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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법감시紙
  • 1996.09.01
  • 3163
형사법정의 합의금과 공탁금
이것만은 고치자

형사법정의 합의금과 공탁금

정주식 변호사

형사법정에서 드물게 보았던 일이다. 교통사고를 내어 재판을 받고 있던 구속피고인에게 담당 재판부가 아직 합의를 하지 못하고 있는 사유를 물었다. 피고인의 대답은, 피해자측에서 합의금으로 과대한 금액을 요구하여 피고인의 형편상 도저히 합의를 할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담당 재판부는 구체적인 금액을 제시하면서, 가능하다면 피해자에게 공탁을 하여 보라고 권유를 하였다. 피해자와 합의를 못하여 실형선고를 각오하고 있던 피고인은 재판부의 배려에 진심어린 감사 표시를 하며 감격해 하였다.

당시 그 법정에서 공판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변호사들도 그 재판장의 재판진행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교통사고나 상해사건의 경우 피해자와의 합의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구속과 불구속, 집행유예 판결과 실형선고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피해자와 합의하였느냐의 여부이다. 이는 곧 재판을 받는 피고인의 개인사에 있어서는 일생의 운명을 좌우 할 수 있는 역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합의」에는 일정한 기준이 없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룰이나 예측가능한 수준도 없다. 합의금의 액수는 천차만별이며, 합의에 도달하는 시기도 가지각색이다. 「합의」는 말 그대로 양당사자가 합의하기 나름이기 때문에 사회통념이나 상식에 벗어 난 것도 없지 아니한 실정이다. 변호사들이 무료상담을 가장 많이 하여 주는 것이 교통사고 합의금 문제일 것이다 (우리나라 변호사들의 무료상담 실적은 아마도 세계 제1위일 것이다). 그러나 변호사들도 「합의」에는 일정한 기준도 룰도 없기 때문에 속시원한 대답을 하여 줄 도리가 없다. 교통사고와 관련된 합의에 관하여 어처구니 없는 경험담을 갖지 아니한 변호사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필자가 합의를 주선하였던 사건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고위 공직자가 횡단보도 상에서 보행자를 치는 사고를 낸 것이 있었다. 마침 피해자는 의사였고, 용케도 피해자의 형도 비뇨기과 전문의사였다. 다른 곳에 아무런 상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는 형의 도움을 받아 「심인성 발기부전」이라는 무시무시한 진단서를 발급 받았다. 「심인성 발기부전」이 하루아침에 치유가 될 것인가. 그 고위 공직자는 별도리 없이 수천만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합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정확히 파악한 그 공직자는 전세금을 빼어 신사적으로 깨끗이 합의를 한 것이다. 만약 합의가 늦어질 경우 그 공직자가 받을 수 있는 제약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물론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피해를 회복시켜 주어야 하고, 잘못을 용서 받기 위해서 적정한 금액을 보상하여야 한다. 이러한 원칙적인 문제에 관하여 시비를 논하자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러나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어 피해자의 피해회복이 충분이 예정되어 있고,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회통념상 적정하다고 생각되는 금액을 지급하고 형사상 합의를 할 의사와 능력이 충분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피해자측의 무리한 요구에 의하여 형사상 합의가 성립되지 못하는 경우가 문제이다. 양형의 제반 요소를 고려하여도 형사상 합의만 있었다면 석방될 수 있는 가해자가 피해자와 합의를 하지 못하여 형을 복역하여야 한다면, 이는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가해자가 상식과 사회통념상 적정한 금액을 피해자에게 공탁을 하면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인정을 하여 주어야 한다.

현재 우리 법원의 입장은 어떠한가? 법원은 합의를 하지 못하여 공탁을 하는 것을 일단 달가워 하지 아니하는 것 같다. 물론 합의가 최선이고 피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아니한다는 의사표시가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합의가 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공탁만으로 피고인을 석방할 경우에 법원이 쓸데 없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기우와 피해자측의 집요한 진정서 등이 부담이 되는 것도 이유가 아닐까. 범죄인의 개별적 특성에 따른 행형(행형의 개별화)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즉 양형의 합리화를 위해서는 피고인의 인격과 사회적‧심리적 상황은 물론 피고인에게 미치는 형벌의 효과에 대해 합리적‧과학적 분석이 필요하며, 공탁을 하는 경우 합의를 하지 못하는 사유도 심리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아니할까. 현재 실무에서 위와 같은 양형사유에 대한 심리가 부족한 것도 법원에서 공탁을 달가워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피고인은 합의가 되지 못한 경우에 공탁이라도 하여야 할 것인지, 공탁을 한다면 어느 정도의 금액이 적정한지에 대하여 쉽게 결정을 할 수가 없어서 곤혹스럽기 짝이 없을 것이다. 만약 공탁금의 액수가 적정하지 못하면 피고인은 돈은 돈대로 버리고 형은 형대로 받아야 하는 처지에 빠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합의를 하지 못하는 사유를 심리하여 합리적인 이유가 있으면 공탁도 합의에 준하는 것으로 인정을 하여야 한다. 또한 공탁된 금액이 부족하면 피해자의 피해회복이 가능한 금액을 제시하여 추가공탁을 할 것을 권유하여야 한다. 피고인도 법원‧검사와 똑같은 소송의 주체이지 재판을 받고 있는 소송의 객체가 이니지 않는가.

법원이 피고인의 공탁에 대하여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법원의 내부 기준에 맞으면 효력을 인정하고 그 기준에 미달하면 합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엄한 처벌을 한다면, 재판을 받는 피고인은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처럼 가슴 졸이며 공탁을 할 수밖에 없지 아니한가. 모두에서 언급한 재판장으로부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은 변호사들이 실무에 있어서 공탁과 관련하여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이 다 있기 때문이다.

양형의 모든 요소에 의하더라도 합의만 있었다면 석방될 수 있는 피고인이 피해자측의 무리한 요구로 인하여 합의를 못하고 공탁금의 액수에 관하여 감을 잡지 못하여 실형을 선고 받는다면 이는 피고인 개인 뿐만 아니라 국가적‧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 아닌가. 이러한 경우에 법원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피고인을 도와 주어야만이 국가의 형벌권이 개인의 사욕에 의하여 농락당하는 것을 방지하고 사법정의를 수립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정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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