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칼럼(jw) 2004-09-09   1111

<안국동窓> 민주주의인가, 국가보안법인가?

길게 말할 것도 없다. 국가보안법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그러므로 이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라면 국가보안법은 당연히 폐지되어야 한다.

잘 알다시피 국가보안법은 제정 당시부터 의원들의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실상은 이승만 독재정권이 야당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을 억압하기 위해 만든 법이 바로 국가보안법인 것이다. 발췌개헌과 4사5입개헌으로 역사에 그 더러운 이름을 남긴 이승만 독재정권은 국가보안법을 내세우고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서 정치적 반대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처음에는 김두한, 뒤에는 이정재 등의 깡패들을 동원해서 테러와 살인의 공포정치를 펼치고자 했다.

국가보안법을 가장 악랄하게 악용한 것은 누구인가? 다름아닌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아버지인 다카키 마사오이다. 그는 일제의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그 포상으로 일제의 육군사관학교를 정식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런 뒤에 만주의 일제 관동군에 배치되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독립군들과 최일선에서 싸웠다. 분명히 다카키 마사오는 민족의 반역자이다. 이런 자가 대한민국 군을 장악할 수 있었다는 것, 그 결과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 근대사의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다카키 마사오는 두가지 방법을 통해 종신총통으로 군림하고자 했다. 첫째, 가혹한 자연파괴와 노동착취로 경제성장을 이루어 이 나라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한 지도자로 비치고자 했다. 둘째,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서 야당은 물론이고 모든 국민을 감시하고 억압하고 통제하려고 했다. 그 법적 근거로 가장 악랄하게 활용된 것이 바로 국가보안법이었다.

국가보안법의 문제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법의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그 법을 이용한 방식이다. 먼저 법의 내용에서 핵심은 결국 ‘국가의 적’을 규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듯 중차대한 내용의 가장 큰 특징으로 지적되는 것이 자의성과 포괄성이다. 이런 점에서 국가보안법은 법이 아니다. 그것은 법의 탈을 쓴 독재의 벌거벗은 지배도구이다. 그것은 자의적이고 포괄적인 조항으로 수많은 멀쩡한 시민을 ‘국가의 적’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진정한 ‘국가의 적’은 국가보안법으로 단죄받은 멀쩡한 시민이 아니라 그 법을 이용한 독재세력이고, 나아가 그 법 자체이다.

다음에 독재세력은 국가보안법을 어떻게 이용했는가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많은 예를 들 것도 없다. 서울대 법대 교수였던 최종길 교수의 참혹한 죽음은 국가보안법이 독재세력의 정권보안법이었다는 사실을 너무나 생생하게 보여준다. 1973년에 박정희 독재정권은 최종길 교수가 간첩혐의로 중앙정보부의 조사를 받던 중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중앙정보부의 발표는 거짓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02년 5월 27일 의문사규명위원회는 최종길 교수가 중앙정보부에서 살해되었을 것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얼마 뒤 이러한 발표는 사실로 확인되었다. 중앙정보부 수사관이 최종길 교수를 7층에서 아래로 던져 죽였던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서울대 법대 교수가 이렇듯 무참하게 살해되었다.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얼마나 악랄하고 무참한 지배체제였는가를 보여주는 생생한 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이 이처럼 악랄하고 무참한 박정희 유신독재를 지탱하는 법적 기반이었던 것이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남북으로 갈려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발표했다. 어쩌면 이렇게 현실의 변화에 모르쇠로 일관할 수 있을까?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시계는 유신독재 시대를 향해 거꾸로 가고 있는가? 남북이 유엔에 동시가입한 것이 13년 전인 1991년 9월 18일이다. 그리고 금강산 관광은 물론이고 남북경제협력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 이런 시대적 변화와 함께 이미 오래 전에 국가보안법은 최소한의 실효성마저 지니지 못하게 되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이미 죽은 국가보안법을 화장해서 깨끗이 처리하라는 국민의 여망에는 귀를 막고 어떻게든 되살려내겠다며 용을 쓰고 있다. 그 힘을 정말이지 민족과 나라를 위해 쓰기를 바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표는 ‘국가보안법을 유지하는 것은 한나라당의 존재이유’라며 국가보안법을 지킬 뜻을 강하게 밝히고 나섰다. 유신독재의 가장 중요한 법적 기반이었으며, 따라서 이 나라를 참담한 ‘겨울공화국’으로 만들었던 국가보안법을 지키는 것이 한나라당의 존재이유라고? 과연 다카키 마사오의 딸다운 발언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래도 박근혜 대표의 가슴 속에서는 한나라당을 이끌고 저 유신독재 시대로 돌아가는 꿈이 새록새록 자라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되돌릴 수 없다. 한나라당은 다카키 마사오의 암울한 유신독재에 대한 망상을 깨끗이 버리고 민주주의의 밝은 거리로 나서도록 해야 한다. 국가보안법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국가보안법의 유지를 외치며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민주주의인가, 국가보안법인가?

홍성태 (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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