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6-11-10   1995

[비평칼럼] ‘성실하지만 불운한 채무자’에게 따뜻한 손길 줘야 할 법원

파산에 이르게 된 경위, 미래의 경제사정까지 고려한 대법원의 전부 면책 결정

지난 9월 22일 대법원 제2부는 빚 갚을 능력이 전혀 없어 법원에 파산신고를 하고 면책 신청을 한 국민기초생활보호 대상자에 대해 빚의 일부을 면책해 준 항소심 판단과 달리, 전부 면책해 주어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만성적인 신장질환과 당뇨병으로 직장도 없이 노모와 어린 두 자녀까지 부양해야 하는 국민기초생활보호 대상자인 원고는 돈을 꾸거나 카드 현금서비스로 생활해 오다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게 되어 ‘카드깡’과 ‘돌려막기’로 이자를 변제해 왔다. 더 이상 빚을 갚을 수 없게 되어 파산에 이르게 되자 법원에 파산면책신청을 하였다. (구)파산법에 따르면 갚을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소위 ‘카드깡’이나 ‘카드돌려막기’를 한 경우는 면책 불허가 사유에 해당한다. 그러나 법원은 그동안 비록 면책 불허가 사유에 해당하더라도 신청자의 사정을 참작해 법관의 재량으로 일부 면책을 해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대법원은, 통상 해오던 채무의 일부 면책에서 더 나아가 신청인의 사정을 더 적극적으로 고려하여 일부가 아닌 채무 전부를 면책해야 한다고 결정한 것이다. 이 같은 대법원의 결정은, ‘재량면책과 관련한 기준을 제시하면서도 개인파산제도의 근본 목적을 잊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결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이번 대법원의 결정이 법조문에만 얽매이지 않고 파산에 이르게 된 경위, 미래의 경제사정 등까지 적극적으로 고려한 것이라 보아 판결비평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비평칼럼은 권정순 변호사(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실행위원)가 작성하였다. (편집자 주)

개인파산제도란?

최근, 거리 곳곳, 심지어는 생활정보지, 지하철 등에서 ‘개인파산‧회생’, ‘채무정리’ 등의 문구를 많이 볼 수 있다. 빚 독촉에 시달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무심코 지나칠 수 없는 문구들인데, 왜, 우리는 최근 ‘개인파산’이라는 말을 많이 접하게 되었으며, 개인파산이라는 제도는 도대체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개인파산제도는 ‘채무자의 재산과 현재 및 장래의 수입으로 채무변제가 불가능한 경우, 법원에 파산신청을 하고 법원은 일정한 요건을 심사하여 채무자에게 파산선고, 면책결정을 내려주며, 면책결정으로 인해 채무자는 채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제도’라 할 수 있다. 즉, ‘채무자가 자신의 재산을 모두 청산하고, 모든 수입으로 채무를 변제하더라도 채무 변제가 불가능한 경우, 법원의 결정에 따라 채무가 탕감되는 제도’가 곧 개인파산제도인 것이다.

개인파산제도가 인정되는 이유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최근 ‘채무자의 경제적 갱생을 도모하려는 것이 개인파산제도의 근본 목적’임을 분명히 하였다.

이미 자신의 재산과 수입으로는 도저히 채무변제가 불가능한 채무자에게 아무리 채무변제를 요구한다하더라도 채무자가 자신의 채무를 갚을 수는 없으며(혹자는 이를 두고 ‘마른 수건을 아무리 짜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경우 채권자가 보유한 채권의 경제적 가치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채권자가 금융기관이라면 이미 대손충당의 방법으로 처리되었을 것이며, 원금의 5%미만의 가격으로 유동화회사 등에 위 채권을 매각했을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 법원은 채무자를 명목상의 채무의 굴레에 가두어 두기보다는 차라리 ‘채무자가 변제불능상태에 있음을 인정하고(파산선고), 채무가 늘어난 경위 등을 살펴서 면책불허가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채무를 면하게 하는 것(면책결정)’이 사회‧경제적으로 유익할 것이다.

법원의 면책결정으로 채권자는 언뜻 본인의 채권을 잃은 듯이 보이기도 하지만, 본래 그 채권은 경제적 가치가 없었던 것임을 감안한다면 실질적인 손해는 발생하지 않은 것이 되며, 채무자는 채무로부터 벗어나 경제적 재생(fresh start)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은 취지에서, 미국은 2003년 기준으로 연간 소비자 도산사건 1,624,677건(개인회생 467,298건 포함), 일본의 경우에는 266,461건(개인재생사건 23,612건 포함)에 이르고 있으며, 우리 나라는 2005년말 기준으로 약 3만 8천명, 2006. 7.경 이미 7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파산절차를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모든 채무자들이 완전면책결정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변제불가능을 이유로 파산신청을 한 모든 채무자들이 완전면책결정, 즉 ‘채무전부의 탕감’을 받는 것은 아니다. 개인파산절차를 규율하는 법은 일정한 경우 채무자에게 면책을 불허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법에서 정한 면책불허가사유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채무가 탕감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 주요 사유는 ‘재산은닉, 과다한 낭비, 도박’ 등이다.

