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2002-05-07   2446

[16호] 사법부 구성의 민주화와 관련된 문제

올 초 민주화운동관련 전력(前歷)을 이유로 예비판사 임용을 거부당한 정지석 변호사가 대법원의 처분에 항의하는 글을 보내왔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와 사법감시센터는 이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바 있으며, 헌법재판소는 각하 결정을 내렸다.-<편집자 주>

대법원은 2000년 2월 13일 정례 법관인사 발표와 함께 신규 예비판사 107명의 임용을 발표했습니다. 대법원이 내부적으로 정한 성적기준을 넘어서는 신청자 110명(전체 신청자는 111명) 중 3명이 탈락되었는데, 3명 모두 과거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실형 또는 집행유예의 전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예비판사의 임용은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수료성적 이외에 당사자의 경력, 연령, 직무수행능력, 인품, 성격, 건강 등 여러 사정을 종합 고려하여 결정"하였을 뿐 과거의 전력만을 문제삼은 것은 아니라고 답변하였습니다. 저는 이번 임용신청 과정에서 주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심지어는 법조인들로부터 한결같이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직도 그런 이유로 임용을 하지 않는 곳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런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판사 안되면 변호사 하면 되지 뭘 그러느냐?"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이 문제는 저를 비롯한 몇몇 사람이 판사가 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단순히 거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공무담임권 보장과 관련된 문제이며, 나아가서는 사법부 구성의 민주화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임용거부처분의 절차적 위법성

행정절차법은 행정청이 처분을 할 때에는 문서로서 하여야 하며(24조), 당사자에게 그 근거와 이유를 제시하여야 하고(23조), 또한 당사자에게 그 처분에 관하여 행정심판을 제기할 수 있는지 여부, 기타 불복을 할 수 있는지 여부, 청구절차 및 청구기간 기타 필요한 사항을 알려야 한다(26조)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임용신청자 중 신청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대한 임용발표를 했을 뿐입니다. 저를 포함한 탈락자들에게는 단지 지난 1월 31일에 사법연수원 지도교수를 통하여 임용이 어려울 것이라는 연락을 해왔을 뿐 처분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통지도 없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저는 2월 14일 대법원에 문서에 의한 처분을 촉구하는 신청서를 제출한 바 있으나, 대법원은 행정처분에 관한 행정절차법상 필요한 요건을 갖추지 않은 채 예의 그 "종합 고려하여……"라는 답변을 되풀이하였을 뿐입니다.

임용거부처분의 실체적 위법성

물론 저는 대법원으로부터 어떠한 공식적인 처분결과도 통보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임용거부처분의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비공식적으로 통보 받은 내용과 위의 대법원의 답변을 종합하여 그 이유를 추정할 수 있을 뿐입니다.

대법원이 예비판사의 임용기준이라고 밝힌 내용은 "경력, 연령, 직무수행능력, 인품, 성격, 건강 등 여러 사정"을 종합 고려하여 결정하였다는 것입니다. 인품, 성격 등 객관적 기준을 설정할 수 없는 사유들은 논외로 하고, 직무수행능력이나 건강 등 자료상 제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특별히 나쁠 것이 없는 사유들을 제외하면 결국 경력과 연령이 남게 됩니다. 즉 대법원은 경력(전력)과 나이를 이유로 저에 대한 임용을 거부하였다는 것이 됩니다.

우리나라 헌법 25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담임권을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101조 3항은 "법관의 자격은 법률로 정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공무원이 되는 자격은 각종 선거법, 국가 및 지방공무원법 등 법률로 규정되어 있고, 법관이 되는 자격 또한 법원조직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전력(前歷)-행정정책을 법률보다 우위에 두는 행위

민주화운동 관련자에 대한 보상 및 명예회복을 위한 법률이 제정되어 그 절차가 진행되는 시점에서 민주화운동 전력을 이유로 임용을 거부한다는 것은 사회의 민주화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생각하지만, 여기에서는 법률적인 관점에서만 검토하기로 하겠습니다.

판사의 임용자격을 규정한 법원조직법 42조 2항은 '판사는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의 소정 과정을 마친 자 또는 변호사의 자격이 있는 자 중에서 임용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법관의 임용 결격사유를 규정한 법원조직법 43조 1호에 의하여 적용되는 국가공무원법 33조를 보면, 금고 이상의 형을 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후 5년을 경과하지 아니한 자,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을 받고 그 집행유예의 기간이

완료된 날로부터 2년을 경과하지 아니한 자는 공무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3명 모두 법원조직법 42조의 판사의 임용자격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공무원법 33조 각항 소정의 기간을 모두 경과하였거나 사면, 복권되어 결격사유에도 해당하지 않음은 물론입니다.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전력을 이유로 임용을 거부하면서 이를 인사정책 운운하는 것은 결국 행정정책을 법률보다 우위에 두는 태도로서, 과연 국민과 국가기관의 준법여부를 최종 판단하는 기관인 대법원으로서 취할 수 있는 태도인지 의심이 가는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이-공무담임권의 중대한 제약

대법원이 1995년 법원조직법을 개정하여 예비판사를 도입한 것은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제고하기 위한 것인데, 예비판사 임용에서 나이제한을 둔다는 것은 이러한 취지에도 역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여기에서는 법률적인 관점에서만 검토하기로 하겠습니다.

