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7-02-26   1374

[판결비평-판결읽기1] “현실성 없는 위험내세워 진짜 국익 외면한 판결”

현역 국회의원의 한미FTA협정문초안 정보공개 청구

우리 정부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한.미 FTA)을 체결하기 위하여 2006.5.경 총 22개 장(Chapter)으로 구성된 협정문 초안을 작성하고 2006.05.19. 미국과 협정문 초안을 서로 교환하였다.

이에 권영길 의원은 2006.5.30.에, 강기갑 의원은 2006.6.1.에 각각 정부와 미국이 제시한 각 협정문 초안 전문에 관하여 사본 또는 출력물 교부의 방법에 의한 정보공개를 외교통상부에게 청구하였다.

외교통상부는 2006.6.1. 권영길, 강기갑 의원에 대하여 각 협정문 초안에 관한 정보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제9조 제1항 제1호, 제2호, 제5호에서 규정한 비공개대상정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그 공개를 거부하면서, 한. 미 양국정부는 협정문 공개 문제와 관련하여 협정의 최종합의문은 타결 즉시 공개하고, 협상 중 생성문서는 발효 후 3년간 비공개 취급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고 통보하였다.

이 같은 외교통상부의 비공개 처분에 대해 권영길, 강기갑 의원은 부당하다며 서울행정법원에 비공개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하게 되었다.

서울행정법원 제3부(판사 안철상(재판장), 이종림, 이종채)는 한미FTA는 통상에 관련된 문제이나 이것도 외교관계라 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한미FTA는 다른 어느 통상 협정보다도 국익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협정문 초안이 공표될 경우 이후의 통상교섭에 있어 다른 국가들의 교섭정보로서 활용될 수 있고, 한 ㆍ 미 양국이 합의한 비공개 사항을 우리나라가 어기게 되면 우리나라의 대외 신인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등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즉 법원은 공개하지 않아야 한다는 외통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미국정부도 자국의 기업 등 민간단체에 공개하지 않는가?

협정문이 공개되면 국가의 이익을 침해하는가를 판단함에 있어서 우리의 협상 상대방인 미국도 과연 국익을 위하여 협정문을 공개하지 않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미국 헌법은 대외통상에 관한 권한과 관세 및 조세를 부과할 권한을 의회에 부여하고 있는데, 미국 의회가 자신의 권한 행사를 위해 행정부에게 배치한 조직이 바로 USTR이다. 그런데 이 USTR은 통상정책을 수립할 때 반드시 민간의 의견을 듣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미국 의회의 관심사항과 입장이 통상협상 과정에서 효과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민간 자문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통상법에 명문화 하였다(1974년 미국 통상법에서 제정하여 2002년 통상법에서는 민간 자문위원회를 더욱 더 강화하였다).

2002년의 미국 통상법에 따르면, 이러한 민간자문위원회는 전체 3개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 최상층은 대통령 직속의 통상정책 및 협상자문위원회(ACPTN)이며 이 아래에 ① 정부간정책자문위원회, ② 농업정책자문위원회, ③노동자문위원회, ④ 무역 및 환경정책자문위원회 등 모두 4개의 정책자문위원회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 째 층위에는 22개의 기술별/부문별 자문위원회가 있다. 기술별/부문별 자문위원회는 산업과 농업 2개의 분야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다.

현재 미국의 경우 위 3개 층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에 포함된 위원만 약 700명에 이르며, 이들 위원 중에는 회원사가 수천 개에 달하는 협회 소속 위원들도 포함되어 있고, 학계와 공익단체 역시 포함되어 있다.

한ㆍ미 양국은 한미FTA 1차 본 협상을 앞두고 2006년 5월 20일 협정문 초안을 교환했다. 그런데 미국 내 수 백 개의 제약관련 기업들의 연합체로 구성된 한 협회가 협정문 초안을 교환하기 무려 11일 전인 2006. 5. 9. ITAC 3에 관련 의견서를 제출하였다.

