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6-12-20   1942

[비평칼럼] 진실을 파헤치고자 한 노력으로 내부고발자를 보호한 소중한 판결

감사원 내부비리 고발자 현준희 씨 파기환송심 판결

감사원의 비리를 고발한 전직 감사원 공무원 현준희 씨에 대해 명예훼손이 인정된다며 원심을 깨고 유죄취지로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제5형사부(재판장 김선혜 판사, 고승일 판사, 이중표 판사)가 지난 10월 18일 대법원의 유죄취지 파기환송과는 달리 현준희 씨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지난 1996년 당시 감사원 공무원이었던 현준희 씨는 정기 감사 도중 양심선언을 통해 청와대의 외압에 의해 감사가 중단되었다고 폭로하였는데, 부당한 감사중단 지시를 내린 것으로 지목된 감사원의 모 국장이 명예훼손 혐의로 현준희 씨를 고소하였지만 1, 2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지난 2002년 대법원은 감사원의 다른 모든 직원들이 현준희 씨와는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현준희 씨의 주장을 믿을 수 없다고 보아 유죄취지로 파기환송하였다. 그러나 4년 여 넘게 진행된 파기환송심의 결과를 선고한 재판부는, 초기에 파기환송심을 담당했던 이전 재판부와는 달리 감사원이 진실파악에 성실히 협조하지 않자 직접 감사원을 방문하여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을 직접 감정하는 등 진지한 자세로 재판을 진행하였고, 결국 대법원의 유죄취지 파기환송에도 불구하고 내부고발자인 현준희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이같은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태도는, 대법원의 판결 무게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재판부의 성실한 태도덕분에 우리 사회에서 아직 충분히 보호받고 있지 못하는 내부고발자를 보호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보아 판결비평의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비평칼럼은 김창준 변호사가 작성하였다(편집자 주).

어느 감사원 공무원의 ‘양심선언’으로 시작된 멀고 긴 싸움

YS정권 시절인 1996년 4월 서초동 민변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청와대의 외압을 받아 진행 중이던 감사활동이 부당하게 중단되었다고 내부고발한 감사원 공무원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현준희이다. 1989년의 재벌기업들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실태를 고발한 이문옥 감사관에 이어 감사원 공무원에 의한 제2호 ‘양심선언’이었다.

현준희씨에 대하여 감사중단의 지시를 하였다고 지목된 당시 감사원 4국장 남모씨는 현준희씨의 ‘양심선언’에 의하여 자신의 명예가 심각하게 실추되었다고 주장하며 현준희씨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였다. 감사원 4국장 개인이 고소를 하는 형태를 취하였지만 실상은 감사원 자체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한, 나아가 YS정권의 도덕성이 걸린 큰 싸움이었다.

검찰은 현준희씨가 감사원 4국장을 비방할 목적으로 기자들에게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이유로 현준희씨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기소하였다. 1심은 서울지방법원의 단독판사가, 2심은 같은 법원의 항소부가 재판을 담당하였다. 그런데 1, 2심 재판부는 현준희씨에 대하여 거듭 무죄를 선고하였다. 1, 2심 재판부는 현준희씨의 고발내용이 허위라고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현준희씨의 내부고발은 감사원이 외부 권력기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여야 한다는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4국장 개인을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근거를 밝혔다.

이러한 1, 2심의 판결은 당시 ‘부패공화국’이라고까지 지탄받던 우리 사회 내부의 고질적인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서 내부고발을 활성화하여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판결이라 크게 환영받은 바 있다.

이 당시는 내부고발자의 신분보장을 규정한 부패방지법이 제정되기 전이라 공직자에 의한 내부고발은 ‘양심선언’과 같은 극단적인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이 판결 이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양심선언’을 한 공직자를 보호하기 위한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는 움직임이 한층 더 힘을 받게 되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대법원 판결의 진실

사필귀정으로 순탄하게 마무리될 듯하던 현준희씨 사건에 돌발적인 변수가 생겼다. 2002년 대법원이 2심 법원의 판결을 파기하고 현준희씨가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여 감사원 4국장의 명예훼손을 한 것이 맞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려버린 것이다. 현준희씨로서는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는 기가 막히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대법원 판결의 요지는, 현준희씨를 제외한 감사원의 다른 직원들이 일치하여 4국장이 감사기간 중 감사중단을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증언하고 있으니, 현준희씨의 주장이 허위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감사원 공무원들이 거짓말을 할 까닭이 없으니 현준희씨 혼자의 말보다는 다수의 말에 더 신빙성이 간다는 취지였다. 국가사정의 중추기관으로서의 감사원이라는 조직의 위상이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자, 개인의 힘으로 거대조직에 맞서 싸워야 하는 내부고발자의 수난이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

