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6-01-12   5740

[비평칼럼] 카드연체 사기죄 적용 대법원 판결 올바른가

정책적으로도 법리적으로도 문제있어

지난 2005년 9월 30일 대법원 2부(재판장 유지담, 주심 이강국, 김용담, 배기원 대법관)는 적법한 방법으로 신용카드를 발급받았으나 변제 능력을 상실하여 연체자가 된 신용불량자에 대해 적극적인 사기의사가 없다하더라도 사기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신용카드 사용자가 신용카드를 신청할 때 특별히 잘못된 정보를 고의로 신용카드 회사에 제출한 것이 아니라 적법하게 카드를 발급받은 경우는 사기죄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광주지방법원(2004.12.12.선고 2004노2370)의 원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사건을 요약하면, 신용카드를 정상적인 절차에 의해 발급받은 후 사용하던 카드사용자가, 6개월여 뒤 사정이 변하여 일정한 수입도 없고 재산도 없는 상태에서 신용카드 사용으로 진 채무를 갚기위해 신용카드 현금 대출 등을 이용한 ‘돌려막기’를 하다가 2천여 만 원의 빚을 더 이상 갚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원심 재판부는 이에 대해, 적법하게 신용카드를 발급받은 사람이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자신의 경제적 상태를 신용카드 회사에게 알려야할 의무가 없는데다가, 신용카드를 사용하거나 이를 이용하여 대출을 받고자 할 때 자신의 재정상태와 신용상태에 관하여 허위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등 구체적으로 속이고자하는 행위가 없는 한 사기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미 과다한 채무의 누적으로 변제할 능력이나 의사가 없는 상황에 처했으면서도 신용카드를 사용한 것은 사기죄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한 것이다.

작년에 이와 같은 취지의 대법원의 판결이 서너 차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같은 대법원 판결은 그동안 카드 연체자들이 카드를 신청할 당시 잘못된 정보 등을 제공하여 적극적으로 카드회사를 속일 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사기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한 기존의 법원 태도를 바꾼 것으로 제대로 신용평가를 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신용카드를 발급한 카드회사의 도덕적 해이를 간과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이같은 대법원의 판결이 카드회사들의 무분별한 카드 발급의 책임을 지나치게 도외시하며 사기죄 적용에 관한 법리적용에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닌지, 사회정책적 측면에서도 개인채무자들을 경제활동에 복귀하게 함으로써 오히려 사회적 비용을 낮추어야 함에도 무리한 법률적용으로 형사처벌함으로써 사회복귀를 어렵게 하는 판결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보아 비평 대상으로 삼았다(편집자 주)

지방법원들의 판결을 뒤집고 있는 대법원

신용카드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카드빚 연체가 증가하자 야간에 찾아가 망신주기, 계속적인 전화로 심리적 압박주기, 책임없는 가족들에게 강요하기 등 카드회사들의 불법적인 빚독촉행위가 난무하였다. 특히, 카드연체자들을 검찰에 형사고소하여 그 가족들에게 전과자를 만들지 않으려면 빚갚아라는 방법을 사용하는 등 형사고소가 사실상 빚독촉 수단으로 많이 활용되었다.

이렇게 카드회사가 검찰을 채권추심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이 큰 사회문제가 되고 카드회사의 무분별한 카드빚 연체자에 대한 형사고발로 검찰이 카드회사의 채권추심기관이 되고 있다는 법조계의 자조섞인 이야기가 나온 적도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신용카드회사가 카드빚 연체자에 대해 사기죄로 형사고소를 하더라도 ‘각하’처분을 내려 기소하지 않는 등 형사정책으로 카드빚 연체자들을 사기죄로 형사처벌하는 것을 피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법원도 카드빚 연체자에게 사기죄를 적용하여 처벌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신용카드 신청 당시에 잘못된 정보를 신용카드 회사에게 제공하지 않는 등 구체적으로 신용카드 회사를 속이기 위한 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사기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지난 해 9월 대법원이 파기하고 되돌려 보낸 광주지방법원의 판결(사건번호 2004노2370, 2심 재판)을 보면, 신용카드는 그 속성상 최초 발급시부터 카드회사가 카드 신청인의 신용을 평가한 후 신청인이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의 범위를 결정하고, 이때 신용평가의 대상은 카드를 신청한 사람의 과거나 현재의 신용뿐만이 아니라 장래의 신용도 포함되는 것이다. 적법하게 신용카드를 발급받은 사람이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자신의 경제적 상태를 신용카드 회사에게 알려야할 의무가 없는데다가, 신용카드를 사용하거나 이를 이용하여 대출을 받고자 할 때 자신의 재정상태와 신용상태에 관하여 허위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등 구체적으로 속이고자하는 행위가 없는 한 사기죄를 적용할 수 없다.

