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1995-12-11   1601

[02호] 한국에서라면 사형???

– 한국의 형사사법현실과 관련하여 다시 본 O.J.심슨 재판 –

지난 10월 3일 흑인 풋볼 영웅 O.J.심슨이 자신의 백인 전처와 그녀의 남자친구 유태계 백인을 살해하였다는 검찰의 "1급 살인" 및 "2급살인" 혐의의 기소에 대하여, 9명의 흑인, 2명의 백인, 1명의 히스패닉으로 구성된 배심원단(the jury)은 전원일치 'Not Guilty"를 평결(Verdict)하였다. 검찰측은 현장에서 발견된 피의 D.N.A 구성, 사건시간내에 있어서의 심슨의 소재불명, 그리고 심슨의 배우자폭행의 전력 등을 중심으로 논지를 펴나갔지만 변호인측은 로스엔젤레스 경찰국(LAPD)의 악명높은 인권유린 역사, APD 법의학연구실의 문제점, 마크 퍼만 형사의 위증 등을 중심으로 반격을 가하였고, 최후변론에서는 법의 논리를 뛰어넘어 이른바 '인종주의 카드'를 배심원들에게 던짐으로써 재판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이다.

"O.J.심슨 재판"(O.J.Trial)은 미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인 극심한 인종간 갈등, 만연한 가정내 폭력, 개선되지 못한 경찰관의 인권의식 등을 다시한번 극명하게 보여주었으며, 평결 이후 미국 전역은 이 재판에 대한 평가와 대책과 관련하여 격렬한 논쟁의 도가니 속에 놓여 있다. 특히 인종갈등의 문제는 이 평결이후에 10월 16일에 워싱턴 DC에서 열린 '일백만 흑인 남성대행진'과 맞물려 더욱 초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글에서는 현재 미국 사회에서 논쟁점이 아니라, 한국 형사사법 현실을 염두에 두면서 무엇에 주목해야 할 것인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그 어떤 외국의 법현실도 결국은 우리의 법현실을 반추하는 계기로 작동해야 하지 않겠는가?

고교 미졸업자가 유뮤죄를 판단하다니?

먼저 영미식 배심재판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로서는 전문법관이 아닌 일반 시민이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한다는 점이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다. 배심원들은 법학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미졸업자도 여러명이나 된다. 이러한 구성은 "O.J.심슨 재판"의 경우 뿐만 아니라 미국 형사재판에서의 통상적인 배심원 구성이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의 법조인들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근대 시민 혁명의 성과인 배심제를 공개적으로 폄하할 수는 없겠지만, 암묵적으로는 '무식한 시정잡배'들에 의한 재판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고교 미졸업자가 감히 유무죄를 판단하다니?? 현재의 살인적인 경쟁을 뚫고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변호사들에 대해서도, 그 수준에 문제가 많다고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이 우리 법조계의 시각이 아닌가? 물론 영미법계에서도 배심제에 대한 비판이 있으며, 이 배심제를 대륙법계에 속하는 우리나라에 직수입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수백년간 내려온 평민에 의한 재판의 의미를 생각해본다면,현재 법조개혁을 둘러싼 우리나라의 논쟁을 바라보는 기본시각을 잡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재판의 텔레비젼 중계?

"O.J.심슨 재판"은 재판 개시부터 평결에 이르기까지 텔레비젼 생중계가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 미국 내부에서는 '재판이 쇼로 변질하였다' 또는 언론이 재판을 오도하고 있다'는 등의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물론 이 재판은 O.J.심슨이라는 유명인사를 둘러싼 센세이셔널한 사건이다보니 재판자체가 하나의 '싸구려 연속극(Soap Opera)' 같은 느낌을 주었고, 또 언론도 과다한 취재경쟁으로 빈축을 샀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또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그러한 비판 속에서도 재판생중계를 금지하자는 발상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올 수 없었다. 그러한 발상은 헌법상의 기본권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이 점이 이토 판사가 몇변에 걸쳐 중계 정지명령을 내리고 방송사에 대해 벌금을 부과하기도 하였으나, 중계 자체를 거부할 수 없었던 이유인것이다.

그리고 사실 미국에서는 이번의 "O.J.심슨 재판" 외에도 항상 주요 재판을 상시적으로 중계하는 채널이다. 그래서 일반 시민은 안방에 앉아서 재판진행과정을 지켜볼수 있으며, 법률 전문가들의 분석과 평석 등을 들으면서 당해 재판에서 판사, 검사, 변호인의 활동을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재판 이외에도 의회 및 행정부의 주요 회의 및 각종 청문회 등을 상시중계하는 채널이 있음은 물론이다. 이를 통해 일반시민은 입법, 사법, 행정부의 활동을 안방에서 생생하게 알 수 있고, 또 감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는 "O.J.심슨 재판"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법조개혁의 내용으로 주요재판의 중계가 포함되어야 하지 않는가 하고 생각해본다.

"합리적인 의심을 뛰어넘는 정도로?" (Beyond Reasonable Doubt?)

한국의 모든 형사소송법 교과서는 "in dubio pro reo"(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우리 형사소송법의 주요원리 중의 하나이며, 따라서 검사가 "거증책"(Burden of Proof)을 부담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즉 요증사실의 존부에 대하여 증명이 불충분할 경우 불이익을 받는 측은 피고인이 아니라 검찰이라는 것이다. "O.J.심슨 재판"은 바로 이 원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영미 형사재판에 있어서 검찰측이 범죄사실을 '합리적인 의심을 뛰어넘는 정도'(Beyond Reasonable Doubt)증명하지 않는 한 피고인은 유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확고한 원칙이다.

