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12-02-09   2528

[2012/01/27 국민참여재판 방청기] 전문용어가 난무하지 않아서 좋았다

참여연대는 ‘국민참여재판 함께보기’를 한달 내지 두달에 한번 꼴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직업법관만이 판결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배심원들의 ‘상식적 법감정’을 기반으로 판결을 내리는 국민참여재판. 참여연대는 재판을 방청한 분들의 후기를 받아 게시하고 있습니다. 가보지 못한 분들은 글을 통해 재판의 과정을 글을 통해 함께 해 보시기 바랍니다. 글을 보내주신 분들께는 소정의 선물을 드립니다.(편집자 주)

 

 

2012년 1월 27일 국민참여재판 방청후기 

 

참여연대 9기 인턴 김민주(가명)

법 공부를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일이지만 재판을 방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법원에 가본 것도 마찬가지로 처음이었다. 생각과는 달리 법원에는 사람들이 매우 많고 은근히 시끌벅적했다. 법원은 매우 엄숙하고 비장한 분위기일 줄 알았는데 법원을 찾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까 그런 것 같다. 법원 앞에서는 ‘법원의 곽노현 일병 구하기 판결 철회하라’는 피켓을 들고 일인시위를 하고 계시는 분이 있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서울 중앙 지방 법원은 매우 크고 복잡했다. 판례 중에 서울 중앙 지법에 내야하는 소장을 서울 고등 법원에 낸 것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서울 중앙 지법에 낸 것으로 보아 기간을 지킨 것으로 봐준다는 판례가 있는데 실제로 법원에 가보니 이해가 됐다. 국민 참여 재판을 한다는 대법정 417호는 일반 법정과는 다른 곳에 있어서 일반 법정인 418호부터 425호까지를 뒤지다가 재판에 늦었다. 직원 분들이 여기저기로 알려주는데 매우 귀찮은 듯 대답하셔서 정확히 물어보기가 어려웠고 게다가 가르쳐주는 방향이 모두 제각각이어서 찾기가 힘들었다. 때문에 피고인이 입장하는 모습이나 검사의 기소장 낭독 등을 방청하지 못했다.

동종전과 5번 넘어, 예단배제 가능할까

 

국민참여재판은 중범죄에만 적용되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사건은 절도라고 해서 의아했다. 알고 보니 피고인은 누범전과가 많은 사람이라서 특가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국민 참여 재판이 가능한 것이었다. 동종전과가 5번이 넘는 점을 보니 나로서는 예단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웠다. 도벽이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누범 전과가 있더라도 그것을 회수까지 적시하는 것이 예단배제의 원칙상 적절한가는 고민을 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피고인이 하는 말은 알아듣기 어려웠다. 대체로 입안에서 웅얼거렸고 말끝을 흐리는 버릇이 있어서 그랬다. 그러나 판사나 검사 변호사 모두 피고인의 말에는 상대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았다. 내 생각에는 변호사는 몰라도 판사나 검사는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몰랐을 것 같은데 굳이 질문하여 명확히 하지는 않았다. 제대로 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피고인은 재판 중 피고인 신문 때 말고는 시쳇말로 ‘멍 때리고’ 있었는데 피고인에게 재판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고인의 알아듣기 어려운 말, 판검사는 이해했을까?

판사들은 재판을 나름대로 적절히 진행한 것 같다. 하지만 기대보다는 다소 엉성한 점이 아쉬웠다. 이를테면 처음부터 사건 수사한 경찰을 재정증인으로 세웠다면 많은 의문점이 조기에 해소되었을 것인데 재판 막바지에 이르러서 증인으로 신문한 것은 아쉬웠다. 피해자를 증인으로 신청하지 않은 점도 의문이었다. 또 사건 해결에 필수적인 쟁점들은 두루 다루었지만 쟁점을 다루는 순서가 매끄럽지 않아서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다루어진 것 같았다. 최종 변론을 앞두고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의문점들이 있었는데 배심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배심원들은 굳이 의문을 해소하지는 않았는데 아마 의문점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배심원들이 나서서 질문하기 어려운 분위기여서 그랬던 것 같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간사님 말씀을 들으니 증거에 대해 설명하던 검사는 수사 검사이고 법복을 입으신 검사는 공판 검사라고 하셨다. 증거에 대해 설명하던 수사 검사는 변호인의 무죄변론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는데 본인도 인정한 바 이 사건이 이렇게까지 쟁점이 많은 줄은 몰랐다고 한다. 이 정도면 상당히 간단한 사건이며 증거도 명백하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검사, “이렇게 복잡한 사건인 줄 몰랐다”

 

그동안에는 법 실무상 CCTV나 도서관 입, 출관 기록이 있으면 동일성 여부와 무관하게 거의 유죄가 명백한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었다. 듣기로는 재판부는 절도범행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배심원단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런 점에서 국민참여재판 제도는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변호인은 수사검사에 비해 달변이었다. 걸음걸이나 반팔 부분을 지적 하는 것은 억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전반적으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설득력이 상당했다. 하지만 도대체 충분한 증거는 어디까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사 사건의 수사는 과거에 있었던 일을 역추적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많은 단서가 소실되고 때로 인멸된다. 따라서 재판정에 나올 수 있는 증거는 언제나 완벽할 수 없다. 이론상으로, 그리고 판례상으로도 형벌을 내리기 위해서는 범행 사실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하지만, 과연 우리가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사건이 몇 건이나 될까?

 

배심원의 판단 근거는 무엇이어야 할까

만약 배심원들 판단의 기준이 실체 진실이 될 수 없다면 도대체 어디에 근거하는가? 결국 검사나 변호인 중 누가 말을 잘했는가에 의해 결정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정의 실현이 아니라 스포츠고,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운(돈)이 없어 감옥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또 국민참여재판에 찬성하는 논거로 소위 ‘상식’에 부합하는 판결을 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상식’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법은 민중의식인가? 모든 것을 민중에게 맡기는 것이 실제로 정의를 담보할까? 이런 문제에 대해서 깊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다만 그동안의 법 실무가 알쏭달쏭한 법 용어를 써가며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 점은 확실한 것 같다.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검사나 변호사 모두 참 열심히 준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사실 판단이 주 쟁점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법학의 전문용어가 난무하지 않아서 좋았다. 이것이 배심원이 참여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한다면 국민참여재판은 그 제도적 의의를 충분히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한 시민 단체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77%가 사법부가 공정하지 못한 판결을 한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부디 본 제도가 국민의 사법신뢰를 재고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