의견서의 주요 내용은 “의약품 허가를 위해 제출한 자료의 독점권, 특허기간 연장, 의약품 허가 과정의 특허 연계 등”에 대한 것이다. 이 의견서에는 막연하게 한미FTA에 어떤 사항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수준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미국 측이 만든 한미FTA 협정문 초안의 특정 조항의 문구 수정까지 제안하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한국 FTA 협정문에 대한 몇 가지 수정을 제안한다 ”고 하면서, 지적재산권 장 제9조의 “동일 또는 유사 품목”에서 “유사 품목”이란 표현은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제8조의 (7)(a)-(b)항은 특허기간 연장을 최대 5년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하는 내용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 의견서를 작성한 협회가 미국 측이 준비한 한미FTA 협정문 초안 전체를 보았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 협회는 ITAC 3 위원회의 정식 회원도 아니다.

요컨대, 미국 측은 한국 정부와 협상단의 그 동안 주장과는 달리, 광범위한 민간 자문위원회를 운영하면서 관련 분야의 이해당사자들에게 협정문 초안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문위원도 아닌 일반 기업이나 관련 협회에도 협정문을 그대로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미국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오히려 정보를 공개하고, 이런 다양한 요구를 받아들여 자신들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협상안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이것은 미국의 협상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협상력의 배경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가이익을 위해서라면 오히려 공개되어야

한미FTA협상이 이전의 어떤 통상 협정보다 중요한 협상이기에 이에 대하여 국민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적절한 정보가 제공되어 이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우리나라에 보다 유리한 내용으로 협상이 타결되도록 통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자국의 국회의원들이나 민간 기업들에게 협정문초안을 공개하고 있는 것에 비추어 국익침해, 대외 신인도 하락에 대한 법원의 우려는 현실성 및 타당성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오히려 협정문 초안은 공개되어야 하는 것이다.

미국과 힘을 합쳐 국민을 상대로 외교를?

법원은 협정문 초안이 내부의사결정과정에 있기에 이것이 공개되면 이익단체들의 영향을 받는 등 업무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는 이유로 공개거부가 타당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런데 현재 외교통상부는 미국과 협정문 초안을 토대로 협상을 진행 중에 있다. 이미 본 협상이 7차례나 이루어진 상태다. 그런데도 아직 내부검토과정에 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이미 협정문 초안은 내부검토가 아니라 우리의 협상 상대방인 미국과의 협상에 직접 이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내부검토과정에 있다고 하는 것은 미국을 내부로 보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정말 혹자가 외교통상부의 한미FTA협상 양태를 두고 ‘국민과 힘을 합쳐 미국과 외교를 하여야 하는데, 미국과 힘을 합쳐 국민을 상대로 외교를 하고 있다’고 평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할 것이다.

정문 초안이 공개될 경우 업무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까?

위에서 이미 살핀 바와 같이 미국의 경우는 3개 층으로 구성된 민간 자문위원회를 두고 있으며 이에 포함된 위원만 약 700명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이들 위원 중에는 회원사가 수천 개에 달하는 협회 소속 위원들이 포함되어 있고, 학계와 공익단체 역시 포함되어 있다. 또한 이들 위원회의 정회원도 아닌 기업집단들 역시 풍부하게 제공되는 한미 FTA관련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이해와 요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반면에 이런 단체들을 외교통상부는 모두 이익단체라고 폄하하고 있다).

미국은 오히려 이런 다양한 요구를 받아들여 자신들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방안을 협상안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이것이 미국의 협상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협상력의 배경이 되고 있다.

그러나 외교통상부는 이익집단의 반발 등 추상적인 위험에 대한 우려만 가지고서 많은 좋은 조언을 듣고, 이를 협상에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사실상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는 후진적인 외교협상 양태를 보이고 있다.

차라리 미국을 본받자

이제 늦었을지 모르지만 외교통상부 역시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여 가장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내용을 만드는 미국의 협상 태도를 본받아 다양한 요구를 조화롭게 수용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협상에 임하는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다. 법원도 진정한 ‘국익’이 무엇인지 전향적으로 사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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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민(변호사, 법무법인 한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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