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10-10-04   3216

[판결비평 ②] 교과서 소송, 우리 사회의 상식을 시험하는 재판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가 2년 전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출판사들에게 이른바 ‘좌편향’ 교과서 수정명령을 내렸습니다. 집필자들은 교과부의 수정명령을 거부하고 교과부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대해 지난 9월 교과부의 수정명령이 위법하다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에 앞서 8월에는 수정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도 있었습니다.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둘러싸고 엇갈리고 있는 이들 판결에 대해 참여연대는 전문가 3명으로부터 비평을 부탁해 아래에 소개합니다.<편집자주>

[판결비평ⓛ] “국가가 정사(正史)를 세우려 해서는 안 된다”
광장에나온판결_25회_201010.pdf

 

이성호 (서울배명중학교 역사 교사,
전국역사교사모임 부회장 – 사진)

 
좌편향 역사 교과서?

국정 교과서가 검정으로 풀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국정제로는 도저히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가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는 국정제 대신에, 일정한 기준을 통과한 다양한 검정 교과서들이 서로 경쟁하게 해, 교과서의 질적 발전을 도모해보자는 것이 검정제 확대의 이유이다. 아직도 교과서를 국가가 직접 만드는 나라는 북한 정도를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사회주의 중국조차 이제 대부분의 교과서는 검정제로 출판된다. 교육에도 ‘경쟁’과 ‘시장’을 도입하자는 게 이 정부의 기조라면, 교과서 검정제 확대야말로 이런 ‘코드’에 모범적으로 잘 들어맞는 정책인 셈이다.

그런데 지난 9월 24일,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검정교과서 수정을 명령할 경우 이를 따르지 않으면 3천만 원의 과징금을 물리고 3년 간 검정신청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교과부가 입법예고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만약 이런 법안이 통과된다면 교과서 검정제는 껍데기만 남게 되는 셈이다.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에 대해서조차 교과부 장관이 마음대로 수정을 명할 수 있고, 출판사와 저자는 무조건 이를 따라야 한다면 이것이 국정제와 무엇이 다를까?

난데없이 이런 얼토당토않은 법을 만들겠다고 나선 이유는, 다들 짐작하다시피 2008년부터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금성출판사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파동 때문일 것이다. 교과서 수정 파동의 본질은 한 마디로, 정권 입맛에 맞도록 교과서를 바꾸려고 한 정부와 이를 거부한 저자 사이의 대립이다.

교과부는 해당 교과서가 ‘좌편향’된 부분이 있어 이를 수정하도록 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교과서와 검정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감히 금성 근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되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좌편향’ 역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대한민국이 자유로웠던 적은, 유감스럽게도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해당 교과서의 설계도에 해당하는 7차 교육과정은 김영삼 정부 시절에 만들어졌고, 검정기준에는 ‘대한민국의 정통성’항목이 뚜렷이 적시되어 있다. 그것도 못 미더워 교육과정해설이나 편수자료 등을 통해 단원의 체제, 용어마저 통일시키고 있는 것이 그 동안의 현실이었다. 이런 여러 장치로 인해 관성화된 ‘우편향’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큰 문제이지, 감히 ‘좌편향’은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럼에도 뉴라이트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비판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역사 교과서 ‘좌편향’ 문제를 ‘발굴’해냈고, 그것을 통해 ‘보수’ 세력을 자극, 결집시키는데 상당히 재미를 봤다.

금성 교과서를 검정 심사해 통과시켰고, 그 동안 편향성이 없다고 변호해오던 교과부는, 정권이 바뀌자 재빨리 뉴라이트의 ‘청부’를 받아들여 수정을 명령하고 나섰다. 저자들은 이런 수정 명령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검정교과서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 판단해 이를 거부했다. 그러나 교과부의 압력에 굴복한 출판사는 저자의 동의도 없이 교과서를 수정해 발행해버렸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2009년 들어, 금성출판사에 대해 저작인격권 침해 정지 소송을, 교과부에 대해서는 수정명령 취소 청구 소송을 각각 제기했다. 많은 역사, 역사교육 단체들은 ‘역사교과서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이 소송을 지원했다. ‘정권이 바뀐다고 교과서까지 바꿀 수는 없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교과서 재판의 결과

긴 공방 끝에 지난 2009년 9월 저작인격권 소송 1심 판결이 나왔다. 교과서라 하더라도 저자의 동일성 유지권은 보호되어야 하며, 피고 금성출판사가 원고 저자들의 동의나 승낙 없이 교과서를 임의로 수정하여 발행, 판매, 배포한 행위는 원고들의 동일성 유지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므로 이를 중지하고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이었다.

