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1995-12-11   2252

[02호] 법정에서의 법관의 말투

형사법정은 무색투명한 곳이어야 한다. 이것은 형사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재판에는 결코 개인의 사적감정이 개입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물론 변호사가 피고인이 범행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피치 못할 사정에 대하여 변론하면서 법관의 감정에 호소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고 또 필요한 것이다.

형사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대상은 단지 피고인일 뿐이지 그 피고인이 사회적으로 갖는 지위나 학식, 재산의 정도, 사상적 편향이 아니라는 점에서 형사법정은 무색투명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당연히 우리 법원도 사회적 지위와 차이 등에 의하여 피고인이 차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여서인지 피고인의 사회적 호칭으로 그 피고인을 부르는 것을 제지하고 있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호칭 이외의 많은 말이 오고 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진술을 거부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구…."

얼마전 어느 형사법정에서 경험한 일이다. 그 날의 재판은 소위 시국재판이라고 하여 별도의 특별기일까지 잡아서 진행되었고, 피고인들은 주사파로 분류되는 학생등이었다. 재판이 시작되어 재판장은 우선 피고인들에 대하여 인정신문을 하였고 나아가 피고인들에 대하여 진술거부권이 있음을 고지하였다. 이 '진술거부권고지'는 진술거부권 또는 묵비권이라고도 불리는 피고인의 권리를 재판장이 재판의 모두(시작)단계에서 미리 밝혀 둠으로써 피고인이 자기 자신에 불리한 진술을 강요받지 않게 하고, 이로서 인권보장 및 재판의 평등을 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날의 진술 거부권의 고지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피고인에게는 진술거부권이라는 것이 있는데 진술을 거부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구…."

사람에 따라서는 이러한 식의 고지에 대하여 그럴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냐고 하며 넘어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 말이 피고인들의 사상적 편향 즉 주사파라는 점에 대하여 재판장이 갖는 뿌리깊은 편견에 기인하는 것만 같아 마음이 불편하였다. 또 위 말은 위 사건의 피고인들에게 진술거부권을 조금도 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형사소송법에서 주라고 하니 마지못해서 주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법관도 인간이기 때문에 사건이나 피고인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갖는 감정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감정이 법정에서 법관의 말이나 표정으로 드러난다면 피고인은 엄청난 정신적 고통에 빠질 수밖에 없다. 법정에서 법관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실어 말하게 되면 그것은 경우에 따라서 어떠한 언어폭력보다 더한 것이 될 수도 있다.

변호사라면 누구나 형사건 민사건 법정에서 재판장이 재판진행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법정에서 피고인이나 민사재판 당사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변호사인 우리가 보기에도 말도 안되는 내용인 경우가 많다. 재판장 중에는 그러한 짜증나는 순간에 도 이성을 잃지 않고 그들에게 정중한 표현을 계속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런 순간 그 전에 잘 써 오던 정중한 표현을 하대하는 듯한 말투로 바꾸어 사용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재판진행에 있어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하대하는 듯한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표현을 정중하게 하는 접미어 "-요"의 발음을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흐려 발음하는 경우도 있다.

법정은 공적인 자리

법관이 법정에서 재판당사자와 만나서 이야기를 듣거나 하는 것은 사적인 만남이 아니라 공적으로 부여된 절차 속에서의 만남인 것이다. 그 공적으로 부여된 절차는 민사소송법이나 형사소송법 등의 절차법에서 자세히 규정하고 있지만 불행히도 법관의 말투가 어떠하여야 한다고 하는 것은 그와 같은 법률 속에는 전혀 없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규정이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법에 규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법관은 위와 같은 공적인 만남에 있어서는 일상관계의 사적인 형태의 만남의 연장이라는 착각을 탈피하여야 한다. 재판은 엄정하여야 하고 재판의 당사자는 완전한 인격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법관은 법에 의하여 다른 사람을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는데, 법의 기본정신을 망각한다면 자기 스스로의 설 자리조차 부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한정화 변호사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