사였다. 검찰개혁에 저항하고 조직수호를 위한 수사, 이것이야말로 자신들의 이익을 꾀하기 위한 정치검사의 전형이었다.

 

검찰총장으로서, 그리고 공직자로서 정치적 중립위반의 선을 넘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반문이라는 공통분모 아래 그를 반기는 보수 야권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검찰총장 출신으로서 치욕스러운 역사를 쓰는 것이다. 그가 입버릇처럼 떠올린 헌법과 법치를 파괴한 세력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검찰권력을 사유화하고 정치화한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부역자들이다. 헌법을 무시하고 법치를 파괴하는 데 앞장서도록 검찰을 조종했던 자들이다. 그러니 정치를 해서도 안 되지만 그들에게 붙어 정치한다면 자가당착이다.

 

그는 검찰이 거악 척결의 유일한 기관인 양 호도하면서 떠났다. ‘부패완판’, 검찰이 수사하지 않으면 부패가 완전히 판친다는 신조어도 남겼다. 언론에 등장하고 언론을 다루는 솜씨가 여느 정치인 못지않다. 그의 발언에 어김없이 ‘국민’이 등장하는 것도 그렇다. 검찰개혁을 추진하는 정부·여당을 헌법 파괴자이자 법치 말살자로 정의한 프레임 짜기도 기막히다. 새로 출범한 공수처와 논의 중인 중대범죄수사처가 부정부패에 눈감고 손 놓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지만, 그렇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검사의 신분은 헌법에 보장된 것도 아니고 검찰청이 헌법에 명시된 것도 아니다. 행정부의 일원인 검찰은 헌법기관인 법원과는 전혀 다르다. 헌법과 법치가 검찰의 전유물이 아니다. 새로운 수사기구를 만드는 것이나 공소기관을 설치하는 것이 헌법에 반하는 것도 아니다. 수사를 검사의 임무로 규정한 검찰청법을 바꾸면 된다. 수사·기소권 완전 분리,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 박탈, 그리고 새로운 수사기구 설치가 민주주의의 퇴보이자 헌법정신의 파괴라는 주장은 법률가의 언어가 아니라 아이의 떼쓰기로 들린다. 검찰청의 검사가 수사해야만 법치가 실현되고 민주주의가 수호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자 오만이고 선민의식일 뿐이다.

 

*이 칼럼은 경향신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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