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9-01-21   1889

[09/01/19 국민참여재판 방청기] “국민에게 활짝 열린 법정이 보고 싶어요”


이 글은 지난 1월 19일(월)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한 이의 소감을 담은 글입니다.
참여연대는 시민들이 국민참여재판을 이해하도록 도와주고, 제도적 개선점을 찾기 위해  [참여연대와 함께 국민참여재판 방청하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19일에도  ‘참여연대 제3기 인턴’으로 활약중인 학생 20명과 참여연대의 겨울방학 교사직무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한 선생님(중학교, 도덕) 1명과 함께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하기위해 서울북부지법에 갔습니다.





장동엽 (참여연대 사법감시팀 간사)

낡고 좁은 서울북부지법 법정 탓에 방청도 경쟁


겨울이지만 그다지 춥지 않은 화창한 아침. 이런 날씨여도 평소라면 주말 연휴를 보내고 새로운 한 주를 여는 월요일 아침이라 마음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을 터이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 월요일과 다른 아침이다. 서울북부지방법원 101호 법정 방청석에서 외화나 외국 드라마 장면에서나 볼 수 있던 배심원 재판(국민참여재판)을 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일까?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2008년 국민참여재판 도입 초기부터 [참여연대 국민참여재판 함께 방청하기]라는 이벤트를 진행해 왔다. 이날도 겨울방학 교사직무연수의 일환으로 강원도 원주에서부터 참여연대로 발걸음하고 계신 중학교 도덕 선생님을 비롯해 참여연대 3기 인턴 학생들까지 함께한 가운데 서울북부지법을 찾았다.


19일 오전 11시를 넘긴 시각. 서울북부지법 101호 법정 앞에 모인 취재진과 시민들의 열기가 이 재판에 쏠린 사회적 관심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는 존속살해사건인데다 서울북부지법에서 여는  첫 국민참여재판인 탓이기도 했다. 20여명의 우리 일행 가운데 나를 포함해 겨우 예닐곱 명 정도만 오전 재판 방청의 행운을 잡을 수 있었다. 그나마도 몇몇은 서서 지켜봐야 했다. 101호 법정에 들어선 우리는 방청조차 힘겨웠던 이유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서울북부지법 본관은 무척이나 낡고 좁아 이날 재판에 쏠린 사회적 관심에 비해 방청석이 넉넉하지 않았던 탓이다. 결국 일행 중 상당수는 법원 식당에서 오전 재판이 끝나길 기다려야 했다.



검사-변호인에 주어진 미션 ‘배심원을 설득하라!’

이날 재판을 맡은 서울북부지법 형사11부 이상철 부장판사는 “국민참여재판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의 판결에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제도”라며 국민참여재판의 의의를 강조했다. 이어서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재판에 있어 공명정대한 평결을 내려야 할 배심원들에게 재판의 절차와 함께 배심원으로서 유의해야 할 점들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이 재판은 이틀로 예정되어 있었다. 배심원 선정, 모두절차, 증거조사, 피고인 심문, 검찰 구형, 최후변론 및 진술, 배심원 평의 및 평결 등으로 이루어지는 재판절차 가운데 이날은 모두절차(배심원 선서, 검사의 공소장 낭독, 공소장의 혐의사실에 대한 피고인 답변, 검사-변호인 각각의 입증계획 설명 등으로 이루어짐), 증인을 불러 심문하면서 공방이 오가는 증거조사 가운데 일부가 진행되었다.




19일(월) 서울북부지법 국민참여재판 방청에는 참여연대 3기 인턴 학생들이 함께 했다.


사실 우리나라의 재판이 ‘공판중심’이라고 하더라도 국민참여재판 이전에 벌어진 몇몇 형사사건 재판을 벙청한 경험에 비추어보면, 검찰-변호인 사이의 공방들이 대개 서류상의 자료들이 오가는 것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정작 공판 그 자체는 생각보다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반면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의 존재는 검찰과 변호인 모두에게 공판에 임하는 태도에서부터 큰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날도 검사와 변호인 모두 사건의 쟁점을 설명하고 입증계획을 밝히는 과정에서 프리젠테이션을 적극 활용했다. 양측 모두 배심원들에게 본 사건의 핵심을 어떻게 간결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 흔적이 엿보였다. 오전 재판의 마지막 절차였던 양측의 입증계획 설명에서는 검사는 공소장에 명시한 피고인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변호인은 피고인이 전면부인한 검찰 측의 혐의내용에 대해 반박하기 위해 이후 재판과정에서 어떤 논리와 증거자료들로 배심원들 앞에 설 계획인지를 조목조목 설명해 보였다.



