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4-09-07   1557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과는 거리가 먼 사개위 회의

사법개혁위원회 회의가 직역이해 대변장인가

1. 어제(6일) 개최된 제19차 사법개혁위원회(이하 사개위) 회의는 당초 로스쿨 도입에 대한 사개위 의 잠정적인 합의안을 도출할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이번 회의 역시 로스쿨 문제를 다룬 지난 세차례의 회의와 마찬가지로 변호사 직역의 이해를 앞세운 일부 위원들의 파행적 논의로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2. 로스쿨 도입에 관해 무려 네 시간여 동안 진행된 이날 회의에서, 대한변협과 서울지방변호사회 등 변호사단체를 대표하는 위원들은 로스쿨이 도입될 경우 변호사의 수적 증대가 필연적이기 때문에 지나친 변호사 증원으로 인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주장하며 로스쿨 도입을 반대했다. 심지어 이들은 로스쿨 도입에 있어 중요한 한 축인 변호사단체의 동의 없이 로스쿨을 추진한다면 물의를 자초하는 것이라며 협박 수준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사개위 회의에서의 변호사단체 대표의 이러한 발언은, 사법개혁을 바라는 대다수 시민들의 요구와 사개위에 대한 사회적 기대로부터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다. 변호사단체를 제외한 대다수 위원들이 로스쿨 도입에 찬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직역의 과도한 이해주장으로 회의를 파행적으로 끌어가고 있는 변호사단체는 비판받아 마땅하며 사개위는 더 이상 이러한 비생산적 논의로 얼마 남지 않은 활동시한을 소모해서는 안 될 것이다.

3. 사개위에서 논의되고 있는 주제들은 매 정권마다 설치했던 사법개혁추진기구에서 이미 10년 넘게 논의해온 주제들이며 특히 법조인 양성 및 선발제도의 개혁문제는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라 할 것이다. 법학교육의 황폐화 및 고시 낭인 문제 등 현행 사법시험제도의 폐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사법연수원 제도에서 비롯된 전관예우 및 법조비리의 반복적 발생을 막고 보다 손쉽게 일반 국민들이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로스쿨제도의 도입취지를 놓고 보면 이를 더 미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4차례의 회의 과정에서 몇 몇 사개위 위원들이 보여준 모습은 매우 실망스러운 것으로서, 이들은 회의 때마다 별다른 논거도 대안도 없는 주장을 반복하며 사개위 논의를 파행으로 끌고 가고 있다. 이는 지난 10여년 동안의 논의 과정에서 직역의 이해를 주장하며 제도 개혁을 저지해왔던 변호사단체의 모습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변호사의 수가 늘어날 경우, 고급법조인력의 낭비나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법조브로커의 난립이나 법조윤리의 해이 등이 우려스럽다’는 논리는, 그야말로 누워서 침뱉기에 다름 아니다. 오히려 변호사의 수가 늘어 경쟁이 확대되면 수요자인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는 보다 손쉽게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돼 사법서비스가 향상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사법시험 합격자 1천명 시대에 들어선 오늘, 신임 변호사들이 기존의 고가 수임료에 연연해하지 않고, 고급 법률지식의 지원이 절실한 다양한 사회분야로 진출하고 보다 저가의 사법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법조브로커의 문제나 법조윤리의 해이 등의 문제는 변호사의 수가 많든 적든 상관없이 지금까지 반복적으로 발생해왔다. 이러한 문제는 오히려 징계권을 갖고 있는 변호사단체의 윤리교육 강화와 변호사비리에 대한 철저한 징계를 통해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며 이는 어디까지나 변호사단체가 책임질 일이다. 따라서, 변호사업계는 법조인 양성제도 개혁 논의를 밥그릇 싸움으로 전락시키며 개혁적 논의를 가로막고 있는 작금의 행태를 즉각 중단해야 할 것이다.

4. 이와 관련, 지난 3차례의 사개위 회의에서 로스쿨 도입을 둘러싼 공방이 계속되자, 대법원은 이번 회의에서 자체의 로스쿨 도입안을 제시했다. 대법원이 제시한 로스쿨 도입안은 “현재의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기준으로” 로스쿨의 총 입학정원을 정하고, 그에 따라 교육부장관이 인가를 하도록 하는 인가주의를 취하고 있다.