그러나, 대법원이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어 무죄라고 한 여러 지방법원의 판결을 잇달아 뒤집으면서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판결하고 있다(2005.9.30.선고 2005도 398판결, 2005.10.27.선고 2004도3408호 판결 등).

그중 지난 해 9월 30일 대법원이 사기죄를 적용한 사건은 다음과 같다. 신용카드를 정상적으로 발급받은 후 성실히 연체없이 신용카드를 사용하던 시민이, 일정한 수입을 얻지 못하게 된 후부터 6개월 정도 이른바 신용카드 현금대출을 이용한 ‘돌려막기’를 하다가 결국 현금대출한 2천여만을 갚지 못하게 되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과다한 부채의 누적 등으로 신용카드 사용으로 인한 대출금 채무를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는 상황에 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용카드를 사용하였다면 사기죄에 있어서 기망행위(편집자 주 – 속이는 행위) 내지 편취의 범의(犯意)를 인정”할 수 있다면서, 이 사건의 피고인도 적극적으로 신용카드 회사를 속이겠다는 행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사기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한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검찰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한 자료에 의하면 1999년 신용카드 연체자에 대한 신용카드 회사의 고소건수가 1,566건이었다. 그러다 검찰이 신용카드 회사의 빚을 대신 받아주는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여론이 일자 2000년에는 신용카드연체 고소건수가 425건으로 크게 줄었다가, 2001년부터 다시 늘어 2003년에 2,000건을 넘어 2,004년에는 무려 5,222건으로 급증하였다. 이에 덩달아 검찰이 기소한 사건도 2,000년 132건에서 2004년에는 무려 1,360건으로 4년 사이 무려 10배가 증가하였다. 신용카드연체자를 형사처벌할 것인가에 대한 검찰의 태도도 크게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용카드 연체자 사기죄로 처벌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지만 이같이 대법원이 지방법원의 사기죄 적용이 어렵다는 판결을 뒤집은 것과 검찰이 신용카드 연체자에 대한 형사기소 방침을 강화하는 것은 몇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우선 법원과 검찰은 카드빚 연체자 등 개인파산자들을 형사처벌하여 전과자로 만드는 것보다는 사회적 회생이 가능토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신용카드 연체로 인한 ‘신용불량자’가 400만명에 가깝고, 이 중 자기소득으로 빚을 갚기 어려운 개인파산자가 100만명이 넘는 상태에서, 개인파산자들의 가정파탄, 범죄, 자살 등의 사회적 병리현상의 예방과 이들이 다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회생시키는 문제는 사회적 과제가 되어 있다.

과중채무자가 발생하는 원인으로는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뿐만 아니라 신용카드를 길거리에서 신용조사도 없이 경품까지 주면서 마구 발급하였던 신용카드 회사의 도덕적 해이, 그리고 개인채무가 눈덩어리처럼 커져가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의 경제성장률에 매달려 빚으로 내수소비를 진작하려 했던 정부관료들의 정책실패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개인파산자, 신용불량자들이 채무조정을 통하여 다시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여 소득활동을 전개하고 정상적인 소비를 하는 것이 내수진작을 통하여 현재의 경기침체를 벗어날 중요한 과제라는 점도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정부도 이러한 점 때문에 개인파산자, 신용불량자의 채무조정을 위한 개인워크아웃, 배드뱅크 등 각종 금융프로그램을 추진하고 법원도 개인파산 활성화를 위한 소송구조 제도의 도입과 상담활동 강화 등 법률적 구조활동에 나서는 상황이다.

1년간 소비자도산건수가 160만건인 미국이나 27만건(2003년기준)에 이르는 일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신용연체자들에 대하여 형사처벌보다는 채무면책 등을 통하여 다시 경제활동에 복귀하도록 하는 것이 사회적 효용이 더 크다는 점은 우리와 비슷한 상황을 앞서 경험한 선진국에서 확인되어 왔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사회도 신용카드 연체자들을 ‘사기죄’ 명목으로 전과자로 만들어 경제적 회생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보다는, 채무면책을 하더라도 적극적인 채무조정을 통하여 경제적으로 회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개인들의 회생을 통한 소비진작과 사회복지비용의 절약 등을 통한 경기회생의 효용을 얻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다.