검사와 변호인, 가볍지만 날카로운 펀치을 주고 받다


이날 검사 측은 “존속살해”라는 살벌한(?) 제목의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3가지의 사건 쟁점을 제시하며 피고인의 유죄를 주장했다. 목이 졸려 살해된 피고인의 시어머니가 사체 발견 기준으로 최소 2시간 전에 사망했을 것이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 부검 결과와 피고인의 진술에 바탕을 둔 피고인의 외출시간을 고려할 때, 당시 집에는 피고인과 시어머니 뿐이었음을 파고들었다. 피고인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진짜 범인이라 지목한 남편은 사무실 동료의 증언으로 알리바이가 입증된다는 점을 들기도 했다. 또한 피고인이 남편과 16년간 모신 시어머니가 치매를 가장하며 자신을 학대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고, 그동안 우울증 등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왔다는 점 등을 들어 우발적인 범행동기가 충분하다는 점 등을 밝히겠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변호인은 “피고인은 무죄”라는 제목으로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했다. 변호인은 검사가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결정적 증거로 든 사망추정시간에 대해 국과수는 “정확한 사망시간을 추정할 수 없다”는 소견을 내놓았다며 119구급대 도착 2~3시간 전이 아닌 5~8시간 전에 사망한 것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는 점을 반박의 논거로 들었다. 또 51kg에 불과한 피고인이 시어머니의 갈비뼈를 모두 부러뜨리며 목을 졸라 살해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의문을 던지며, 남편을 비롯해 제3자의 범행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점, 2007년 몸이 좋지 않아 병원치료를 받고자 했던 피고인을 남편이 정신병자 취급하며 강제로 끌고 가 정신질환 판정을 받은 것을 두고  16년이나 모셔온 시어머니에 대한 범행 동기로 보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 등을 들며 공방을 이어갔다.



‘진짜 공판’이 ‘진정한 국민의 법정’으로 향하는 지름길
 

양측의 입증계획을 마치자 점심식사를 위해 휴정을 가졌다. 오후에는 일행들 모두가 방청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굳은 믿음(?)으로 식사를 마치자마자 일찌감치 법정 입구에서 줄을 서며 기다렸다. 그러나 가족을 비롯해 취재진 등이 이미 방청석을 차지하는 바람에 오전보다 더 적은 3명의 인턴 학생들만이 오후 재판을 방청할 수 있었다. 오전에 양측이 주장하는 사건 쟁점을 들은 것만으로도 오후의 증인 심문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나마 좁디좁은 서울북부지법 법정을 원망할 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몇몇 인턴 학생들은 혹시라도 오후 재판 진행 중에 방청석에 반 자리가 날 수도 있으니 기다리겠다는 열의를 보여주기도 했다.

국민참여재판을 계기로 평소 일반인에게는 엄숙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법정, 영화와 드라마 속 간접체험의 공간으로만 인식되어 온 법정을 보다 가까이 옮겨와 ‘진정한 국민의 법정’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일행은 오는 2월 9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리기로 예정된 국민참여재판 방청에 다시 한번 도전해보자는 결의를 다지고 헤어졌다.


‘국민참여재판’은 서류가 대신하다시피 했던 공판을 말 그대로 진정한 ‘공판중심주의’를 실현해 보일 수 있는 계기다. 판결의 주체로서 배심원들이 재판과정과 평의ㆍ평결에 있어 보다 긴장감을 갖고 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법정의 문은 더 많은 시민들에게 활짝 열려야 한다. 그런 면에서 사법부는 국민참여재판의 확대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재판이 말 그대로 ‘공판’이 될 수 있도록 더 많은 시민들이 지켜볼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것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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