그러나 금성출판사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거의 1년 만인 지난 2010년 8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놀랍게도 1심을 뒤집은 원고 패소 판결이었다. 항소심 공판 중에 새로운 증거나 새로운 주장이 나온 것도 아닌데 1심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재판부는 ‘교과서 수정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수정지시를 그대로 따른 것이어서 금성출판사가 임의로 이 사건 교과서를 수정했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한 저자들이 출판사와 맺은 계약서, 교육과정평가원에 제출한 동의서를 통해 교과부의 지시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것에 동의했기 때문에 출판사의 수정 발행은 저작인격권 위반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나 같은 사안에 대해 1심 판결문은 조목조목 계약서나 동의서의 해당 조항이 동일성 유지권을 제한할 수 있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즉 교과부가 수정지시를 명할 수 있다는 규정은 교과부와 저작자 또는 발행자 사이의 행정적 관계에 대한 규정으로, 검정합격의 취소나 발행정지를 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는 있지만 저작자와 발행자 사이의 동일성 유지권 제한 규정은 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또 출판계약서에 대해서도 교과부의 수정지시가 있을 경우 ‘원고들의 요구와 교육부의 지시에 따라’ 수정한다는 조항에 주목해, 원고들의 요구 없이 출판사가 임의대로 교과서를 수정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동의서에 대해서도 저자와 출판사가 교과부의 지시사항을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한 것일 뿐, 저자와 출판사 사이에 원고의 동일성 유지권을 제한할 수 있는 약정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저자가 수정 지시를 거부할 경우 검정을 취소시킬 수는 있어도, 출판사가 내용을 바꿔 출판할 수는 없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판결이었던 것이다.

항소심은 이런 1심 판결을 잘못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최소한 1심 재판부의 판단이 어떤 점에서 잘못되었는지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판결문 어디에도 그런 설명은 없다. 만약 항소심 재판부의 논리대로라면 모든 검정교과서 저자들이 계약서와 동의서를 제출하므로, 교과부가 수정지시를 할 경우 출판사가 이를 근거로 저자의 동의 없이 임의대로 교과서를 수정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검정교과서 제도의 본질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일 뿐 아니라, 저자가 동의하지 않은 책이 저자의 이름으로 발행되는 모순을 낳는다. 특히 교과부는 이번 사건이 논란이 되자 2009년부터는 검정교과서 저자들에게 동의서가 아니라 각서를 요구하고 있다. 계약서와 각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아예 검정교과서 집필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번 판결은 교과부가 마음만 먹으면 교과서를 마음대로 뜯어고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준 셈이다. 물론 저자들은 상고를 제기한 상태이다.

한편 거의 1년 반 이상 진행되어 온 수정명령 취소 청구 소송의 선고 공판도 지난 2010년 9월에 열렸다. 재판부는 국가가 공교육제도를 형성할 의무와 책임이 있고, 교과서 검정제도는 교과서라는 특별한 지위를 부여, 인정하는 일종의 특허이므로 보다 넓은 범위의 재량권이 인정되며, 민주적으로 구성된 정부가 주권자인 국민의 위임을 받아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교육의 내용과 수준을 결정할 권한을 갖는다는 점에서 재량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즉 교과부의 수정 지시 자체는 위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교과서 수정은 이미 검정에 합격한 교과서에 대해 일부 내용이 검정기준에 어긋남을 이유로 수정을 명한 것이므로 실질적으로 새로운 검정을 실시한 것이고, 이 경우 검정 절차를 준수해야 하는데 이를 위배했으므로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교과부가 임의로 교과서 내용을 변경하는 것을 인정할 경우, 검정 절차를 따르게 함으로써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도록 한 규정의 취지가 침탈될 우려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번 판결은 교과서에 대한 정부의 재량권을 너무 폭넓게 인정한 점에서 아쉬움이 있지만, 그 절차적 통제의 의미를 명확히 해 수정지시의 불법성을 지적한 점에서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재판부가 공판 중 역사교육 전문가를 불러 주관적 평가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 역사학과 역사교육의 특수성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 판결에 대해 교과부는 ‘전문가 협의회’ 등 합당한 절차를 거쳤다며, 항소를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엇을 위한 교과서 재판인가?

저자를 대표해 소송을 이끌고 있는 교원대 김한종 교수는 행정소송 결심 공판에서 ‘연구에 상당히 지장이 있지만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의무감을 갖고 재판에 임하고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학문과 사상의 자유,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검정 교과서 제도의 합리적 운용 등이 저자들이 지키고자 하는 상식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미 합의를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이런 가치를, 재판까지 벌여가며 다투고 지켜야 한다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이번 재판은 여러 면에서 이웃 일본에서 30년 이상 진행되었던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郞) 교수의 교과서 재판을 연상시킨다. 자신이 집필한 고등학교 일본사 교과서에 대해 문부성이 불합격 처분을 내리자 이에 불복해 항의서를 제출했던 이에나가 교수는, 이후 수정본을 제출했음에도 무더기 수정 명령과 함께 조건부 합격 처분을 당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검정은 교육과 표현의 자유에 반하는 위헌, 위법행위’라는 것이었다.