법관의 나이제한에 관한 법률의 규정은 법원조직법 45조 4항에 있는 정년규정, 즉 대법원장의 정년은 70세, 대법관의 정년은 65세, 판사의 정년은 63세로 한다는 규정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법관임용의 연령제한을 규정한 법률규정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올해 임용기준일인 2001년 2월 19일 현재 만 39세였습니다만, 임용된 사람 중에는 만 38세도 2명이 있습니다. 관례적으로 법관임용은 사법연수원 수료성적 및 사법시험성적만을 기준으로 하여왔고, 2000년 2월 이전까지 나이를 이유로 임용을 거부한 전례는 없었습니다.

실제로 1996년부터2000년 8월까지 사이에 판사 또는 예비판사로 임용된 사람들 중에는 40세 이상인 사람이 20명이나 됩니다.

물론 법관임용에 나이제한이 있는 것 자체는 사회적 상당성이 있는 한 위법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는 공무담임권에 대한 중대한 제약인 만큼 국회에 의해서 제정된 형식적 의미의 법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할 것이며, 헌법재판소도 기본권에 대한 제한은 법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하여 이를 확인한 바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없던 제한을 새롭게 부가하려면 일정한 기간 유예기간을 두어야 한다는 사실은 법을 떠나 상식의 영역에 속할 것입니다.

전력 이유 탈락은 우연의 일치?

우리나라 헌법 27조 1항은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를 규정한 것임과 동시에, 국가에 대하여 법관의 임용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바에 따를 것을 요구하는 조항이기도 합니다.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대법원 관계자는 "단순히 전력만을 문제삼은 게 아니고, 성적과 나이, 전력을 포함한 품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다 보니 우연히 세 사람이 탈락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탈락된 세 사람이 모두 민주화운동 관련 전력자들인데, 이것이 우연의 결과라고 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만, 여하튼 개별적으로 고려하였든 종합적으로 고려하였든 나이와 전력을 고려하였다는 것이고, 이는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위법한 처분

인 것입니다.

결국 전력자들에 대한 위법한 임용거부처분은 탈락자들에 대해서는 공무담임권을 침해한 것임과 동시에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기도 합니다.

왜 위법한 처분을 반복하는가

대법원이 민주화운동 관련 전력자의 임용을 거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1997년 "깃발 사건"으로 실형의 전력을 가지고 있던 안병용 씨를 법관임용에서 탈락시킨 이후 1998년 4명, 1999년 3명, 2000년 2명 그리고 이번에 3명 등 반복하여 민주화운동 관련 전력자들의 법관임용을 거부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이 민주화운동 관련 전력자를 임용한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1993년 이모 판사를 비롯하여 1995년 김모 판사, 2000년 최모 판사 등 집행유예의 전력을 가진 사람들을 판사로 임용한 바 있으며, 이에 대해서 대법원은 "단순히 전력만을 문제삼은 것이 아니고 성적과 나이, 전력을 포함한 품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라고 하여 마치 전력자들 중에서 임용된 사람들과 임용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품성의 차이가 있는 것인 양말한 바 있습니다.

이상에서 보면 대법원은 실형 전력자들의 임용은 철저하게 거부하면서, 집행유예 전력자들에 대해서는 선별적으로 임용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러한 대법원의 태도는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위법한 것이며, 설령 그러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명확하게 밝혀 그 기준의 합리성 여부에 대해서도 검증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왜 대법원은 이러한 위법한 처분을 반복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나라 법관 임용 및 재임용 과정에서 국민의 참여가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고,국민의 감시영역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판사는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의 소정 과정을 마친 자 또는 변호사의 자격이 있는 자 중에서 대법원장이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받아 임용하게 되어 있고, 또한 판사를 신규임용하는 경우에는 2년간 예비판사로 임용하여 근무하게 한 후 그 근무성적을 참작하여 판사로 임용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판사의 임기는 10년이므로 그때마다 재임용 절차를 거치고 있습니다.

최근 대법관 임명동의 과정에 국회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바 있지만, 그것 자체가 심히 불완전한 제도일 뿐만 아니라 그 이외에는 법관의 임용이나 재임용에 국민이 참여하는 과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법원의 이번 임용거부처분의 위법성을 다투는 문제가 사법부 구성의 민주화와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법부 구성의 민주화를 위한 제언

대법원은 국민과 국가기관의 준법여부를 판단하는 최종적인 기관입니다. 그러한 대법원이 헌법과 법률에 의해서 주어진 법관 인사권을 위법하게 남용하여 위법한 처분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행정기관의 위법한 행정처분에 대해서는 법원을 통한 사법적인 구제절차가 마련되어 있지만, 대법원의 위법한 행정처분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불복을 한다고 해도 최종적인 판단기관은 역시 대법원이므로 구제 가능성도 희박한 실정입니다.

사법부 구성의 민주화는 사법 민주화의 첫걸음입니다. 법관 임용과 재임용 과정이 이와 같이 법의 지배영역 밖에 있는 한 사법의 민주화의 길은 요원할 뿐입니다. 민주화의 과정에서 우리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은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고 봅니다. 이제 사법의 진정한 독립, 즉 사법부 구성의 민주화 문제를 제기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는 정치적 독립으로부터 시작된 사법부의 독립이 완성되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법관의 임용과 재임용 과정을 국민이 감시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어야 합니다.

정지석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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