대법원 안에 따를 때 로스쿨 수료자의 80% 이상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도록 되어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은 다시 말해 로스쿨의 총 입학정원을 1200-1300명으로 통제해서 한해 변호사 배출 인원을 지금의 1000명선에 묶어두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사법시험의 폐해로 지적되는 고시낭인 및 과도한 인력 낭비 현상이 사법시험 1천명 합격자시대에도 변함없는 현실을 고려할 때, “현재의 사법시험 합격자 수” 1000명을 유지하는 로스쿨 제도의 도입은 결코 개혁이 될 수 없다고 본다.

대한변협이 사개위에 제출한 의견서에 ‘로스쿨을 도입하더라도 총 입학정원이 1200-1300명을 넘어서는 안된다’라고 되어 있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대법원의 안은 논의 과정에서 한치의 양보도 없이 직역이기만을 주장하고 있는 변호사단체가 양보할 수 있는 마지노 선을 담보해주며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시도로 보인다. 하지만, 이같은 대법원의 모습이 사법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주체이자 당사자로서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닌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현재의 법조인 양성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방안으로서 로스쿨제도를 도입하면서, 유독 변호사 배출 숫자만은 현재의 숫자를 고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변협의 의견서와 대법원안은 총 입학정원의 근거를 제대로 제시하고 있지 못하며, 사개위 회의과정에서 나온 것처럼 “요즘 변호사들이 어렵기 때문에”라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라 할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을 표방하고 있는 사법개혁위원회의 모습일 수 있단 말인가? 우리 국민 중 과연 누가 변호사가 너무 많기 때문에 현재의 배출 숫자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변호사단체 뿐 아니라 다른 법조직역에서 제아무리 법조인수가 지나치게 늘어났다 주장하더라도 법률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인 일반 시민들이 여전히 손쉽게 법률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는 점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참여연대가 이미 밝힌 것처럼, 로스쿨 설치에 있어서는 요건을 충족했음에도 설치를 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인가주의가 아니라, 요건을 충족한 대학은 모두 설치를 할 수 있게 하는 준칙주의를 채택하는 것이 맞다. 로스쿨 도입의 목적이 충실한 전문법학교육을 통한 수준 높은 법조인력의 양성인 이상, 충실한 전문법학교육을 할 능력이 있는 대학들은 모두 설치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다. 난립의 문제는 설치기준을 엄격하게 하고, 사후 평가를 엄격하게 실시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만일 대법원이 주장하는 것처럼, 로스쿨의 입학정원을 1200-1300명으로 통제할 경우, 전국적으로 6-7개의 로스쿨이 설치될 수밖에 없는데, 현재 법과대학이 설치된 전국 90여개의 대학 중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6-7개의 대학을 골라낼 수 있겠는가? 또한 1200-1300명 안에 들기 위해 로스쿨 지망생들의 경쟁은 얼마나 치열할 것인가? 대법원의 주장은 결국 현재의 사법연수원을 대신하는 6-7개의 ‘특권적’ 로스쿨을 만들고, 지금의 사법시험 낭인을 로스쿨 낭인으로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될 뿐이다. 대법원이 진정으로 법조인 양성제도를 개혁하고자 한다면, 로스쿨 도입의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입학정원 통제의 주장을 즉시 거두어야 할 것이다.

5. 한편, 이제 겨우 4개월 남짓한 활동시한을 남겨 두고 있는 사개위에서 로스쿨 도입에 대한 합의가 어렵다면 사개위는 로스쿨 도입 의제에 더 이상 소모적 노력을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미 국회에 로스쿨 도입을 추진하기 위한 별도의 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이 위원회는 사개위 논의경과를 본 후, 빠르면 2004 정기국회 회기동안 로스쿨 도입을 입법추진한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따라서, 사개위에서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공을 국회로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사개위에 당초 상정된 의제이기는 하나, 지금처럼 로스쿨 도입 논의가 다른 논의를 가로막는 상황이라면 포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적으로 촉박한 가운데 합의하기 어려운 의제에 매달려 지지부진한 논의를 계속하는 것은 자칫 사법개혁 논의 전체를 흐지부지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에서의 사개위 활동이 또다시 논의로만 그치거나 어떠한 구체적 결실도 이뤄내지 못한다면, 그동안 일말의 기대를 갖고 억눌렀던 사법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훨씬 과격한 모습으로 분출될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사개위는 더이상 어떠한 이유로든 논의를 지연시키거나 결과없는 탁상공론의 모습을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사법감시센터



JWe20040907000.hwp

첨부파일: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