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7-07-04   1512

[16회 판결비평-판결읽기3] 정치와 법치 그리고 자치

중앙정부의 간섭과 사법적 통제는 최소한에 그쳐야

법원의 판결에 대해 시민사회의 열린토론을 유도하고 더 나은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판결비평 사업을 벌이고 있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 한상희 교수, 건국대)는 그 열 여섯 번째 판결비평 대상으로, 울산 북구청 공무원 승진임용 취소와 관련한 지난 3월 22일의 대법원 판결을 선정하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중앙정부의 불허지침에도 불구하고 파업에 참가한 구청 공무원에 대해 해당 구청장이 징계하지 않고 승진시킨 것은, 재량권을 남용한 경우에 해당하여 법령을 위반하였으므로 상급기관인 시장이 취소한 것은 정당하다고 하였다.

이 같은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장의 인사와 징계권한을 지나치게 제한하여 우리 헌법에서 보장하는 지방자치의 원리를 거스르는 판결이라는 비판이 있다.

참여연대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함께 토론해 보기 위해 판결비평 대상으로 선정하였다.(편집자 주)

정치논리와 자치논리 그리고 법치의 논리가 착종된 사안

신자유주의의 조류 속에서 사람들의 행위는 경제적 동기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즉, 현대인은 자기에게 얼마만큼의 현실적인 경제적인 이득이 보장되는가를 기준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또한 사람은 규범적인 존재이다. 사람의 행위는 사회가 요구하는 일반적 질서에 합치하여야 하며, 그렇지 못할 때에는 제재를 당할 수 있다. 문제는 사회가 복잡하게 발전할수록 생활관계에 따라서 요구되는 규범이 다를 수 있으며, 서로 상충ㆍ모순될 수 있는 점이다.

이번 광장에 나온 판결례는 우리 사회에 서로 갈등관계에 있는 정치논리와 자치논리 그리고 법치의 논리가 착종하는 점에서 큰 흥미를 자아낸다. 이에 관하여 이국운 교수가 비평을 요령있게 한 바 있다. 이 글은 이교수의 비평과 관련하여 행정법적인 측면에서 판결이 가지는 의의를 나름대로 설명하기 위하여 정리하였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정치적인 것이고, 정치와 자치가 서로 연결ㆍ보완되는 일이 세계 각국의 보편적인 현상이라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지방자치에 대한 정치에 대한 관여(특히 정당공천제)는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지방자치법의 개정으로 지난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까지 정당이 공천함으로써, 지방자치는 중앙정치에 대한 종속성이 심화되었다. 지방 가운데는 한 정당에서 단체장과 의회의 다수를 점하게 되면서 서로간의 견제에 따른 균형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정치가 자치에 영향을 미치면 지방의 공무원들도 지방정치권력의 향배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정작 주민의 복리는 뒷전에 밀릴 수밖에 없게 된다. 공무원노조 설립에 관련된 이번 사안은 얼마간 이런 경향을 보여주었다. 다시 말하면, 구청장과 시장(그리고 정부)간의 공무원노조의 설립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지방자치 행정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정치와 법치 사이의 지방자치

헌법은 제117조에서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고 하였다. 지방자치법 제15조에서도 같은 의미의 조례제정권의 범위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지방자치의 본질을 두고 주민자치를 주장하는 입장과 단체자치를 주장하는 입장이 서로 나뉘어져 있다. 주민자치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을 폭넓게 인정하고자 한다. 반면 단체자치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지방자치에 대한 법적 위임과 통제를 강화하려고 한다. 본 대상 판결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에 관한 그 장의 명령이나 처분이 법령에 위반되거나 현저히 부당하여 공익을 해한다고 인정할 때에는 상급단체장이나 주무부장관이 시정조치를 명하고, 그 기간 내에 이행하지 않을 때에는 이를 취소하거나 정지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사안에서는 시장이 파업에 참여한 공무원에 대하여 징계를 하도록 요구하였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고 오히려 당해 공무원을 승진시키자 광역시장이 승진처분을 취소하였는데, 이 조치가 적법한 것인지의 여부가 소송으로 다투어졌다.

