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8-10-06   3506

지위가 높아질수록 형량은 낮아지는 사회, 희망은 있을까?



이 글은 참여연대와 성폭력상담소가 지난 10월 2일 주최했던
<뇌물/배임횡령/성폭력 범죄, 바람직한 양형판단 기준을 말한다>토론회의 후기입니다.


10월 2일, 오후 2시 조금 전에 참여연대 건물에 헉헉대며 도착했다.
지하의 느티나무홀에 가니 토론회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담당 간사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맨 앞에 앉으세요.”
실수였을까, 행운이었을까. 엉겁결에 맨 앞자리에 앉아 토론자들과 어색하게 눈을 마주치며, 2시간 반 동안 토론회를 방청했다. 

끝나자 그 담당 간사가 선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잘 들으셨어요?” “맨 앞에 앉았는데 잘 들어야지 어떡해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마디. “그럼 후기 써주세요.”
헉. 조금이나마 부담을 줄여보려고 비굴한 미소를 띠며 물었다.
“분량은 얼마나…?” “편하게 쓰세요. 길면 연재하는 방법도 있으니까 뭐.”






토론회의 명칭은<뇌물/배임횡령/성폭력 범죄, 바람직한 양형판단 기준을 말한다>.
토론회 주최자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와 성폭력상담소.
요즘 대법원의 양형위원회에서 판결이 국민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여론이 있는 범죄들에 대해 양형기준을 다시 정하고 있다는 소식에, 특히 시민운동단체의 활동과 관계가 깊은 3개 범죄에 대해 현재 양형의 문제점과 개선점에 대해 먼저 논의하고 입장을 만들자는 이유로 개최된 토론회라고 한다.
뇌물, 배임횡령, 성폭력 순으로 발제자와 토론자가 1인씩 발표 토론하는 식이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이시기도 한 건국대 법대 한상희 교수님의 사회로 진행되었는데, 2시에 토론회를 시작하며 제 시간에 시작했다며 많이 흐뭇해 하셨다.
나도 여러 단체의 행사에 참석했었지만 제 시간에 제대로 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준비를 했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중요한 주제였다는 걸 반증하기도 하고.


‘공익사회에 오래 봉사했다’면 더 엄히 죄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첫 발제자는 깔끔히 넘긴 머리에 도시인의 고독이 느껴지는 장유식 변호사님.

발제 내용은 현행 뇌물죄 양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점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에서 자원활동을 시작해 처음 한 일이 뇌물죄 관련 판례 내용을 정리하는 일이었는데 그 일의 결과물을 보게 되어 몹시 뿌듯했고 좀 신기하기도 했다.
발제문에 의하면 뇌물죄 양형기준의 문제점은 세 가지이다.
첫째, 법정형이 너무 크다. 특가법상 뇌물죄의 법정형은 그 최저가 무려 10년이다. 이렇게 법정형이 세다보니 법관들이 실형을 때리기 부담스러워 집행유예를 선고해 버리고 만다.
둘째, 그러다 보니 집행유예 선고율이 너무 높다.
일반 형사사건 집유 비율에 비해 10%~20% 까지 높은 집유 선고율을 보인다.
셋째, 특별예방적 양형이 너무 많다. 재범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너무 봐주다 보니 오히려 ‘한 번은 봐주겠지’하는 잘못된 인식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양형기준의 개선점 역시 3가지가 제시되었다.
첫째, 뇌물죄에는 법관의 양형재량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 뇌물죄의 양형은 법관의 재량보다 ‘국민의 법감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국민참여재판 등에 의해 국민들이 양형까지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부당한 집행유예를 근절해 뇌물죄를 엄벌해야 한다는 것.
뇌물죄의 경우 형량을 가볍게 했던 사유를 다시 집행유예 선고의 근거로 이용하는 이른바 ‘이중적 감경’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집행유예 선고는 부당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셋째, 주관적 양형 판단요소를 제한해야 한다는 것. 뇌물 액수, 수뢰자의 지위, 국가 주요기능과 관련성 여부 등, 객관적 기준은 강화하고 ‘개전의 정’이 있다거나 뇌물죄로 ‘공직을 잃게 되다’는 등의 주관적인 감정적인 요소들은 판단에서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공직자로서 오랫동안 봉사해왔다’는 식은 오히려 죄를 더 무겁게 만드는 이유라면 모를까, 가볍게 만드는 이유가 될 수 없다는 발제자의 주장은 상당히 공감이 되었다.


