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8-07-17   2329

[08/07/07 국민참여재판 방청기] 예상보다 일찍 만장일치 무죄 결론을 낸 배심원들

이 글은 지난 7월 7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한 방청기입니다. 참여연대는 올 초부터 국민참여재판 방청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지난 6월부터는 ‘참여연대와 국민참여재판 함께 방청하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재판을 방청한 박근용 참여연대 사법감시팀장의 방청기입니다.


박근용(참여연대 사법감시팀장)

배심원 결정을 뒤집은 재판부

7월 7일 서울서부지방법원 303호 법정에서는 전국적으로는 스물 대여섯 번째에 해당하고 서울에서는 세 번째, 서울서부지방법원 차원에서는 두 번째에 해당하는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이날 사건은 강간치상사건이었다. 물론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강간에 이른 사건은 아니다. 검찰은 남자 피고인이 강간을 시도하였으나 미수에 그쳤고 그 와중에 여성에게 상해를 입혔다고 판단하여 기소한 것이며, 여성이 고소를 하여 검찰이 기소한 사건이다.


이날 재판은 참여연대 여름 대학생 인턴 17명과 함께 방청하였다.
나도 그랬지만 끝까지 함께 방청한 사람 대부분이 배심원들의 평결이 1시간 30분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조금 놀랬다.

7월7일 서울서부지법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이 합의(평의)를 하기 위한 평의실 모습. 책상위에 번호가 적힌 명패는 배심원들의 번호를 뜻한다.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선정절차-변론절차-배심원평의 및 선고절차로 3등분된다. 변론절차가 모두 끝나고 배심원 평의에 돌입한 시각이 오후 7시25분경이었다. 함께 방청한 이들도 모두 2~3시간 정도는 족히 배심원들이 토론할 만큼 고민되는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녁밥을 먹은 뒤, 9시쯤에 법정 앞에 도착하니, 벌써 배심원들과 재판부, 검사, 변호인, 피고인 모두 법정에 앉아있었고, 재판장인 장진훈 부장판사가 배심원들의 평결 내용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배심원들의 평결이 1시간2~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배심원들이 만약 유죄라고 판단했다면, 유죄 평결이후에 적정한 형량을 정하기 위한 추가 토의(양형 토의) 시간이 걸렸을텐데, 이번 재판에서는 배심원들은 피고인에 대해 무죄평결을 내렸다. 그러니까 어쩌면 양형토의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보니, 조금 일찍 재판결과가 선고될 수도 있었겠다 싶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배심원들은 나의 예상보다는 무죄라는 판단에 모두가 의견일치를 보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또 한 번의 놀라움은 배심원들의 평결결과를 재판부가 완전히 뒤집어버렸다는 점이다. 재판장은 배심원들의 평결결과(무죄)를 설명한 뒤, 재판부의 의견은 배심원들과 달리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장은 이런 저런 정황을 보았을 때, 이날 법정에 나온 피해자의 증언중에 일부 신뢰가 떨어지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믿을 만하고 검찰측의 다른 주장들도 변호인들의 주장에 비해 좀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는 등의 이유를 제시하면서 유죄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물론 자유심증주의에 따라 법관은 증거중에서 어떤 것이 더 우월한 것인지, 어떤 것을 믿고 어떤 것은 증거로서의 증명력이 없다고 판단할지 정할 수 있다. 이는 배심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배심원들은 피고인에게 기소된 죄명(강간치상 또는 강제추행치상)으로 유죄임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면서 검찰측이 유죄입증의 증거라고 제시한 것을 앞세우지 않은 반면, 재판부는 유죄입증의 증거로서 부족함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배심원들의 평결과 재판부의 결정이 달랐던 것이다.
솔직히 혼란스러웠다. 나도 방청을 하면서 어느 쪽 말을 믿어야 할지 계속 의심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심원들의 결정을 뒤엎을 만큼 재판부가 설득력있는 이유를 제시한 것 같지도 않았다. 배심원들이 만장일치에 이른 결정이라고 해서, 100% 진실이라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어차피 이미 과거의 일을 재구성해서 죄의 유무를 따져보는 것인만큼 불완전한 진실일 수밖에 없다. 이건 재판부가 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배심원재판으로 하기로 한 이상, 그 결정을 뒤엎으려면 그만큼 분명한 근거가 제시되어야 한다. 물론 재판부도 나름대로 이유를 설명했지만, 머리가 개운해지는 설명은 아니어서 아쉬움이 컸다.



국선전담변호사와 그를 도와준 선배 변호사


배심원 후보자로 출석했으나, 최종적으로 배심원으로 뽑히지 못해 배심원 선정절차 뒤에 귀가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민들의 모습. 배심원 후보자로 출석한 것에 대한 수당을 받고 있다.

이 날 재판에서 특이한 점은 변호인이 2명이었다는 점이다. 이날까지 진행된 국민참여재판이 스물 대여섯건이었는데, 그중 내가 직접 본 것은 6건이었다. 그중에서 단 한 번만 변호인이 2명이상 나왔고 5번의 재판에서는 모두 1명의 변호사만 변호인석에 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국선전담변호사들이었다.
내가 보지 않은 재판들도 살펴보면, 올 6월까지 있었던 국민참여재판 23건중 17건이 국선전담변호사가 변호를 했다고 들었다. 기본적으로 국선전담변호사는 한 명씩 변호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즉 한 사건에 한 명의 국선전담변호사만 배정되고 있다.
따라서 6월까지 있었던 재판중 국선전담변호사가 등장한 17건에서는 모두 변호인 1명이 재판을 맡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날 재판에는 국선전담 변호사 1명이 원래 피고인의 변호인었는데, 이 분의 선배인 일반 변호사(소규모의 법무법인 소속이었다) 1명도 함께 피고인을 변론하였다.


역시 한 명이 변호인으로 활동하는 것보다는 훨씬 안정감이 있었다. 검사는 통상 2명이 나온다. 이른바 수사검사와 공판검사 각각 1명씩이다. 피고인을 직접 수사한 검사와 재판(공판)을 전문으로 하는 검사들이다. 이들은 최초진술, 쟁점설명, 증인신문, 최후의견진술 등 순서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적절히 분배하여 돌아가면서 배심원들에게 설명을 한다. 반면 변호인이 1명인 경우는,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한다. 그러니 정신없이 바쁘다. 검사측이 말을 할때에는 검사말도 들어야 하고, 또 자기가 준비한 내용도 다시 한 번 점검하기도 해야하고 정신이 없다.
그런데 2명이 하면 다르다. 1명은 자신들의 순서를 차분히 준비하고 있으면, 다른 1명은 검사가 주장하는 내용을 잘 듣고 있다가 반박할 점을 바로바로 뽑아낼 수 있다. 또 한 명의 변호사에게 부족한 부분을 다른 변호사가 다음 순서에서 보충도 해주었다.


앞서 통계에서도 보았듯이 현재 대부분의 국민참여재판 사건은 국선전담 변호사가 맡고 있다. 일반 변호사들은 여전히 국민참여재판을 할 지에 대해 자신감이 없기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런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일반 재판과 달리 하루만에 재판이 끝나고 또 배심원들을 설득시키는 부담이 일반 재판보다 훨씬 큰 부담을 주는 국민참여재판에서는 국선전담 변호사 1명이 ‘고군분투’하지 않게 지원해주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아니면 검찰쪽도 차라리 1명만 나오라고 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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