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새 헌재소장의 시대적 사명

새 헌재소장의 시대적 사명

 

이국운 한동대 교수·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이국운 한동대 교수·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지난 12일 박한철 제5대 헌법재판소장이 취임함으로써 장장 81일간 계속되었던 헌재소장 공백 사태가 해소되었다. 하지만 신임 헌재소장을 둘러싼 정치적 여건은 여전히 불리하기만 하다. 당장 인사 절차가 마무리되지 못한 두 명의 헌법재판관 없이 헌재를 추슬러야 한다. 또 산적한 미결사건들에 대해 평의를 거쳐 결론을 내려야 함은 물론이려니와, 대통령 긴급조치에 관한 위헌결정 이후 다시 불거지고 있는 대법원과의 해묵은 권한갈등도 해결해야 한다. 게다가 자신의 임명동의안에 대한 국회의 표결 결과가 보여주듯, 최초의 검찰 출신 헌재소장으로 인해 ‘공안 헌재’가 야기될지 모른다는 야당과 언론의 우려도 불식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설립 25주년을 앞둔 헌재의 수장으로서 그동안 많이 약화된 헌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조속히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과제다.

 

헌법재판관직을 사퇴하지 않고 헌재소장이 된 까닭에 박 헌재소장에게는 채 4년의 임기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짧은 임기를 탓하기에는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 너무나 막중하다. 돌이켜보면, 역대 헌재소장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헌법재판제도를 확립하고 과거청산을 완수하며, 정치권력 사이의 충돌을 조정하고, 입법과정의 과오를 수정·보완하는 등의 과제 말이다. 그러면 박 헌재소장은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옳을까.

 

 

 

첫째,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라는 헌재의 헌법적 위상을 되찾아야 한다. 특히 지난 정권을 거치면서 국민 다수는 기본적 자유와 권리를 일방적으로 제한하는 행정부의 독주에 대하여 헌재가 적절하게 대응했는지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헌법 제37조 2항 후단을 좌우명으로 삼아, 다른 헌법적 권력들에 단호히 맞서려는 헌재소장의 결단이 필요하다. “늦춰진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박 헌재소장의 취임 일성을 국민들은 주시하고 있다.

 

둘째, 헌법적 가치에 입각한 사회 통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민주화, 정보화, 세계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지난 10여년 동안 한국 사회는 가히 파편화라고 할 만큼 단절과 불통을 경험하고 있다. 여기에 정치는 파편화를 증폭시키고 있고, 공교육은 권위를 잃어버린 지 오래이며, 매스미디어는 단지 이미지로만 통합을 선전할 따름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헌재로서는 마땅히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활짝 열고, 이를 헌법 해석과정에 적극적으로 녹여내 헌법적 가치에 입각한 사회통합을 이루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셋째, 헌재를 진보와 보수가 서로를 설득하는 열린 공론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헌재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고 헌법적 가치에 입각한 사회통합을 이루려면 헌재가 진보와 보수의 표대결이나 말싸움 장소로 머물러서는 안된다. 오히려 진지한 설득과 경청을 통해 아홉 명의 헌법재판관들 사이에서 헌법적 가치에 대한 새로운 합의가 끊임없이 생성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헌법재판 절차를 주재하는 헌재소장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헌재소장이 먼저 열린 공론장의 일원이 되는 모범을 보인다면, 다른 헌법재판관들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2013년 4월 16일 [경향신문 오피니언] 에 기고된 글입니다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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