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1996-09-01   1430

[06호] 믿음직한 어버이같은 법원을 기대한다

믿음직한 어버이같은 법원을 기대한다

이 글은 사법감시단(김삼원 원우희 서효진 /성균관대 법대 1학년)이 일주일 동안 수원지방법원을 모니터한 후 토론한 결과물이다.

위풍당당한 콘크리트 건물, 거룩해 보이기만 하는 재판장, 말을 건네기조차 어려운 법조의 관리들, 법원에 오면 떨리고 겁부터 난다. 평생 법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살아 왔는데 운수사나워 법정에 섰다. 재판장이 열심히 설명하지만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 그렇다고 주위를 둘러보아도 맘 편하게 물어 볼만한 사람이 없다. 결국 주눅이 들고 억하심정만 품은 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 동안 법정에 나왔던 서민들의 모습이다.

어린 시절 형과 싸우다가 아버지에게 달려가 서로 자기가 잘했노라고, 그래서 내가 옳았다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소연한 기억이 있다. 아버지는 늘 자상하고 엄했다. 서민들이 이런 어린아이 같은 심정으로 이 법조를 대할 수는 없을까. 늘 다니던 법정이지만 일주일간은 이런 시선으로 수원의 법정을 지켜보았다.

먼저 형사법정, 피고인이 입정을 하자 재판장은 진술거부권을 고지해 주고 수갑을 풀도록 한다. 과거와는 분명 달라진 모습이다. 검사의 신문이 시작된다. 검사가 장문의 공소장을 한꺼번에 죽 읽은 후 피고인에게 답변을 요구하면 피고인은 예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변호인이 반대신문하면 피고인의 답변은 전혀 달라진다. 죄 자체는 인정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행위나 피해정도에 대하여는 다른 진술을 하는 것이다. 재판장은 검사의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답변해 놓고 왜 변호인의 반대신문에 가서 다른 소리하느냐고 피고인을 힐난한다. 우리의 형사법정에서 종종 있는 일이다. 이런 경우 다행히 변호인이 있어서 공소사실에 대한 구체적인 반박을 할 수 있었지만 변호인이 없는 경우는 꼼짝없이 공소장을 그대로 시인해 버리는 셈이 된다. 결국 재판진행의 관행 때문에 피고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기회를 쉽게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변호인의 반대신문에 있어서도 문제는 마찬가지다. 변호사가 피고의 행위와 정상에 대하여 장문으로 읽어나가면 피고인은 예라고 대답한다. 아무리 그 내용이 그럴싸해도 그것은 당사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변호사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 때문에 재판장도 변호사의 반대신문에 대하여 그다지 비중을 두지 않는다. 심지어 그 시간을 지루해 하면서 오히려 기록을 뒤적이며 딴 청을 부리기도 한다. 만일 검사와 변호사가 간단히 묻고 당사자가 자세히 진술한다면 진실을 파악하는 것이 훨씬 더 쉽지 않을까. 기록에 의한 형해화된 재판이 아니라 좀더 살아있는 재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것이 시행되려면 재판부를 증설해야 한다. 요즘처럼 한 재판부가 한나절에 40건씩 재판하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변호인의 반대신문이 끝나면 재판장이 보충신문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재판장은 질문을 하면서 피고인의 잘못을 꾸짖고 타이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질책에 재판장의 개인적인 세계관이 진하게 묻어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렇게 토로되고 있는 재판관의 세계관이 이론의 여지가 많이 있거나 재판장의 선입견과 예단을 드러내는 것일 때는 듣기 민망하다.

오후 증인신문에서는 증인이 제대로 소환되지 않아서 기일이 공전되는 경우가 많았다. 송달에 애로가 있고 설사 송달이 된다고 하더라도 당사자가 나오기를 꺼려하면 강제로 구인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선 경찰관이 증인에 대한 구인장을 집행하게 되는데 이 때 형식적인 집행으로 인하여 증인 구인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구인장의 집행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법정경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다음 민사법정의 모습이다. 무엇보다도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당사자의 경우 법정에 출석해도 재판장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지난번 재판때 재판장이 증인을 신청하라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절차를 밟지 않고 그냥 나와서 무조건 억울하다고 하소연한다. 주장하고 싶은 것을 서면으로 작성하여 미리 제출하라고 했는데도 그냥 나오는 경우가 있다. 같은 말을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당사자에게 재판진행에 대해 설명을 하는 재판장이 딱하기까지 하다. 우선 재판에 사용되는 법률용어를 가급적 일상적인 용어로 바꾸어 사용해야 할 것이다. 수원에도 무료법률상담을 하는 기관이 있는데 법정밖에 무료법률상담에 대한 안내판을 마련해 놓는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예 법원정리에게 법률교육을 시키든지 법률지식이 있는 사람을 정리로 임용하여 정리업무 외에도 방금한 재판장의 말을 설명해주거나 재판진행에 대하여 조언을 해주는 업무까지 맡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오후의 민사법정,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어느 당사자는 두시부터 기다렸는데 두세 시간을 법정에서 기다리다가 불려 나갔다. 그 때는 이미 지칠데로 지쳐있는데 재판장은 증인이 안 나왔다고 하면서 다음기일을 정한다. 당사자는 맥이 풀린 채 허탈해 하면서 법정을 나선다. 그 동안 오후재판에서 변호사건, 당사자건, 증인이건 법정에서 한없이 기다려야 하는 문제점이 많이 지적되었다. 그 때문에 법원은 기일을 시간별로 지정하거나 변호사 없는 사건을 먼저 진행하는 등 많은 배려를 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온종일 법정에서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변호사가 선임된 사건에서는 증인의 출석여부에 대하여 변호사가 미리 확인하고 증인이 나오지 않았을 경우 우선진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반하여,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당사자는 증인의 출석여부에 대하여 알 길이 없다. 증인이 안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마냥 기다리다가 재판장이 호명한 후에야 증인이 나오지 않은 사실을 알기 때문에 쓸데없이 법정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변호사가 선임되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는 재판장이 미리 증인 출석여부를 확인한 후 당사자에게 알려주고 먼저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 동안 법원은 권력기관으로 재판과정은 국가권력의 행사과정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제 법조인이나 시민들 모두 법원도 대국민 서비스기관의 하나이고, 재판과정은 바로 이런 서비스제공의 과정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 때 서민들은 어린아이가 믿음직한 어버이에게 달려가듯 법원에 달려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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