따라서, ‘최근, 파산신청이 급증하면서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도를 넘고 있다’는 등의 언론 보도는 위와 같은 법률 규정이나 개인파산의 요건을 엄격히 판단하고 있는 법원의 심사절차를 간과한 그야말로 기우에 불과한 것이다.

‘카드깡’, ‘카드돌려막기’의 경우에는…

개인파산절차를 통해 채무를 탕감 받고자 하는 채무자라면 ‘본인에게 면책불허가사유가 존재하는지’여부를 면밀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면책불허가사유와 관련하여 논란이 되는 것이 ‘카드깡(카드할인)’, ‘카드 돌려막기’ 등이다.

‘카드깡’은 여신전문금융업법에서 규율하는 범죄행위이며, ‘카드 돌려막기’와 관련하여서도 대법원은 ‘이미 과다한 부채의 누적 등으로 신용카드 사용으로 인한 대출금채무를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는 상황에 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용카드를 사용(돌려막기)한 경우, 이를 사기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대법원 2006도282 판결 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불법 행위를 저지른 채무자도 면책결정을 통해 채무를 탕감 받을 수 있는지가 문제되는 것이다.

실제, 면책불허가사유와 관련한 규정을 살펴보면 ‘카드깡’과 ‘카드돌려막기’의 경우, 면책불허가사유에 해당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이에 과거 우리 법원은 ‘카드깡’ 등을 이유로 면책을 불허하거나, 일부면책(채무액 중 일부에 대해서만 면책을 인정하고, 면책되지 않은 나머지 채무에 대해서는 변제 책임 인정) 결정을 내리기도 하였으며, 일부 법률전문가들조차 이를 당연시 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개인파산 신청을 하는 채무자의 대부분이 ‘카드깡’과 ‘카드돌려막기’를 경험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신용카드 소지자라면 누구나 신용불량의 멍에를 쓰지 않기 위해 ‘카드깡’이나 ‘카드 돌려막기’를 이용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당연히 갚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이용하기 시작한 카드 현금서비스는 서비스한도 축소 등을 이유로 곧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이런 현실을 염두에 둔다면, 대부분의 채무자는 개인파산제도를 통해서도 채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탕감 받지 못하는 결과가 되며, 이는 개인파산제도의 근본 목적에 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재량면책결정‘이란…

따라서, 법의 규정에 따라 파산선고를 내리고, 면책여부를 결정하면서도 ‘채무자의 경제적 재생 도모’라는 개인파산제도의 목적을 잊지 말아야 할 법원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고민 끝에, 법원은 일부 면책불허가사유가 존재하는 경우에도 ‘파산에 이르게 된 경위, 그 밖의 사정을 고려하여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면책을 허가’하였으며, 2006. 4. 1.부터 시행되고 있는 ‘채무자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은 이를 명문화하고 있다.

대법원 2006마600결정의 내용 및 의미

‘A씨는 돈을 꾸거나 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아 생계를 꾸려오다 대출금을 갚지 못할 처지가 되자 ’카드 돌려막기‘와 ’카드깡‘으로 이자를 변제해 왔으나, 그 후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한도가 축소되면서 파산상태에 이르렀다. 한편, A씨는 만성적인 신장질환 및 당뇨증상으로 인하여 지속적인 치료비 지출이 불가피한 상황이고, 질병 악화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2조 제2호의 규정에 의한 수급자로서 2명의 어린 자녀를 부양하는 처지에 있다.’ 이러한 사안에서 A씨는 법원에 파산신청을 하였으며, ‘채무의 70% 상당에 대하여는 면책결정을 받았으나, 30%에 대하여는 여전히 변제책임을 부담’하는, 일부면책결정을 받게 되었다.

A씨가 일부면책결정에 수긍하지 못하여 항고, 재항고를 거치자, 대법원은 ‘채무자의 경제적 갱생을 도모하려는 것이 개인파산제도의 근본 목적’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채무자가 일정한 수입을 계속적으로 얻을 가능성이 있다는 등의 사정이 있어 잔존채무로 인하여 다시 파탄에 빠지지 않으리라는 점에 대한 소명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일부면책이 허용’되나, ‘A씨와 같이 일부 채무를 남겨둘 경우 다시 파탄에 빠지는 사태를 초래할 가능성이 큰 경우에는 완전면책을 허용함이 타당하다’는 취지의 판단을 하였다.

대법원의 위와 같은 결정은, ‘재량면책과 관련한 기준을 제시하면서도 개인파산제도의 근본 목적을 잊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결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법 해석은 상식에 부합하여야…

흔히, 法이라는 한자는 ‘水과 去’와 결합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물이 흘러가듯이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해석된다. 달리 표현하면, 법이 법률 전문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인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상식에 부합하여야 한다는 뜻이 될 것인데, 종종 우리 법원은 현란한 논리를 구사하면서도 막상 일반인을 설득시키지 못하는 판결들로 인해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위에서 살핀 결정에서, 단일하게 해석되지 않고 판단의 여지가 있는 사안에 대하여 ‘개인파산제도의 근본 목적’으로 돌아가 해석하는 지혜를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개인파산제도는 더욱 실효성을 얻게 되었으며, 과중채무에 시달리는 많은 ‘성실하지만 불운한 채무자’들에게 경제적 재생의 기회가 활짝 열려 있음을 보여주게 되었다. □

권정순(변호사,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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