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칼럼(jw) 2011-08-24   5895

[칼럼] 한상대 검찰총장은 검찰 독립성 포기했나

하승수 변호사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


하승수 변호사

지난 8월 12일 한상대 신임 검찰총장은 취임식에서 3대 전쟁을 선포했다. 부정부패, 종북좌익세력, 그리고 오만과 무책임 같은 검찰내부의 적을 상대로 전쟁을 하겠다는 것이다. 국방부장관도 아닌 검찰총장이 전쟁을 한다니, 무슨 얘기인지 관심을 갖게 된다. 그중에서 부정부패와 일전을 벌이겠다는 말은 환영할 만하다. 검찰이 그동안 권력층이나 돈많은 사람들의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솜방망이만 휘둘러왔으니, 이번 기회에 제대로 수사를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부정부패에 대한 수사 의지마저 의심스럽게 하는 대목이 있다. 바로 종북좌익세력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점이다. 부정부패 해소에 검찰의 역량을 집중해도 모자랄 판인데, 신임 검찰총장이 느닷없이 ‘종북좌익세력 척결’을 들고 나온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부정부패 근절은 정치적 수사(修辭)에 불과하고, 정작 핵심은 딴데 있는 것 아닌가 의심도 든다.

‘종북’ ‘좌익’은 법적 근거 없는 정치적 용어

법을 집행해야 할 검찰조직의 수장이 ‘종북’ ‘좌익’ 같은 말을 써도 되는지부터 의문이다. ‘종북’이나 ‘좌익’이 무엇인지는 우리나라 법전에 정의되어 있지 않고, 그에 대한 처벌규정도 없다. 죄형법정주의에 따르자면 형법상 ‘종북’이나 ‘좌익’에 관한 정의가 있고 그에 대한 처벌규정도 함께 있어야 검찰이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는 것인데, 한상대 총장은 무슨 근거로 ‘종북좌익세력’을, 그것도 ‘척결’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종북’이나 ‘좌익’은 일부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주로 쓰는 말이다. 법적 용어가 아니라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용어다. 이런 말을 검찰조직의 수장이 사용한다는 것은 검찰의 본분을 망각한 소치다. 검찰총장이 법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 선전포고하는 것은 법집행이 아니라 ‘정치’를 하겠다는 표현에 가깝다.

이런 느닷없는 선언은 검찰이 더 정치화되고 공안통치의 수단으로 복무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검찰이 정치권력의 시녀가 되어 시민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 정치적 활동의 자유를 통제하겠다는 뜻인 것이다. 사실 현 정권이 들어선 뒤 검찰은 이미 정치화될 대로 정치화되었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보도한 <PD수첩>을 기소하고, 경제위기를 경고한 네티즌 ‘미네르바’를 구속하는 등 여러 사건에서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며 정권의 입맛에 맞는 수사를 해왔다. 이런 상황인데, 정권의 후반부에 검찰총장이 된 사람의 입에서 ‘종북좌익세력 척결’이 나왔다는 것은 매우 걱정스럽다.

도대체 ‘종북’과 ‘좌익’을 누가 어떻게 판단하겠다는 것인가? 그에 대한 법적 잣대가 있는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머릿속에 든 사상을 검증하고 평가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능한 일인가? 이런 점에서 한상대 총장의 법조인으로서의 자질뿐 아니라 민주시민으로서의 의식도 의심할 수밖에 없다.

한상대 검찰총장

인사청문회를 받고 있는 한상대 검찰총장


누가 검찰내부의 적인가

한편 한상대 총장은 검찰 내부의 적과 싸우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검찰내부의 적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듯하다. 지금 검찰이 가진 문제점이 무엇인가? 일선 검사들은 늘 격무에 시달린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하지만 일반 형사사건으로 검찰이 욕먹는 경우는 많지 않고 파장도 그렇게 크지 않다. 검찰이 가장 비판받는 것은 바로 검찰이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게 검찰권을 휘두르는 부분에서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검찰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 역할을 맡을 사람은 다름아닌 검찰총장이다. 설사 외부로부터 부당한 압력이 가해진다고 해도 검찰총장이 검찰의 독립성을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검찰총장의 임기를 법률로 보장한 취지기도 하다.

그런데 갓 취임한 검찰총장의 입에서 극우정치인이나 쓸 표현이 거침없이 나오니, 정치적 독립성을 애초부터 포기했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검찰의 역량을 공안사건을 양산하는 데 사용한다면, 검찰 본연의 임무는 어떻게 감당하려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아마도 이런 발상은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더 잃어버리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결국 한상대 총장 자신이 검찰을 망치는 ‘검찰내부의 적’은 아닐까.

인권과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으려면

또한 그가 말하는 ‘종북’의 의미도 역설적인 데가 있다. 현 정권과 보수세력은 늘 북한의 정치범 실태를 비판해왔다. 필자 역시 북한의 민주주의와 인권 상황을 우려한다. 북한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점, 정치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점은 명백하게 보편적 인권의 가치에 반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상대 총장이 얘기한 ‘종북좌익세력 척결’은 그야말로 전체주의적인 발상이다. 실체도 불분명한 개념으로 수사하고 체포하고 기소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럼으로써 정치범을 양산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국제적인 인권후진국으로 전락할 것이다. 이런 대한민국이 북한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해 얘기할 자격이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한상대 총장은 왜 스스로 비판하는 북한의 모습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 이 칼럼은 < 창비주간논평 >< 프레시안 >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