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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감시센터  l  법치국가 파수꾼, 법원 검찰 변호사를 바로세웁니다

  • 칼럼
  • 2005.08.08
  • 1007
오늘날 우리는 무서운 감시사회에서 살고 있다. 발달된 정보기술을 이용해서 정부는 말 그대로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가장 앞서 있는 것은 바로 미국 정부이다. 2차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앵글로색슨계가 지배하는 국가의 정부와 함께 전세계의 모든 전자통신을 대상으로 한 도청망을 설치하고 운영하기 시작했다. ‘에셜론’(사다리)이라는 암호명을 가지고 있는 이 도청망의 실체는 영국의 한 언론인의 노력으로 1980년대 말에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도청망의 운영을 지휘하는 것은 미국의 ‘국가안보국’(NSA)인데, 1960년대 중반에 설립된 이 조직의 실체는 1990년대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밝혀졌다. 미국에서 'X파일'과 같은 드라마나 '컨스피러시'와 같은 영화가 만들어진 데에는 이런 어두운 사실들이 자리잡고 있다.

도청능력과 실적에서 미국 정부가 가장 앞서 있기는 하지만 한국 정부도 결코 만만치 않다. 물론 미국 정부가 청와대를 도청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 정부가 백악관을 도청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민을 대상으로 한 도청에서는 한국 정부도 대단한 능력과 실적을 갖고 있다. 한 기자의 노력으로 안기부의 불법도청 테이프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면서 이런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 정부가 조직적으로 불법도청을 시작한 것은 박정희 정권 때부터였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는 불법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 사회를 엄혹한 감시사회로 만들었다. 최고의 심복부하였던 김종필을 시켜서 중앙정보부를 만들고, 그곳에서는 사실상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불법도청을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손에 넣은 엄청난 정보들을 바탕으로 박정희는 ‘총통’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감시와 억압을 강화했어도 박정희는 저항을 완전히 억누를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나라의 미래를 근심한 양심적인 부하에 의해 최후를 맞았다. 이로써 마침내 민주화의 꿈이 실현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전두환은 그의 스승 박정희보다 더욱 무자비하고 악랄한 방식으로 권력을 찬탈했다. 민주화의 꿈은 잔인하게 짓밟히고 말았다. 중앙정보부는 국가안전기획부로 이름을 바꿔서 더욱 삼엄한 감시활동을 펼쳤다. 전두환의 쿠데타 동지인 노태우가 권력을 잡고 있을 때까지 이런 상황은 사실 당연한 것이었다. 국민을 학살하고 잡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보기관의 불법감시활동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민주화는 단순히 정권의 평화적 교체에 그치지 않고 이런 불법감시활동의 종식으로 이어졌어야 했다. 그러나 안기부의 불법도청 테이프는 김영삼 정권 이래의 민주화시대에도 정보기관의 불법도청이 계속되었다는 것을 밝혀주었다. 참으로 놀랍고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 감시사회의 실태가 확인되면서 모든 논의가 이 문제로 쏠리는 것은 그 자체로 큰 문제를 안고 있다. 민주화의 진척이라는 점에서나,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점에서나 감시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삼성 X파일’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안기부의 불법도청 테이프는 분명히 불법자료이지만, 이 나라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핵심자료이기도 하다. 현재 그 내용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삼성재벌의 권력장악계획이다. 홍석현과 이학수가 편안하게 나눈 대화의 내용을 보노라면 분노하게 될 뿐만 아니라 소름이 돋기도 한다. 홍석현과 이학수는 이건희의 지시를 받아 이회창에게 100억원대의 불법자금을 제공했고, 김대중에게도 보험금조로 수십억원의 불법자금을 제공했다. 그들은 노동자와 호남에게 기대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말을 나누고, 김대중을 ‘늙은이’로 부르기도 했다. 삼성재벌은 막대한 돈을 써서 엄청난 인맥을 만들고, 이 돈과 인맥을 최대한 활용해서 권력을 창출하고 장악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 X파일’은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상호 기자의 의지로 독재정권이 설립한 정보기관의 비도덕성과 정경유착으로 세를 불려온 삼성재벌의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었다. 삼성재벌은 단순한 정경유착의 차원을 넘어서 스스로 권력장악의 주체가 되고자 한다. 삼성재벌이 저지른 불법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삼성재벌은 권력장악의 주체가 되어 온갖 불법을 합법으로 바꾸게 될 것이다.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을 보면, 이런 우려가 이미 상당 정도로 현실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재정경제부는 부칙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삼성재벌에게 유리한 금산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이에 대해 금융감독위원회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재정경제부가 사전에 아무런 협의도 없이 부칙을 삽입한 개정안을 국무회의에 상정했다고 밝혔다. 이것은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 등의 감독기구 관료들이 삼성의 주요 인적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삼성재벌이 이미 정부의 중요 부분을 장악하고 불법을 합법으로 바꾸고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정보사회의 문제에 맞서 싸우는 연구자들과 운동가들은 정보기술을 활용한 감시사회의 강화를 해결하기 위해 권력의 감시를 직접적으로 약화하는 동시에 권력에 대한 시민의 역감시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인터넷을 이용해서 우리는 권력의 일거수일투족을 24시간 역감시할 수 있다. 삼성재벌의 불법행위나 권력장악계획과 같은 재벌의 무서운 횡행을 막고 민주주의의 심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런 역감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수천만명의 눈과 귀가 검찰을 지켜보고 있다. 잘 구축된 초고속통신망 덕택에 충분한 정도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정도의 역감시가 이 나라에서는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검찰은 이 사실을 진실로 유념해서 더 이상 ‘삼성 검찰’이라는 오명을 듣지 않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삼성 X파일’ 사건에 관한 엄정하고 조속한 수사를 다시금 촉구한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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