대법원이 유죄취지의 판결을 하게 된 결정적인 빌미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준희씨 스스로가 제공한 것이었다. 현준희씨는 감사일보(감사진행 사항을 기재하는 일종의 감사일지)에 “4국장이 감사사항을 5국으로 이송하라는 지시를 하였다”는 내용을 사후에 가필하였고, 이를 기자회견 당시 4국장이 감사기간 중 감사중단을 지시하였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제시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1심 재판과정에서 이 기사는 현준희씨가 사후에 가필한 것이라는 것이 확인되었고, 현준희씨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 이외에 ‘공문서변조죄’로 기소되었다. 이러한 ‘공문서변조행위’는 현준희씨가 자신의 직급 상급자인 감사반장 조모씨가 진실을 은폐할 의도로 이미 감사일보에 가필하여 놓은 것을 보고, 진실이 은폐되지 않도록 하는 차원에서 진실을 기록할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당시 감사반장 조모씨는 감사기간 마지막 날의 감사반장 지시란에 “사업의 연계성 여부에 관하여 객관적으로 입증이 안 되고 있다”고 가필하여 놓았었다(이 행위 역시 공문서변조행위가 될 것이다). 현준희씨는 이를 사후에 발견하고, 이 같은 감사반장의 가필행위가 단순한 법리해석상의 이견으로 감사가 종료된 것처럼 은폐하기 위한 기도라 판단하고, 이를 봉쇄하기 위하여 방어적 차원에서 기입하여 놓은 것이었다. 1, 2심 재판부는 이 같은 현준희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공문서변조죄’에 대하여는 선고유예라는 거의 무죄나 다름없는 판결을 내렸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 같은 현준희씨의 공문서변조행위를 중시하여 이러한 현준희씨의 행동에 비추어 다른 모든 주장도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접근을 한 것이다.

이 같은 대법원의 판결로써 현준희씨 사건은 한마당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리는 듯하였고, 현준희씨는 주위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가련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법원 판결 이후 열린 서울지방법원에서의 환송심은 그 이후 2006년 10월까지 4년여 진행되었는데, 현준희씨는 대법원에 의한 유죄판결이라는 엄혹한 현실 앞에서 4년 내내 위축된 마음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이 기간 중 현준희씨의 머리카락이 눈에 띄게 많이 희어졌는데 현준희씨의 인생에서 아마도 가장 어렵고 슬펐던 시절이었으리라 생각된다. 현준희씨의 독실한 종교적 믿음이 아니었더라면 정신적으로 파탄상태를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정적 증거의 발견

그런데 마치 드라마 같은 일이 일어났다. 대법원 판결 이후 4년여 파기환송심을 진행한 서울지방법원이 지난 10월 판결을 선고하였는데, 현준희씨에 대하여 다시 무죄를 선고한 것이었다. 현준희씨의 고발이 허위사실에 근거한 무모한 폭로가 아니라 순수한 동기에 의한 ‘양심선언’이었음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다. 공직사회의 투명함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던져 용감히 내부비리를 고발하였는데 칭찬을 받기는커녕 직장에서 쫓겨났을 뿐 아니라 형사처벌까지 받게 된, 우스꽝스럽기조차 한 사태가 겨우 정상적으로 수습될 수 있는 계기가 환송심 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마련된 것이다. 천길 나락으로 떨어질 뻔한 현준희씨가 이 판결에 감사의 눈물을 흘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과 가족의 명예를 일거에 회복하여 주는 참으로 구사일생과도 같은 판결이었기 때문이다.