O.J.심슨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필자는 주위의 여러 한국인이 " 이사건이 한국에서 일어났다면 O.J.심슨은 말할 필요도 없이 유죄이고 사형이 아니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곤혹스러움을 느낀 적이 있다. 그러한 예단이 현실성을 갖는 한국 형사재판을 우월한 것으로 말해야 하는지, 아니면 문제가 있는 것으로 말해야 하는지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이 때 필자는 "무죄추정의원칙(Beyond Reasonable Doubt)"을 질문자에게 이해시키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지만 2명의 백인 배심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아니스 아센바크라는 62세의 할머니는 10월 18일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마 심슨이 범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심슨이 범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확실한 증거가 없었기에 무죄평결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유일한 히스패닉 배심원이었던 데이빗 알대나도 같은 날 LA 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심슨이 범인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각종 증거와 그 당시의 모든 상황을 검토해 볼 때 심슨이 두 사람을 살해한 범인으로 생각되지 않아 무죄평결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라고 말하였다. 우리가 "O.J.심슨이 죽였을까, 안 죽였을까?"에만 경도되어 있는 동안, 위의 두 비법률가 미국 시민은 형사소송법의 또다른 요체를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양복입은 O.J.심슨?

한편 "O.J.심슨 재판"의 장면을 시청한 우리나라 사람들 중 O.J.심슨이 항상 양복을 입고 법정에 출정해 있음을 포착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구속된 피고인이 구치소에서는 당연히 수의를 입게 되어 있지만, 법정에 출석할 때만큼은 무죄로 추정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의 또다른 표현이다. 법정에 출석할 때 수의를 입고 고무신 신고 심지어 포승까지 차고 앉아 있는 한국의 피고인의 모습과 비교해보자. 그런 피고인을 보고 "무죄추정"이 생기겠는가, 아니면 "유죄추정"이 생기겠는가? 감옥행정의 편리함이 피고인의 헌법상의 권리보다 우월한 위치에 선다면 이를 어찌 '법치국가라' 하겠는가? 한국 사회의 인권수준은 피고인의 복장에서도 엿볼수 있는 것이다.

"O.J.심슨 재판"에서 O.J.심슨이 미국 사회의 보통의 흑인에 비해, 아니 보통백인에 비해서도 훨신 좋은 법적 지원을 받았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미국 형사재판이 너무 피고인쪽으로 경도되어 있지는 않은가 하는 비판이 미국의 보수파로부터 제기되 있기도 하다. 그러나 피고인의 권리에 대한 '평균적' 또는 '제도적' 보장수준을 비교해 볼 때도, 우리의 수준은 많이 모자란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수인의 권리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필자는 수업의 연장선에서 그 유명한 샌퀸틴 감옥 (San Quentin rison)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속에서 필자는 수인의 방마다 텔레비젼이 들어있음을 발견하고 놀랐다. 여러 이론적인 논리 이전에 그 텔레비젼 하나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단 '문민정부'가 들어 선 이후 한 검사가 '미란다(Miranda)' 고지가 없었다는 이유로 검찰이 요청한 영장에 서명을 하지 않았고 일부 법원이 우법한 방법으로 증거를 수집하였다는 이유로 그 증거를 배제하였다는 뉴스를 멀리서나마 듣는 것은 형사법 전공자로서는 무척 기쁜 일임을 밝히고 싶다.

D.N.A 전문 변호사

마지막으로 "O.J.심슨 재판"의 핵심쟁점중의 하나인 D.N.A에 대해 말해보기로 하자. 검찰측은 범행현장에서 발견된 혈액에서 추출된 D.N.A구성이 O.J.심슨의 D.N.A 구성과 일치함을 증명하려하였고, 반대로 피고인측은 이에 맞서 그 혈액이 '인종차멸주의자(Racist)' 형사 퍼만(Mark Fuhrman) 에 의해 조작되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LAPD 법의학 연구실의 관리소홀로 심하게 오염되었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당연히 양측의 진영에는 D.N.A 문제에 정통한 법률가를 배치하였음은 물론이다. 많은 과학자, 노벨상 수상자까지…. 법의학자들을 대상으로 신문, 반대신문이 계속되고 상대의 약점을 파헤치려면 그 분야의 전문가인 법률가가 필요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과학분야 전문 법률가가 가능하게 된 것은 미국의 법학교육제도 때문이다. 미국 Law School 학생들은 다양한 학부 전공을 가지고 있다. 필자와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들중에는 문과쪽 박사는 물론이고, 의사도 있고 이과 전공박사도 있다. 그리고 필자가 다니는 버클리 Law School의 저명한 환경법 교수는 화학과 박사 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에서는 미국식 Law School 도입 및 사법시험제도 개혁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 귀결이 현행 학부제 법학교육의 보완이 되든, 아니면 미국식 전문법과대학원의 도입이 되든 간에 그 내용에 위와 같은 전문가 법률가를 키워낼 수 있는 개혁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간절하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법률가들이 배출되어 사회의 다양한 계급, 계층을 대변하게 하는 것, 그리고 사회의 "모든 문제"에 대한 법적 토론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야 말로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또하나의 방도가 아닐까?

조국 ㅣ 버클리대학 법과전문대학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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