따라서 이번에 대법원이 특별히 신용카드 회사를 속이기 위한 적극적 행위를 한 경우가 아닌 단순한 신용카드 채무 연체자에 대해서 사기죄를 적용한 것은 이같은 사회정책적 방향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법리적으로도 문제있는 대법원의 판결

한편 이같은 대법원의 판결은 법리적인 측면에서도 올바른 것인지 의문스럽다. 신용카드 회사와 신용카드 사용자 사이에 합의된 사용금액 한도내에서 카드를 사용한 행위에 대하여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는 법리적인 측면에서도 부정적인 의견들이 많았다.

신용카드를 발급받고 또 대출한도 등 사용금액 한도가 정해지는 과정에서, 신용카드 회사가 신용카드 사용자의 신용을 판단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사실, 예를 들어 소득수준, 과거 카드대금 연체한 사실 등을 속였다면, 이 부분에 대해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용카드 사용자가 신용카드를 신청할 때 특별히 잘못된 정보를 고의로 신용카드 회사에 제출한 것이 아니라 적법하게 카드를 발급받은 경우는 문제가 달라진다.

앞서 말한 지방법원 판결들의 취지가 이러한 것인데, 학계에서도 이른바 “허용된 위험(손해)”의 법리를 적용하여 신용카드를 적법한 방법으로 취득한 후 결제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카드를 사용한 경우에 발생한 채무가, 달리 말하자면 신용카드사 입장에서 보면 손해되는 금액이, 카드회사가 신용카드 사용자의 신용을 평가한 결과 부여한 신용한도 내에 머물러 있는 한, 이 손해는 “허용된 위험(손해)”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신용카드 발급 당시에 신용카드 회사가 스스로 부여한 신용한도 내라면 그 후 갚을 능력이 없어져 결과적으로 카드대금을 연체하거나 갚지 못하게 되더라도 이것은 “신용”이 가지는 개념 및 “신용카드의 결제시스템”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요소인 것이다.

그리고 신용카드 사용자에 대한 신용평가를 잘못하거나 또는 사후 신용관리에 소홀한 신용카드 회사의 책임도 있는 것이라면 이를 신용카드 사용자 한쪽의 사기행위라고 가볍게 결론맺을 수는 없다. 만약 그러하게 된다면, 사기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신용카드 사용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아야한다는 점과는 정반대로, 신용카드 회사들의 책임인 정확한 신용평가와 사후관리 역할을 소홀하게 만드는 상황, 즉 신용카드 회사들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온다.

형사처벌이 능사가 아님을 대법원이 인식해야

이같은 이유에서 이번 대법원의 사기죄 적용 판결은 논리적인 면과 사회정책적인 측면 모두에서 아쉬움을 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오히려 법원은, 그리고 검찰은 개인파산자들에 대한 형사처벌에 주력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개인파산과 면책제도를 통하여 회생할 수 있도록 법률구조사업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올바른 정책방향이라 할 것이다.

우리 법원의 개인파산신청건수는 2004년 기준 12,373건, 2004.9.23.부터 시작된 개인회생신청건수도 2005.3.말 기준으로 18,349건이어서 전년도 보다는 2배 정도 증가하였지만, 개인파산자가 100만명이 넘는 현실에 비추어서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이다. 개인파산 및 개인회생신청건수가 적은 이유 중 하나는 파산자들의 개인파산 등 신청을 지원하는 소송구조제도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파산 신청건수 중 법률구조공단의 법률구조사업이 기여한 것이 516건으로 5%로도 되지 않는다는 것은 법률구조공단의 법률구조사업이 개인파산제도에 있어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본의 법률구조공단의 법률구조사업의 56%정도가 개인파산을 지원하는 사업이라는 점에 비추어 보아도 개인파산을 지원하는 법률구조사업의 활성화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100만명의 개인파산자들을 형사처벌하여 경제적 회생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보다 개인파산과 면책제도 등을 통하여 사회.경제적으로 회생시키는 것이 우리 사회전체의 효용측면에서는 훨씬 사회적 효용이 크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사법감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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