환송심 재판부는 대법원이 현준희씨에게 유죄를 선고하게 된 빌미가 된 감사일보의 가필 사고를 근본에서부터 다시 조사를 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하여 재판부는 감사원의 재정금융국과 행정안보국 소속의 2개과에 보관중인 최근 3년간의 감사일보 전체를 샅샅이 뒤지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관례상 감사기간의 마지막 날의 감사일보에는 감사반장이 아무런 지시사항을 기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고한 관례라는 점을 확인하였다. 이 문서검증의 결과는 현준희씨의 직근 상급자인 조모 감사반장이 감사기간 마지막 날의 감사반장 지시란에 “사업의 연계성 여부에 관하여 객관적으로 입증이 안 되고 있다”라고 기재한 것이 사후에 진실을 은폐할 의도로 가필한 것이라는 현준희씨의 주장이 타당한 것임을 입증하여 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감사원에 대한 문서검증 결과는 대법원이 유죄판결의 근거로 삼았던 현준희씨의 공문서변조행위가 사실은 진실이 은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행동이었음을 인정할 수 있게 해주었고, 이 이후 사건의 방향이 크게 선회되었다. 그 후 환송심 재판부는 이미 정년으로 감사원에서 퇴직한 고소인인 남모 전 국장을 다시 증인으로 불러 신문하였는데, 이 신문과정에서 남모씨는 현준희씨로부터 국장이 감사기간 중 감사중단을 지시하였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는 ‘감사자 견해서’라는 제목의 문서를 현준희씨로부터 받고도 꾸중이나 질책도 하지 않은 채 상당기간 보관하다가 그냥 돌려주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결정적인 증언을 하였다. 이 ‘감사자 견해서’라는 문서는 말하자면 남모씨의 주장과는 정면으로 상충되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는데, 이런 ‘항명’과도 같은 문서를 부하직원인 현준희씨로부터 받고서도 꾸중이나 질책은 물론 아무런 반론도 제기하지 않고 그냥 보관하다가 현준희씨에게 돌려주었다고 하는 것은 위계질서가 뚜렷한 공직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대법원 판결 이전의 1, 2심 재판부는 기록에 이미 편철되어 있던 ‘감사자 견해서’의 내용을 파악하고 그 진정성을 인정하여 현준희씨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는데, 대법원이 어찌하여 이러한 결정적인 문서의 존재를 무시하고 유죄의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인지 관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참으로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된다.

환송심 법원의 무죄판결이 나오게 된 과정에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제일 어려웠던 것은 대법원 판결의 무게였다. 환송심에서는 재판부가 몇 번 바뀌었는데, 전임 재판부로부터는 대법원 판결을 심히 의식한 듯한 인상을 받았다. 현준희씨의 증거신청에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든가 재판을 조기에 끝낼 듯한 태도는 현준희씨를 무척 조바심 나게 만들었다. 이러한 인상은 대법원에서 불리한 판결을 받은 변호인의 선입견에 의한 착각이었기를 바란다.

재판부의 용기와 열린 마음이 내부고발자에 대한 소중함 일깨워

환송심을 최초로 담당한 전임 재판부는 현준희씨가 감사원에서 보관중인 감사일보에 대한 문서검증을 시행해 달라고 애가 타도록 요청하였는데, 감사원에 대한 사실조회 이외에는 허용할 수 없다는 고집스런 태도를 견지하여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국가기관 간에 상호 위상을 존중하여 준다는 것이 그 뜻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감사원 자체의 명예가 걸린 사건에서 감사원으로부터 성의있는 답변을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을 너무 안이하게 평가한 것이 아닌가 한다. 전임 재판부의 거부로 감사원에는 “감사기간 최종일의 감사반장 지시란에 감사반장의 지시가 기재된 건수를 알려 달라”고 조회 하였더니, 감사원은 “감사일보는 감사를 주관한 감사반장이 소속된 과별로 보관되어 있고 통합적으로 관리되고 있지 않으므로 최종일에 감사반장의 지시가 기재된 건수를 파악하기 곤란하다”고 회신하여 왔다. 나중 후임 재판부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문서검증의 결과에 비추어 볼 때 감사원의 위 회신은 의도적으로 진실을 은폐한 것이나 다름없다. 자신에 유리한 것이었다면 날밤을 새워서라도 사실대로 회신하였을 것을 생각하면 법원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사실조회는 설령 그 대상이 국가기관이라 할지라도 왜곡될 수 있다는 경계심을 품어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다.

앞으로 남은 과제

냉정히 평가하자면 대법원의 판결은 내부고발자에 대한 깊은 인식과 배려의 부족에서 내려진 것이고, 어쩌면 내부고발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 보여진다. 그렇게 해석하지 않으면 대법원의 판시결론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환송심 법원의 판결은 내부고발자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과 그에 대한 배려를 전제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건설적이고 희망적인 판결이라 할 수 있다.

내부고발자를 ‘조직의 배신자’로 바라보는 시각과 ‘사회의 소금’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정리되지 못한 채 혼란스럽게 공존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내부고발자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환송심 법원의 판결은 내부고발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교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판결이다.

사법관료화가 염려되는 작금의 상황에서 대법원 판결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용기’와 ‘열린 마음’으로 사건 심리를 진행한 환송심 법원의 자세 역시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현준희씨 사건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고 지금도 진행중인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송심 법원에서 다시 무죄판결이 내려졌다는 것은, 적어도 현준희씨의 ‘양심선언’이 누구도 쉽게 무시 못할 정당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해 준 계기가 되었다. 대법원에서도 환송심 법원의 판결이 유지되어 현준희씨의 ‘양심선언’이 올바른 행동이었음이 최종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김창준 (변호사, 맑은사회만들기본부 공익제보지원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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