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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법감시紙
  • 1996.09.01
  • 1574
성폭력에 상처받는 어린 새싹들

전재덕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1994년 1월 29일 오후 3시경 치아 치료차 가평치과에 갔던 어린 딸 수정이가 “치과 의사가 혀를 아플 정도로 빨고 깨물었다”는 말에 놀라 가평경찰서에 신고하였다. 그러나 경찰서에서는 친고죄이기 때문에 고소해야만 수사가 가능하고, 성추행은 증거나 증인이 없으면 자칫 무고죄나 명예훼손죄로 도리어 당할 수도 있다는 법률자문만 받고 집에 돌아왔다. 그 후 2월 1일 치과의사 이종문에게서 전화가 걸려와서 “왜 그러느냐”고 묻자, 사과할 일이 있으니 만나달라는 것이었다. 하여 가평 G 다방에서 만나보니 치과의사는 죽을 죄를 지었다며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인 의사라는 자가 아직 미성년자인 어린이를 상대로 성추행을 자행했다는 것은 아이의 부모이자 아이들을 보호하고 교육해야 할 성인된 한 사람으로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치과의사 이종문은 다음날 또 만나주기를 요구했고 전날과 마찬가지로 용서를 빌었다.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준다며 1시간 정도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때에는 이미 고소를 할 마음을 굳힌 후라 증인을 동석시켰고, 치과의사 모르게 소형 녹음기로 녹음을 했다. 그리고는 딸아이의 주장과 그 의사가 용서를 빌어대는 내용의 대화를 녹취록으로 만들어 고소하게 되었다. 하지만 경찰서 수사과에서 조서를 작성할 때부터 공정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고, 담당 형사는 사견을 전제로 합의를 종용하였다. 더군다나 검찰에서 어린 딸을 조사하면서, “혀를 빨고 깨물 때 어떤 기분이었냐?”, “선생님이 예쁘다고 살짝 뽀뽀만 한 것 아니냐?”, “부모가 시킨 것은 아니냐?”는 등 애매하고 의도적인 질문으로 이어갔으며, 필요 이상으로 몇 번씩이나 불러내어 보기 싫어하는 피의자와 대질시키고 오랏줄과 수갑이 채워진 피의자들이 보이는 검사 조사실에서 조서를 꾸미게 함으로써 어린 내 딸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느끼도록 하는 등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초를 겪었다. 검찰의 수사태도는 그 보다 더 심한 피해를 당했다 하더라도 고소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소인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냉정한 조사를 하는가 싶던 의정부지청 최 아무개 검사는 피의자와 합의하는게 어떠냐고 했으며, 1심 재판은 질질 끌다가 94년 11월 29일 무죄판결이 내려지고 말았다.

치과의사가 잘못을 인정하고 잘못을 빌고 용서를 구하는 것을 녹음해 둔 증거도 있는데 어떻게 무죄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치과의사가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비는 것을 본 증인과 그 내용을 녹음해 둔 것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이유도 제시하지 않고 그것이 증거로 인정되지도 않고 무죄가 되는 것을 보고는, 일방적으로 치과의사의 편을 들어주는 판사의 판단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해자 부모인 나는 그 의사의 가증스러움에 견딜 수가 없었고, 그 의사의 치과병원 앞에서 침묵시위를 하였다. 하지만 그 의사는 잘못을 뉘우치기는 커녕 나를 명예훼손 죄로 고소하였고 나는 항소까지 했지만 벌금 50만원에 처해져 전과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통령에게 진정서를 보내고 각종 신문과 방송에 보도되어 많은 국민들의 공분을 얻은 사건을 1심에서 어이없게도 무죄를 판결하다니 우리들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항소심에서 이종문에 대해 벌금 50만원에 처하는 유죄판결이 났고 즉시 상고하였지만 1995년 9월 29일 대법원의 상고기각이 확정되었다. 어린 미성년자에 대한 성추행을 막아 보겠다는 피해자 부모를 명예훼손죄로 벌금 50만원,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치과의사도 벌금 50만원이라면 무승부라고 해야 할까?

사법부의 권좌에 앉아 정의와 불의를 가리는 판·검사들께서 공정한 심판으로 무승부가 아닌 정당한 법의 심판자가 되어 주길 간절히 바랬고, 지금도 사법부가 그러한 본연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범죄행위로 인한 피해 외에 더해진 사법처리과정에서 감내해야 했던 어려움과 고통은 필요 이상의 것이었음이 틀림없다. 고소를 하지 않았거나, 혹은 파렴치한 치과의사와 합의를 보아버렸다면 우리 가족은 범죄행위의 피해자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법절차를 밟아 나가면서 사법피해자라는 명칭을 하나 더 달게 된 것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요 근래에는 유달리 어린이를 상대로 한 성폭력에 대한 소식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아동에 대한 성폭행문제의 심각성이 부각되고 사회여론이 환기되는 것은 비록 많이 늦긴 했지만 무척 다행한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전에도 그러했듯이 이런 사건이 우리 가족이 당한 피해처럼 부당한 사법적 처리로 매듭된다면 그것은 어린이에 대한 성폭력을 사법부가 방관 혹은 부추기는 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성폭력은 무거운 벌로써 다스려야 하지만, 특히 아직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하고 보호받아야 할, 맑고 순수한 어린이들을 상대로 한 성폭력은 매우 엄히 다스려야 한다. 아울러 교육자로서의 최소한의 양심마저도 저버리고 이 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어린 새싹들을 자신의 성적 쾌락의 도구로 이용한 신양 중학교 교장, 안산시의 유치원 원장, 그밖의 어린이를 상대로 성적 폭력을 행사한 모든 파렴치범들은 단호히 최고형으로써 다루어져야 한다. 그럴 때만이 우리의 맑고 밝은 어린이들이 아무 걱정없이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

전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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