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20-09-16   2000

[칼럼] 김명수 대법원장님, ‘사법농단’ 설마 잊으신 건 아니시겠지요

사법농단 언급 없는 사법개혁 자평이 씁쓸한 이유

 

김태일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간사

 

지난 9월 13일(일)은 제 6회 법원의 날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기념식 대신 김명수 대법원장 명의의 기념사가 발표되었다. 기념사 전문에는 사법행정자문회의의 출범이나 법원행정처 상근법관 감축, 고등법원 부장판사 직위 폐지나 윤리감사관 개방직화 등, 지난 3년간 대법원에서 진행된 개혁조치에 대한 자평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기념사만 읽어보면 분명 많은 개혁들이 진행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필자는 기념사 전문을 읽으며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자평하는 개혁들이 추진될 수 있었던 이유.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물론 대법원장-법원행정처로 이어지는 과도한 권한이나 인사제도의 문제는 사법농단 사태 훨씬 이전부터 만연해왔다. 그러나 법원행정처 근무 이력이 없고 대법관 출신이 아닌 법관 김명수가 대법원장에 지명된 배경은 사법농단 사태를 빼놓고는 이해될 수 없다. 

 

사법농단 언급 없이 사법개혁 자화자찬

 

많은 한계가 있었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자체 진상조사를 진행했고, 일부 소수의 법관들에 대해 징계절차도 진행했다. 그런 그가 이번 기념사에서 사법농단 사태에 대해 한마디 언급 없이 사법개혁만을 이야기한 것은 무슨 의미일까. 사법농단 사태는 다 끝난 과거의 일이고, 이제 제도개선만 하면 된다는 것일까. 그 판단의 근거는 무엇일까. 정말로 사법농단 사태는 더 이상의 물음표가 없이 다 규명된 과거일까? 

 

사법농단 개혁과제 현황표 - 참여연대는 지난 9월 10일 사법농단 이후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 사법행정 개혁 등의 과정과 현황을 점검하는 이슈리포트<사법농단 그 후, 사법개혁 어디까지 왔나>를 발표하고 법관탄핵 등 사태해결을 촉구했습니다.

▲사법농단 개혁과제 현황 참여연대는 지난 9월 10일 사법농단 이후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 사법행정 개혁 등의 과정과 현황을 점검하는 이슈리포트<사법농단 그 후, 사법개혁 어디까지 왔나>를 발표하고 법관탄핵 등 사태해결을 촉구했다. ⓒ참여연대

 

 

누구도 법의 처벌을 받지 않았다

책임자 처벌 없이 재발방지를 이야기할 수 없음은 상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처벌 없이 국정농단을 근절할 수 없고, 이재용 부회장의 범죄에 대한 처벌 없이 삼성 불법 경영승계를 근절할 수 없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그에 부역해 사법농단 사태의 주역이 되었던 법관들은 얼마나 처벌받았는가?

검찰은 10개월여 동안 세 자릿수에 달하는 법원관계자들을 수사해 2019년 초 14명의 전현직 법관들을 기소처분했다. 그리고 수사과정에서 포착한 비위사실들과 연루된 법관들 66명의 명단을 대법원에 전달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법적으로 유죄가 확정된 법관은 단 한 명도 없다. 오히려 일부 법관들은 비록 1심이지만 무죄판결을 받았고,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들 일부를 재판업무로 복귀시키기까지 했다. 자체 징계를 받은 법관도 8명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최고 수위가 6개월 정직에 불과하다.

책임자 처벌이라는 면에 있어서 김명수 대법원 3년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무엇보다도 법원은, 검찰 통보 이후 징계위 회부한 법관 10명에 대해서 1년이 넘도록 징계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다. 법원 외부에서 현직 법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회의 탄핵소추지만, 사건 이후 정치인들의 말만 무성할 뿐 실제로 유의미하게 진척되는 상황은 없다. 