1965년의 제1차 소송은 조건부 합격처분에 대해 국가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이었다. 거의 10년 만인 1974년에 내려진 1심판결은 검정제도를 합헌으로 인정한 전제 위에서, 일부 위법적인 검정이 있었음을 인정해 국가에게 10만 엔의 손해 배상을 명했다. 그러나 1986년의 도쿄고등재판소 판결과 1993년의 최고재판소 판결에서는, 교사의 교육의 자유에는 한계가 있고, 검정은 일반서로 출판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 아니므로 검열(표현의 자유침해)이 아니며, 검정은 집필자의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1967년의 제2차 소송은 문부성의 수정 요구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이었는데 1989년에 종결되었다. 이 과정에서 1970년 내려진 1심 판결, 일명 ‘스기모토(杉本) 판결’은 상당히 진보적 판결로 주목할 만하다. 재판부는, 국가는 교육의 지원자일 뿐, 국민이 교육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점에서 이에나가 교수가 주장한 ‘국민의 교육권’을 받아들였다. 또한 사상 심사의 성격을 가진 검정은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검열’에 해당되며, 교육기본법 제10조에서 정한 교육행정권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후 항소심에서 도쿄고등재판소(1982년)와 최고재판소(1989년)는 해당 소송의 전제가 되었던 ‘학습지도요령’이 이미 개정되었으므로 소송의 실익이 없다며 소송을 종결했다.

1984년의 제3차 소송은 검정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국가에 요구하는 민사소송이었는데, 2심인 도쿄고등재판소 판결에서 국가 일부 패소, 즉 원고 일부 승소가 확정되었다. 1997년 종결된 3심에서도 검정제도 자체는 합헌으로 인정했으나, 8개의 검정 처분 중에서 난징대학살 관련 부분 등 3군데에 관해서 ‘재량권을 일탈한 위법’이라며 국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것이다.

이에나가 교과서 재판은 일본 내에 역사 인식과 교과서 제도에 대한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켰다. 비록 재판에서 이에나가 교수나 진보적 역사, 시민단체의 주장이 전면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이를 계기로 역사 교과서에 대한 국가주의적 통제가 꼭 필요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문부성의 과도한 검정이나 수정요구도 크게 줄었고, 필자나 출판사의 자율성이 대폭 강화되었다. 특히 1989년부터는 검정 규칙을 바꿔, 검정 과정을 대폭 간략화 했다. 이에 따라 문부성의 의뢰를 받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검정조사심의회에서 기본적으로 검정 합격 유무를 결정하지만, 필요한 경우 검정을 유보하고 검정의견(수정의견)을 출판사에 통보해 출판사의 자율 수정을 유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검정 불합격을 시키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그리고 일단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에 대해서는 오기, 오식 혹은 객관적 사정의 변경으로 명백히 잘못된 사실 등의 기재가 발견되었을 경우에만 문부대신이 수정을 ‘권고’할 수 있다.(아이러니 하게도 최근 후쇼사나 지유사의 역사왜곡 교과서에 대해 우리 측이 수정이나 검정취소를 요구하면, 일본 정부는 이런 검정 규정을 내세워 명백한 오류가 아닌 한 수정을 요구할 수 없다고 발뺌하고 있다.) 또 이에나가 재판을 후원하는 과정에서 여러 시민단체가 결합해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 21’이 결성되었고, 이 단체는 지금까지도 역사 왜곡 교과서를 저지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에 비하면 현재 전개되고 있는 금성 근현대사 교과서 재판은 너무 수세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교과서 발행과 검정에 있어서 자율성의 확대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이며, 교과서 검정 업무를 담당했던 교육과정평가원의 보고서에서도 여러 차례 강조한 사안이다. 이번 교과서 재판이 가지는 역사적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보다 근본적인 문제 제기, 예를 들어 ‘편향성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국가가 특정 견해만을 교과서에 싣도록 강요하는 것이 과연 적법한 일인가’ 같은 문제까지 법정에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교과부는 오히려 반대로 입법예고를 하고 나섰지만) 불분명한 법 규정과 과도한 위임 규정을 바로 잡는 계기로 삼을 필요도 있다. 여러 가지 논란이 있지만 일본의 역사적 경험이나 법 규정은 검토 대상이 될 만하다. 절차적 위법성을 중심으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행정소송 1심 판결은, 그런 점에서 다행스러우면서도 아쉬움이 남는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재판은 상식을 지키기 위한 싸움으로 시작되었지만, 우리 사회의 상식 수준을 한 단계 더 확장시키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광장에나온판결_25회_20101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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