내가 정리한 자료의 분석 결과를 들으며 머릿 속에 드는 생각 한 가지.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는 것. 내가 정리한 판례에 보이지 않은 내용이 이렇게 많이 숨어 있었다니…


이 첫 번째 발제에 대한 지정토론자는 서강대 법대의 박용철 교수님이었다. 서울대 조국 교수님에 비견될 외모의 박용철 교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한석규같은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흐뭇하게 웃고 말았다. 왠지 오길 잘 한 것 같아~
박용철 교수님은 대체로 뇌물죄에 대한 발제자의 주장에 동의했다. 다만 국민참여재판에 의해 국민들이 양형가지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뇌물죄에 가장 효과적인 양형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의 선행없이, 뇌물죄에 대한 현재의 불감증을 과도한 처벌로 대체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 뇌물죄에는 일정액수 이상은 집행유예 선고를 금지하고 증뢰자로부터 뇌물로 인한 이익을 금전으로 환산해 추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의견을 들으며 3천억원의 은행 대출을 성사시켜주고 3천만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판례가 생각이 났다. 그 정도 금액에 걸멎는 뇌물액이 아니어서 황당했었는데 박 교수님의 주장대로라면 3천만원 반환에 그치지 않고 3천억원 대출로 인한 이득을 증뢰자로부터 추징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사람들은 대기업 총수를 처벌하면 경제가 망한다고 생각할까?


두 번째 발제자는 시크한 지식인의 상징, 피곤해 보이는 눈을 가진 이상훈 변호사님이었다.
두 번째 발제의 내용은 대기업 지배주주나 경영진의 배임, 횡령에 대한 양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배임, 횡령 액수가 큰 경우 특경가법으로 처벌되는데 특경가법상 배임, 횡령 역시 뇌물죄처럼 집행유예가 너무 많은 게 문제였다.
일반 배임, 횡령보다 그 액수가 큰 경우 가중처벌을 하기 위해 특경가법을 만든 것인데 특경가법상 배임, 횡령이 일반 배임, 횡령보다 집유 선고비율이 훨씬 높았다.


이런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 대안이 제시되었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첫째, 지배주주가 어느 정도의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것.
둘째, ‘손해’를 판단할 때 근로자, 채권자, 하청업체, 지역주민의 손해를 적극 고려해야한다는 것.
셋째, 양형을 할 때 합의 여부보다 배임, 횡령액을 중요하게 보아야한다는 것.
넷째, 범죄예방효과를 위해 ‘휠체어 항변’과 ‘전문경영인 항변’에 엄격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발제자는 ‘지배주주 또는 경영진이 몇 년 자리를 비운다고 하여 대기업이 망하지 않는다’며 엄격한 법 적용을 촉구했다. 대기업 경영인의 배임, 횡령에 엄단을 요구하는 글은 많이 봐왔다. 대부분 사람들도 법의 공정한 적용에는 찬성한다.
그러면서도 대기업 총수와 관련된 사건에서는 슬쩍 꼬리는 내리는 이유는 경제가 어려워지면 어쩌냐는 불안감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에게 경제는 좀 어려워지겠지만 이게 정의로운 거니까 지지해 달라는 건 무리한 요구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그 불안감을 덜어주며 설득하는 건 어떨까? 이런 사건에 대해 무조건 법조항을 들이대며 부당함을 외치기보다는 대기업 총수 처벌한다고 경제가 망하지 않는다. 혹은 잠깐 회사가 어려울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처벌하는 게 더 낫다는 식으로.
물론 죄 지은 사람을 처벌하는데, 다른 이유를 대면서까지 처벌을 설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앗, 이렇게 딴 생각을 하는 사이 지정 토론이 시작됐다.
토론자는 왠지 천재일 것 같은 느낌의 홍익대 법대의 오병두 교수님.
오병두 교수님 역시 발제자의 문제의식에 전반적으로 공감하였고 다만 현실적인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법원을 설득해낼 수 있는 도식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였다.
예를 들어, 회사 이외 근로자, 채권자, 하청업체, 지역주민의 손해는 구성요건이나 책임 판단의 문제로 양형 사유로 보기는 어렵다. 또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실질적으로 따지는 것 역시 구성요건에 반영해야 할 문제로 입법적인 접근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좀 더 생각해야 할 성폭력 범죄