자치에 관한 법적 통제의 범위

지방자치법에서 자치사무에 관한 명령이나 처분에 있어서는 법령에 위반하는 것에 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법령에 위반하는”것에 “재량의 일탈이나 남용”이 포함되는가가 쟁점이 되었다. 대법관 8인이 가담한 다수설은 자치사무에 관하여도 “재량의 일탈이나 남용”이 있으면 취소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해석하고, 이 사안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집회에 참석한 공무원을 징계하지 않고 승진 임용한 것은 재량권의 일탈 남용에 해당된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대법관 5인이 지지한 소수설은 재량의 일탈이나 남용은 자치사무에 대해서는 취소의 대상이 되는 “법령의 위반”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소수설의 보충의견을 낸 이홍훈 대법관은 개인의 권리구제에 이용되는 재량통제론이 자치사무에 관한 사법적 통제의 논리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유력한 견해를 내놓았다.

그런데 필자는 법령의 위반을 이렇게 좁게 해석할 경우에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에 대한 법적인 통제범위가 현저히 좁아지며, 결국 자치사무에 대한 사법적 통제권은 완전히 상실될 수 있으므로, 재량의 일탈과 남용 또한 법령위반 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사안의 경우, 승진 대상이 된 공무원은 아직 징계요구가 되지 않았으므로 정기인사에 누락될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고, 이로 인하여 승진 대상이 된 다른 공무원에게 불이익을 끼친 사실은 입증되지 않았으므로, 인사권 행사에 있어서 “재량의 일탈과 남용”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중앙정부의 간섭과 사법적 통제는 최소한에 그쳐야

정치와 자치 그리고 법치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질서이다. 자치는 지방의 주민이 자율적인 의사에 의하여 공동체의 복지를 추구하는 제도이다. 그러므로 중앙정부의 간섭과 사법적 통제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특히 자치사무는 지방자치단체의 고유한 권한이므로 사법부도 예외적인 범위에서만 이에 대한 통제를 하여야 한다. 지방자치가 정치논리에 막혀서 오랜 기간 억제되었다가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에 주민의 손에 다시 쥐어진 역사를 되돌아보면, 어떠한 이유로든 자치를 통제하고 제한하려는 시도는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도 국가 법질서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법적 제도와 권한의 범위 안에서 의결행위와 법집행행위를 할 수 있다. 자치사무는 주민의 복리를 위하여 지방자치단체에 맡겨져 있다. 자치사무 수행 공과의 법적 통제는 법의 취지상 “법령의 위반”이 있는 경우로 제한되어야 한다. 자치사무의 수행에 관한 일, 즉 자치재량의 행사에 있어서도 그 일탈과 남용이 있는 경우는 사법적 통제의 대상이 된다. 참고로 행정법학에서 재량의 일탈은 재량권의 법적인 범위를 넘은 것이고, 남용은 재량권 부여의 목적이나 취지를 왜곡하여 다른 목적에 이용한 것은 말한다.

다시 말하면 재량의 일탈과 남용은 재량권 행사의 당부당을 넘은 법위반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재량권의 일탈과 남용은 사법부의 관점에서 판단할 일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서 당해 사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판단의 근거가 된 제반 기록을 토대로 재검토하여야 할 것이다. 만일 지방자치단체장(이 사안에서는 구청장)이 사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나름대로의 논리와 판단으로 처분을 하였다면 그에 대하여 사법부는 자신의 견해를 가지고 이를 위법으로 평가한다든지 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될 것으로 본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 자치사무의 사법적 판단 범위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에는 동의하면서도 그 판단의 구조에 대해서는 이견을 제시하는 바이다. 즉, 구청장의 소외 공무원 승진임용 행위에 재량권 행사의 일탈 남용이 있었다는 다수 대법관의 의견에는 동의하지 못한다.

김광수 교수 (명지대 법과대학)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