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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참여재판
  • 2013.11.27
  • 1507

기본권으로서의 국민참여재판 



한상훈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eb241dc0e6950ce016d1048ae8a0036b.jpg우리나라에서 국민참여재판이 시행된 것은 오래지 않다. 2008년 1월 1일부터 도입되어 이제 6년이 되어간다. 참여정부 시절 사법의 민주화, 재판에의 국민 참여라는 모토하에 사법개혁위원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등에서 논의하여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것은 어찌 보면 놀라운 일이었다.

 

재판에, 그것도 형사재판에 백성, 시민이 참여한 것은 수천년 우리 역사상 최초의 사건이다. 시행 전의 어느 국민참여재판 모의재판에서 한 국회의원이 축사에서 우리 국민이 방청석에서 법정의 중심으로 몇 미터를 이동하는 게 이렇게도 힘들었는가라고 감격의 말을 한 것이 기억난다.



 

제도의 도입취지를 상기한다면

 

얼마 전 주진우 기자와 안도현 시인에 대한 재판이 있었다. 특히 안도현 시인에 대한 허위사실공표죄와 후보자비방죄 사건에서 7명의 배심원이 지난 10월 28일 전원일치로 무죄를 평결하자, 전주지방법원의 담당재판부는 일부 평결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를 두고 새누리당 일부 의원과 일부 언론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은 국민참여재판에서 제외해야 한다거나 지역감정에 기반한 감성재판이었다는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부산 등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사건에서 무죄평결이 나왔다는 점이 알려지자 그 논거는 약화되었다.

 

국민참여재판제도의 도입취지는 사법의 민주화, 재판에의 국민 참여라고 하는 커다란 이념적 이유도 있었지만,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지 않았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법조비리, 전관예우, 권위적 언사 등으로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떨어져 있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국민참여재판이었다. 국민 중에서 무작위로 선정되어 엄격한 선정절차를 거친 배심원이 재판에 참여하고 판결에 관여한다면, 재판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되고, 배심원은 전관예우나 법조비리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므로 공정한 재판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학연, 지연, 혈연 등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배심원이 과연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는지, 또는 어려운 법률원리나 절차적 문제를 배심원이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걱정도 없지 않았으나, 이는 제도적 보완을 통하여 해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2005년 무렵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70퍼센트 이상의 응답자가 판사 단독으로 재판하는 것보다 국민과 판사가 함께 재판하는 국민참여재판이 더욱 공정할 것이라고 답하였다.

 

만약 모든 사건에서 판사와 배심원(국민)의 결론이 같다고 한다면, 참여재판은 도입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올해 9월까지 진행한 1091건의 재판 중에서 7.5퍼센트 정도는 판사와 배심원의 유무죄 결론이 달랐다고 한다. 결론이 달라지는 것은 지극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어떤 경우에 다르고 왜 다른가 하는 점이다.

 

공직자, 그것도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에서 후보자에 대한 검증과 비판은 혹독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검증을 후보자비방죄로 봉쇄하려는 시도는 적절하지 않다. 안도현 시인 사건 재판의 배심원이 표현의 자유와 비판의 자유를 우선시했다고 볼 여지는 많다. 배심원이나 참여재판을 비난하기에 앞서서 국민의 진의가 무엇인지부터 깊이 성찰했어야 한다.



 

국민참여재판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1670년 종교적 자유를 주창한 윌리엄 펜(William Penn)을 영국 정부가 선동죄로 처벌하려고 기소했을 때에 부셸을 비롯한 배심원들은 감금과 벌금의 위협을 무릅쓰고 무죄평결을 관철하였다. 이 사건을 통하여 비로소 영국에서 배심원이 판사의 지시나 명령에 따르지 않고 독립적으로 평결할 수 있다는 법리가 형성되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하지만, 배심제도도 결코 순탄하게 발전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헌법에 배심제도에 관한 3개의 조항이 규정된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식민지 미국에서 독립활동을 하던 인사들을 영국이 배심제를 피하여 처벌함으로써 영국 정부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감이 커진 것이다. 배심재판을 받을 권리를 박탈당한 것은 미국 독립혁명의 기폭제 중 하나가 되었다.

 

선거재판이나 명예훼손재판엔 어려운 법리가 그리 필요하지 않다. 이미 수백년 전부터 영국, 미국 등지에서 해온 것이다. 21세기의 우리 국민이 17세기의 영미인보다 지성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을까. 표현의 자유, 비판의 자유, 선거에 참여할 권리야말로 자유민주국가에서 핵심적인 기본권이다. 이러한 권리를 둘러싼 재판에 국민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원칙 또한 이제 우리의 기본적 권리가 되어야 한다.

 

차기 개헌이 있다면 가장 먼저 신설되어야 하는 규정이 국민의 재판참여에 관한 조항이다. 법무부는 최근 참여재판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입법예고하였다. 배심원 평결의 실효성을 위하여 적절한 개정은 필요하다. 일부 제도적 보완도 바람직하다. 하지만 보완이 아닌 배제는 국민을 존중하는 자세가 분명히 아닐 것이다. 국민참여재판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 이 글은 2013년 11월 27일 창작과 비평 주간 논평에 기고된 글입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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