마지막 발제자는 토론회 참여자 중 유일한 아이돌 이경환 법무관님.
앳된 얼굴, 앳된 목소리. 내 또래인 것 같아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려다 퍼뜩 근데 내 또래라면 앳될 수 없잖아. 맞다. 내가 20대가 아니지…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본론이다.
기존 성폭력 범죄 양형의 문제점은 범행 행위와 결과 불법에 비해 범행 전, 후 사정 즉, 범죄자와 피해자와의 관계, 음주 여부, 공탁 여부 등을 너무 많이 고려한다는 것이다.
또 범행 행위의 우발성을 죄를 감하는 사유로 보는 것도 문제가 있다. 성폭력 범죄의 특성 상 다른 사람이 없는 곳에서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해야 하고 피해자가 신고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 등 어느 정도 계획의 요소를 가지기 마련인데 법원은 우발성을 너무 쉽게 인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놀랐던 점은 재산죄도 아닌데, 공탁이 형을 감하는데 고려된다는 것이었다.
강간은 강력범죄에 속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게 뭐 돈 떼어먹은 것도 아니고 어떻게 공탁했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강력히 처벌을 요구하는 경우에도 집유를 선고할 수 있다는 것인지.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성폭력 범죄의 친고죄 규정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친고죄 규정 때문에 피해자와의 합의가 지나치게 많이 고려되고 비친고죄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 취지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단박에 동의할 수는 없었다.
후에 토론자도 말했듯 우리나라 성폭력 신고율은 2.3%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피해자들이 성폭력 사실이 드러나는 데에 따른 또는 수사, 재판 과정에서 당하게 될 2차 피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혀 근거 없는 두려움도 아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성폭력 신고는 ‘용기있는’ 행위이다.
이런 상황에서 친고죄를 폐지한다면 친고죄 유지로 인한 부작용에 못지않은 부작용이 다시 생기지는 않을까? 아마 친고죄 폐지 의견을 듣는다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의문을 가질 것이다. 이에 대한 설명이 없어 좀 아쉬웠다.

이어서 참가자의 홍일점 이윤상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님의 지정 토론이 있었다.
이윤상 부소장님은 실제 성폭력상담소에서 상담하면서 겪은 실제 사례들을 통해 발제자의 주장을 지지하였고, 양형 판단에 절대 고려되어서는 안될 점들을 설명하는 식으로 양형 기준을 만들 수는 없는지를 물으며 토론을 마쳤다. 


의례적으로 토론회가 끝나면 무거운 정적 속에서 서로 눈치만 보는 어색한 상황이 벌어진다. 그런데 토론 내용이 일반인들이 보기에도 흥미로웠는지, 그래도 자유롭게 질문하고 대답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나도 친고죄 관련한 질문을 하고 싶었는데, 마침 뒤에서 주섬주섬 가방 싸는 소리가 들려 차마 손을 들 수가 없었다…
시간은 4시 30분. 2시간 반에 걸친 토론회가 끝났다.
큼지막한 현수막을 뒤로 하고 사람들이 심각한 얼굴로 앉아있는 토론회 사진만 보았던 탓인지 정책토론회란 지겹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지겹지도 않고 재미있었다. 아마 토론회를 준비하는 판결문 조사 자원활동을 하고 난 후여서 그저 남 일처럼 느끼지는 않았나 보다. 그리고 이런 토론회를 왜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자기가 전개했던 시민운동 활동의 연장선에서, 사회 기득권층의 범죄에 대한 좀 더 엄격한 판결을 한 목소리로 원했던 토론회 참석자 분들의 주장이 실제로 법을 집행하는 분들에게도 여과없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김연정_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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