개혁은 반쪽짜리 

제도개혁 역시 불완전하긴 마찬가지다. 대법원이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사법행정위원회(가칭)를 설치하는 자체 안을 만들기까지 많은 불협화음이 있었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당시 대법원이 구성한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사법발전위)와 ‘사법발전위원회 건의 실현을 위한 후속추진단’은 사법행정위원회에 법원 외부 위원이 법관들과 동등한 비중으로 참여해 대법원장 권한을 실질적으로 견제하고 사법행정 민주화를 구현해야 한다는 모델을 도출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그대로 확정하지 않고 법관들의 의견을 추가수렴한다는 이유로 사실상 스스로 출범시킨 사법발전위원회의 모델을 거부했다. 그리고 추가 의견수렴을 거쳐 나온 최종 모델은 사법행정 개혁에 대한 대법원장의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것과 다름이 없었다. 총괄심의기구였던 사법행정회의의 권한은 대법원장이 부의하는 사안에 대한 심의·의결기구로 격하되었고, 비법관위원의 수도 줄었다.

비록 법원사무처(법원행정처 대신 설치되는 실무집행기구)의 처장을 비법관으로 임명해 사법행정회의에 참여하게 했지만, 사무처장을 지명하는 것도 곧 대법원장이다. 결국 ‘권한을 일부 나눠줄 뿐, 견제받지는 않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는 안이었다. 심지어 양승태 대법원이 법관 통제를 가능하게 했던 가장 강력한 권한, 그래서 반드시 투명하게 개선되어야 할 인사권에 있어서는 비법관위원들의 참여를 아예 차단했다. 

이렇게 논란 끝에 만들어진 개정의견조차 국회에서 논의되지 않아, 여전히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은 그대로이다. 그러자 법원은 트랙을 틀어 ‘사법행정자문회의’라는 기구를 대법원 규칙 제정으로 새로 만들었다. 임시로라도 합의제 기구를 만들어 대법원장 권한을 분산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름에서부터 드러나듯이 자문회의는 결국 자문기구에 불과할 뿐이다. 무엇보다, 단순 사법행정 자문기구라면 이미 법원조직법 상에 법적 근거를 가진 ‘사법정책자문위원회’ 제도가 존재하고 있다(법원조직법 제25조). 이미 법률 제도로 존재하고, 목적과 기능도 대동소이한 사법정책자문위원회를 재가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낮은 단계인 대법원 규칙으로 또 다른 기구를 요란하게 만드는 것은 단순 보여주기가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아직,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9월 3일, 대법원은 박근혜정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해 내렸던 ‘노조 아님’ 처분에 대해 위법하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4일, 고용노동부는 법외노조 통보처분 취소를 발표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전교조에 팩스로 보낸 한장의 공문으로 시작된 전교조의 합법화 투쟁은 이렇게 7년여만에 종식되었다. 전교조 재판은 대법원에서 뒤늦게나마 파기환송으로 피해자들의 지위를 회복해주었지만, 사법농단으로 재판개입이 이뤄지고 거래의 대상이 된 사건들은 이 재판 말고도 수없이 많다. 그리고 그 판결들 대부분은 시정은 커녕 재심의 기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사법농단 피해자 대부분은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힘에 부쳐 법원에 도움을 청했던 사람들이었고, 이들의 삶은 여전히 복원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의 고통이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에서 과연 사법농단 사태 해결은 이대로 늦춰질 수 있는 것일까. 부당하게 인권과 기본권을 침해당한 사람들을 구제해야 할 헌법적 책무를 지는 법원, 그리고 그 수장인 김명수 대법원장은, 과연 사법농단 피해자 앞에서도 사법개혁의 성과를 자랑할 수 있을까. 대법원이 ‘법원의 날’이나 ‘법의 날’이 아닌, ‘사법 피해자의 날’을 기리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과도한 꿈일까. 사법농단 이후 1,000여일, 대법원장의 기념사가 씁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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